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개 주지 말고...끝까지 저항하라
상태바
죽 쒀서 개 주지 말고...끝까지 저항하라
  • 최충언
  • 승인 2016.12.12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충언 칼럼]

청진기를 뜻하는 스테토스코프(stethoscope)는 그리스어로 ‘가슴’과 ‘본다’의 합성어다. 청진기의 구조는 종모양의 벨, 편평한 다이어프램, 튜브, 귀에 걸쳐지는 쇠막대기인 바이누랄과 이어 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진기는 의사에게는 필수품이다. 회진을 도는 나의 흰 가운 주머니에는 언제나 청진기가 들어있다.

청진기에서 환자의 몸에 닿는 부위는 다이어프램과 벨이다. 겨울철에는 이 부위가 차다. 우리가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몸에 갑자기 차가운 물체를 대면 깜짝 놀라게 된다. 의과대학 학생실습 중에 교수님께서 청진을 할 때 먼저 청진기를 손으로 데워 환자가 놀라지 않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청진기, 의사와 환자를 이어주는 끈

요양병원에서 일하다 보니까 치매나 뇌졸중 환자들이 많다. 대부분 노인이다 보니까 열이 날 경우, 대부분 폐렴을 의심하게 된다.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청진기가 차가워 놀랄 때가 많다. 병동으로 올라갈 때는 벨과 다이어프램 부분을 손바닥에 꼭 쥐고 올라가는 버릇이 습관이 되었다. 물론 청진기로 환자들의 폐음, 심장음과 장음을 듣지만, 환자들과의 스킨쉽도 중요하기에 환자와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서도 중요한 도구다.

급할 경우에는 의사는 환자 가슴에다 귀를 갖다 댄다. 귀는 제일 좋은 청진기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어보라. 놀라운 심장소리와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청진기의 줄은 하나의 상징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다. 인간의 냄새가 나는 훌륭한 진료도구다.

한 손가락은 목구멍에, 다른 한 손가락은 똥구멍에, 그것이 최고의 진찰이라는 서양금언은 진료의 원시성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료의 원칙이며, 의료의 상징이 아닐까? 청진기 줄은 어쩌면 현대의학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간성을 유지하는 마지막 끈일지 모른다. 청진기는 불통의 시대에 소통이 가능하게 만드는 끈이자 배려와 사랑과 연대의 줄이다.

사진출처=최충언 페이스북

균도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대통령(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인 표결로 국회를 통과했다. 당연한 귀결이다. 방송에서는 탄핵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다. 촛불을 든 성난 민심이 국회를 압박한 것이 주효했다. 기쁘기 보다는 탄핵안이 가결되었을 때 오히려 담담했다. 종편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칭송하더니 이젠 뻔뻔하게도 탄핵에 대해 더러운 입을 놀리고 있다.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들이 친미파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자신들이 마치 심판자의 자리에 앉은 듯 착각하고 있는 그들이 단지 역겨울 뿐이다.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염치가 없는 자들이다.

지난 달 26일, 토요일에 나는 발달장애인 1급인 균도와 같이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역사의 현장을 균도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균도아빠의 말에 우리는 금요일 밤에 무궁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치 소풍가는 기분으로 서울에 갔다. 새벽녘에 종로에서 나주 곰탕을 먹었고 점심은 무교동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에 터를 잡았다. 그 까닭은 자주 화장실을 찾는 균도 때문이었다.

균도와 균도아빠가 <균도와 세상걷기> 깃발을 들고 전국을 일주했던 바로 그 깃발을 세종문화회관에 내려놓고 바닥에 퍼지고 앉아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깃발과 촛불들이 밤하늘에 수를 놓았다. 저녁 8시 소등으로 침묵시위를 하다가 다시 촛불이 켜지고 촛불파도타기가 이어졌다. 감동이 몰려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청운동 주민센터까지 균도의 손을 잡고 행진을 했다. 갑자기 균도가 외쳤다. “쉬는?” 이 많은 인파 속에서 화장실을 찾기 위해 인도로 올라왔다. 지역주민인 어느 아주머니가 화를 내고 있었다. 자기 가게의 화장실을 개방해주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오줌이 급한 균도를 데리고 더 이상의 화장실 찾기를 할 수가 없어서 나는 균도에게 화단에 소변을 누라고 했다.

옷에 오줌을 싸기 직전에 균도는 엉덩이를 보이게 바지를 내리고 화단 구석에서 소변을 보았다. 그러자 이 아주머니는 큰 소리로 악다구니를 썼다. 하도 심한 말을 하기에 내가 대꾸했다. “ 나무에 거름도 되고 좋은데, 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셔?” 그 사이에 균도는 볼 일을 다 보았다. 참 인심 사납기도 하지.

행진을 마치고 다시 세종문화회관에 자리를 잡았다. 페이스북을 보기도 하고, 추운 날씨에 커피도 마시고, 출출한 속을 ‘하야 떡’을 먹으면서 쉬고 있을 때였다. 페이스북에 메신저가 왔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누굴까? 국악을 전공하시는 폐친 한 분이 메시지로 해피머니를 보내주셨다.

‘균도총각이 서울에 왔는데 따뜻한 거 사주고 싶은 마음인데 작업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어서 죄송하네요. 세종문화회관 골목에서 간식으로 햄버거라도 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 살아가는 맛이 난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사진출처=최충언 페이스북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민중에 대한 사랑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돕던 중 체포되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였고, 전후 외교관으로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한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이 책의 핵심은 레지스탕스 정신을 우리도 가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를 바 없다. 분노할 실마리를 잡아서 분노할 줄 알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저항할 줄 알되, 마음속에는 비폭력의 심지를 곧게 세우고 참여하여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창조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촛불을 들면서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포, 불법과 탈법에 분노했다. 탄핵이 통과되었지만, 이제 시작이다. 어떤 이들은 헌재의 탄핵심판을 기다리자고 중용을 말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는 가치와 정책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기계적 중립은 없다.”고 하워드 진은 말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불의한 ‘정치-재벌-검찰-언론-대학’을 패키지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세상을 바꾼다.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인디오 출신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른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인 ‘토도 캄비아(Todo Cambia)’란 곡이 있다. 아르헨티나 10만 관중이 그녀와 함께 손뼉을 치고 노래 부르며 열광하는 1993년 공연 실황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도 변하고 자연도 변하지만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 조국에 대한 나의 사랑, 민중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촛불을 들며 노래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부산의 7차 촛불집회에서 나는 균도와 서면에서 검찰청까지 행진을 했다. 당뇨가 있는 나에게 주말집회의 행진은 운동이 된다. 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정권에 고맙다고 해야 하나? 부족한 운동을 균도와 즐거운 마음으로 구호를 외친다.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외칠 것이다. 비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말이다.

정말 다시 시작이다. 다른 의제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생떼 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소망 하나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한다면 그건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더러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눈꼽만큼도 없는 동물의 세계를 뜻한다. 촛불을 들면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배운다. 질기게 연대하여 세상을 바꾸어보자. 죽 쒀서 개 주지 말고.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