예수의 치유, 차별을 차이로 바꾸는 혁명
4월 1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조민아 복음묵상 (요한 5.1-16)
서른여덟 해를 병으로 누워 지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벳자타 못가에서 ‘출렁이는 물’만 바라보며 살아왔습니다. 그의 고통은 풍경이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예수가 그를 봅니다. 그리고 묻죠. “건강해지고 싶으시오?” 그가 대답합니다.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나 깊은 고립과 절망을 함축하는 말인지요. 돌보아 줄 가족과 친구도 없이 늘 누군가의 뒷전에서 상한 몸과 마음을 누이고 있어야 했을 서른여덟 해를 그는 어떻게 견디었을까요. 예수는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들것을 들고 걸어가십시오.”
그러나 치유의 순간은 곧 논쟁으로 바뀝니다. 환영이 아닌 심문, 기쁨이 아닌 검열이 새로운 삶을 얻은 그를 맞습니다. 두발로 일어서게 된 그를 보며 종교 권력자들이 다그치죠.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권력은 따져 묻습니다. “대체 누가 당신에게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했소?” 무엇이 그들을 그리 불편하게 했던 걸까요?
못 가에서 장구한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사람은 단순한 병자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배제된 이였고, 존재가 지워져 버린 이였습니다. 예수는 그를 일으켜 스스로 사회 속으로 들어 오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치유는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학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신체성과 존재를 다시 세우는 행위였으며, 정치적, 종교적 질서를 뒤흔든 사건이었습니다. 생명이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 받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힘이 세고, 어떤 이들은 기회에 먼저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이 되고,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사회는 병이 듭니다. 예수의 치유는 앓고 신음하며 뒷전에 처져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이를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치유는 결국 한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사회 전체를 향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귀환하여 결국 모두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그의 치유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다시 자리매김하며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도록 하는 혁명입니다.
조민아 마리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