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어린이의 마음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상태바
[오늘의 성인] 어린이의 마음으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로버트 엘스버그,임선영 역
  • 승인 2016.12.06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월 5일 기일: 작곡가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during the family Grand Tour about 1763 with father Leopold leaning behind him

"어렸을 적부터 매일 저녁 하루의 일과를 성찰하고 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나를 명랑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나는 매일 축복을 내려주신 신께 감사드리며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기를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클래식 음악 작곡가이다. 그를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앙심이나 성격을 고려한다면 대답은 아마도 ‘아니요’일 것이다. 그는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수많은 전례 음악을 작곡했으나 프리메이슨 사상에 심취했고 타락한 교회를 많이 봤기에 교회에 대해 상당히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유치하고 미성숙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경솔하며 익살스럽고 저속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다르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제까지 작곡된 모든 음악 중 그의 음악만이 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졌다.” 위대한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칼 바르트는 현대 신학자로는 유일하게 모차르트 음악에 학문적 관심을 보였다.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천사들이 신을 찬미하는 임무를 위해서는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겠지만 천사들끼리 편하게 모여 있을 때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신은 이를 더 좋아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어려서부터 나타났는데 5살에 이미 하프시코드를 위한 미뉴에트를 작곡했다. 6살부터는 아버지와 유럽 각국을 다니며 궁전에서 연주를 했다. 1770년에는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 클레멘트 14세 앞에서 연주를 했으며 교황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주가보다는 작곡가로 유명해졌다. 모차르트는 미사곡과 오라토리오(성가곡)에서 실내악과 교향곡, 그리고 대중적인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하지만 평생 동안 경제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았는데 교회와 귀족들의 일정하지 않은 후원금이 수입의 전부였다. 결국 가난과 오랜 투병 끝에 짧은 삶을 마감했다. 1791년 낯선 사람으로부터 레퀴엠 작곡을 부탁받고는 작업에 몰두하였으나 자신의 장례곡을 쓴 셈이었다. 레퀴엠은 마지막이자 가장 장엄한 작품으로 완성 후 과로로 쓰러져 며칠 후인 1791년 12월 5일 이승을 떠났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위대한 종교적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그의 광범위한 종교적 음악 작품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모차르트의 모든 작품에서 창조의 기쁨이 넘치며 규칙성과 짜임새를 느낄 수 있으며 빛에 대한 확신, 즉 죽음과 어둠에 대한 삶의 승리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사물의 핵심 또는 본질뿐만 아니라 시작과 끝을 알아내어 놀이의 예술을 추구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세상의 끝으로 인도된다. 그 곳은 밤이나 낮이나, 화창하거나 태풍이 불어오나 언제나 완벽하고 안정된 세계이다.”고 주장했다.

모차르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삶을 온전히 즐기는 법을 알았다. 그의 음악은 삶에 대한 긍정이 넘친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음악에는 죽음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끝임 없이 고민한 끝에, 모차르트는 “죽음이야말로 인류의 진실한 친구이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음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신의 축복으로 죽음이 진정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결론 내렸다.

모차르트는 위대한 삶의 여정을 끝내고 35세에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비엔나 공동묘지에 묻혔다.

바르트는 한번은 꿈에서 모차르트를 만났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신학과 교리학의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목적으로 계속해서 쉬운 질문을 던졌으나 모차르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위대한 신학자는 꿈에 대한 어떤 해석도 내놓지 않았지만 모차르트가 종교적 예술가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바르트에게 성체의 신비는 현실이며, 교리가 아니라 음악으로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천국에 간다면 동료 신학자들이 어디 있는지 묻기 전에 가장 먼저 모차르트부터 찾겠다고 고백했다.
 

번역: 임선영 아우구스티나
원문 출처: <모든 성인-우리시대를 위한 성인, 예언자, 증인들>(All Saints), Robert Ellsberg, crossroad, 1997, p519-52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