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말하지 마세요”

2017-10-10     윤영석 신부

[윤영석 신부 칼럼] 

한국에서 사촌형네 가족이 연수차 뉴욕에 왔다. 지난 번 한국 방문 때 봤던 조카들이 초면이 아니라 그런가, 어찌나 살갑게 굴던지 이참에 조카 시은이에게서 ‘귀여운’ 삼촌이라는 말도 들었다. 사실 외당숙인데 발음하기 너무 어렵다고 해서 포기했다.

아내가 한인 2세인지라 주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시은이가 끼어들며 한마디 한다. “영어로 말하지 마세요.” 계속 하던대로 대화를 이어가는데 한번 더 말한다. “영어로 말하지 말라고요. 한국말 못해요?” 천진난만한 호기심과 당돌함에 미소가 번진다. 혹시나 느꼈을 소외감에 미안한 마음으로 시은이에게 답한다, “알았어. 한국말로 할께.” 아내도 웃으며 서툰 한국말로 말한다.

1997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쓴 문장이 있다. “I can not speak English well.” 혹시나 누가 나한테 뭘 물어볼까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소심한 성격인지라 몇개월 동안 신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답답함과 더불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소통의 부재로 인한 소외감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한인들도 별로 없어서 어머니와 누나가 유일한 소통의 대상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통한다는 건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와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대가 형성돼 친밀함이 오고 가는 일일 텐데, 4살짜리 시은이도 언어의 벽을 마주하며 잠시나마 어떤 소외감을 느꼈을 게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소외와 고립, 그리고 고통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는 종교다. 외로움에 갇힌 우리에게 하느님은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낸다. ‘나자렛 예수’라는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언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느님은 우리에게 신의 언어를 배우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저 예수가 가르친 인간의 언어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위에서 아래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또 아래에서 위로, 인간이 신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의 언어’ 말이다.

그래서 율법교사의 언어인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는 예수의 입을 통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로 변한다. 내 언어를 하는 사람만을 내 이웃의 범주에 두는 게 아니다. 내 잣대로 이웃을 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웃의 언어로 소통하고 그가 나를 이웃으로 인정해줘야 비로소 이웃이 된다. 교회는 얼마나 자주 ‘이웃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누가 우리 이웃이 될 자격이 있는지 판단했는가. 고통의 자리에서 얼마나 많이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해댔는가. 나 역시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통받는 사람은 ‘인간의 언어로 말하라'고 한다. 세상을 외면한 채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심지어 하느님도 쓰지 않는 ‘신의 언어'로 말하는 교회를 향해, 그런 교회를 위해 당당히 소리쳐야 한다. 이 소리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목소리다. 예수는 온몸으로 신에게 버림받으면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있다. 하느님 당신이 몸소 인간의 고통에 뛰어들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고통 속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의 절규는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울 ‘구원의 언어'다. 반면, 요즘 한국의 일부 보수 개신교는 동성애자와 동성애 옹호자, 재혼을 한 사람들에게 마치 신이라도 된 듯 막말을, ‘저주와 심판의 언어’를 퍼붓는다. 대구희망원 사태는 어떤가. 사랑이 아닌 ‘사육의 언어'를, 희망이 아닌 ‘절망의 언어’를 쓰고 있지 않나. 미국은 트럼프를 대두로 전쟁, 핵, 총기, 폭력의 언어로 가득 차 우리의 영혼에 살인을 저지른다.

나부터 말 조심하고 볼 일이다. 나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기 위해 어떤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가. 신이 인간이 됐다.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기에, 우리와 상통(相通; in communion)하려고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라는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다. 이제라도 교회에 가득 찬 껍데기 언어를 비우고 구유에서 십자가로, 무덤에서 부활로 살아내고 살리는 예수의 언어, ‘그리스도의 언어'를 고통의 현장에 있는 그리스도에게서 다시 배워야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이는 무신자다.” (도로시 데이)


윤영석(바울로) 신부
미국성공회 뉴왁교구 소속 & NewYork-Presbyterian Hospital 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