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이 카페라면, 시끌벅적한
상태바
성당이 카페라면, 시끌벅적한
  • 한상봉
  • 승인 2016.12.12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봉 칼럼]

사무실이 홍대 인근의 카페가 밀집해 있는 합정동에 있다 보니, 이렇게 카페가 많이 생겨도 운영이 되나, 싶다. 카페를 그저 커피나 음료 한 잔 마시며 소소한 잡담이나 늘어놓는 곳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떤 카페에서는 커피와 술도 마시고, 책방도 겸하고, 세미나도 열고, 강좌까지 개설된다. 다소 가벼운 휴식과 짐짓 무거운 정치담론도 나누어지는 곳이 요즘 카페라고 보면 된다. 그럼, 신앙과 종교문제는? 카페에서 신앙상담도 이뤄지고, 종교논쟁도 벌어진다고 보면 맞겠다.

교회에서 개설하는 신앙강좌나 심포지엄, 세미나, 교육은 통상 본당 교리실이나 가톨릭센터 같은 대형 강의실에서 이뤄지는데, 일방적으로 말하는 성직자-강사와 여지없이 듣기만 해야 하는 신자-수강자들만 있다. 어찌보면 토론과 이견이 없는 ‘죽은 공간’이다. 정말 듣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 ‘카페’에 있다. 일상과 담론이 겹치는 공간이 카페이고, 추상적인 주의주장은 카페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카페를 사랑한 그들>,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효형출판, 2008,

이처럼 카페에서는 휴식과 축제, 일상과 정치와 종교, 삶과 문화와 사상이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교회는 어느덧 ‘지루한 노인들의 고요한 사교장’이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레지오 마리애 등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물론이고, 이들마저도 미사가 끝나면 사방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당구장에서, 술집에서, 카페에서 ‘남아있는 여흥과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본당은 생기 있는 신자들에게 이래저래 외면당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 되었다.

교회보다 카페를 더 사랑한 그들

크리스토프 르레뷔르가 쓴 <카페를 사랑한 그들>이라는 책이 있다. 19세기에 프랑스에서는 카페만큼 삶을 풍요롭게 해준 공간이 없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나서면 카페를 찾았고, 농부들은 일요일 모임을 카페에서 가졌다. 선원들은 긴 항해를 끝내고 배에서 내리면 곧바로 카페로 몰려갔다. 부르주아는 넓은 대로 옆의 테라스에서 한담(閑談)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카페는 자유인들이 즐겨찾는 곳이었다. 학생, 작가, 화가들이 카페에 모여 황금같은 시간을 보냈다. 반 고흐는 카페의 그림을 그렸고, 랭보는 카페에서 시를 썼다. 이곳은 프랑스 혁명의 온상이었으며, 도둑과 사기꾼들도 이곳을 드나들었다. 말 많고 탈 많은 최순실도 강남 논현동에 있는 ‘테스타로싸’라는 카페를 열어, 이곳에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비롯해 ‘비선실세’들끼리 모여서 작당을 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혁명 전까지, 가톨릭교회의 항의로, 종교와 미풍양속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일미사 시간에는 카페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법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당시 어느 주임신부는 “집안의 가장들이 성스러운 축복이 있는 교회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카페에서 낯뜨겁고 상스러운 즐거움을 찾는다”며 개탄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는 일찍이 교회당 안에 ‘북카페’ 같은 것을 만들어 신자들을 붙잡아두고, 최근에는 가톨릭에서도 성당 안에서 ‘만남의 방’을 카페 분위기로 리모델링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래도 성당이나 교회에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 사실이다. 그 경건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카페의 묘미는 ‘뒷담화’에 있다. 뒷담화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시끌벅적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성당 분위기가 뒷담화를 낳았으니, 신자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신앙과 생활의 분리’를 문제 삼아 왔다. 신앙 따로 주일에만, 생활 따로 평일에는. 미사는 성당에서,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성당 밖에서 해결하는 분위기에서 신앙적 열정이 생길 리 없다. 교회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기쁘지 않은 마당에 바깥에서 ‘복음’(기쁜 소식)을 찾는 신자들을 나무랄 수 없다.

그래서 그림의 떡처럼 생각해 본다. “그저 앉아만 있어도 행복한 성당”은 없을까? 성당에 가면 본당사제들이 늘 눈 닿는 곳에 있어서, 언제든 누구나 궁금할 걸 물어보고 신앙잡담이라고 늘어놓을 수 있는, 그 참에 차도 한 잔,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교회는 왜 없는 것일까? 아니면 신부님, 카페로 오세요, 청하고 싶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