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 마시러 오세요"…이주노동이 네팔 아이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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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 마시러 오세요"…이주노동이 네팔 아이들의 미래
  • 이금연
  • 승인 2016.12.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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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나의 집 이야기-3

두바이에 간다는 아유스

“디디 더 필요한 거 없어요? 음식 맛은 어때요? 찌아 드릴까요?” 오늘은 아유스가 일하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박타푸르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 가까이에 있는 식당은 네팔 정식 달밧과 여러 분식 메뉴를 갖춘 제법 큰 식당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이 식당에서 삼년 이상 성실하게 조리사로 일해 온 아유스는 곧 두바이로 일하러 떠난다.

페이스 메신저를 열기만 하면 어느새 ‘디디 나마스테!’하며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던 아유스가 두바이로 일하러 간다고 하자 우리는 ‘어서 빨리 가서 한 끼라도 아유스가 해 주는 밥을 먹어야 해!’ 라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운동복을 가지고 찾아 간 것이다.

지난주에 아유스는 인사를 하고 싶다며 우리 환대의 집 첫 손님으로 친구랑 같이 왔었다. 얇은 셔츠를 입고 왔길래 한국에서 가져온 옷 박스에서 겨울용 스웨터를 골라 주었었다. 차를 마시며 두바이에 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월급은 얼마나 받는지, 먼저 떠난 크리스너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여자 친구는 있느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타푸르로 돌아가면서 아유스는 "또 찌아 마시러 오세요"라고 했었다. 우유와 설탕을 넣어 끓인 차를 찌아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미 아침 일찍 장학생들을 만나며 찌아를 두어 잔 마신 뒤였다. 아유스가 지은 네팔 정식 ‘달밧’을 먹으며 우리는 ‘인증 샷’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찰칵 소리가 멈춘 지 이삼 분 내에 먹던 밥 수저를 내려놓고 우선 페이스 북에 사진을 올린다. 수자타 라이가 독일에서 지금 우리가 자신의 엄마랑 같이 밥을 먹고 있다는 소식을 볼 수 있도록.

독일로 일하러 간 수자타...카펫 노동자 레누

간호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일하러 간 우리 장학생 수자타 라이, 2주전 수자타는 축제 기간에 맞추어 한 달 휴가를 왔었다. 독일로 간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유창한 독일어 실력으로 간호학 공부를 더 하면서 병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했다. 독일에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거긴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 살기에 편리하고 기회도 많이 주어지는 곳이지만 외롭고, 네팔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다 있어서 외롭지는 않지만 일 할 곳이 없고, 또 살기에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앞으로 가족들이 독일로 올 수 있다면 그 외로움이 덜 할 것이라고 말하는 수자타, 딸 옆에 앉아 있던 싱글 마더이자 카펫 짜는 노동자인 레누씨는 ‘내가 과연 독일로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을 품었다.

아침 5시 반부터 저녁 6시 혹은 7시까지, 주 6일 일하면 45일 걸려 2미터의 카펫을 완성 한다는 과부 레누 라이.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이 12000루피쯤 된다. 이것을 달러로 환산하면 120달러 정도가 된다. 박타푸르 왕궁으로 가는 큰 길가에 있는 카펫 공장에서 일하는 그녀는 공장에 딸린 방 한칸에서 딸 수자타를 키웠다. 레누씨에게 우리의 장학금은 그래서 고맙고 또 고마웠는가 보다. 장학생들에게 물품을 나누어 주는 날이면 언제나 일을 멈추고 달려 나와 밝은 얼굴로 일을 거들었다.

휴가를 온 딸 수자타와 함께 고향 마을을 찾아가 락시미 뿌자를 하던 장면이 저장된 스마트 폰을 내밀어 보여주는 레누씨는 앞으로도 카펫을 짤 것이며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강직한 카펫 공장 노동자 레누씨와 또 그들을 노조운동으로 이끄는 조직가 풀 마야씨랑 아유스의 달 밧을 먹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올린 페이스 북 사진에 또 다른 장학생 부미카가 ‘좋아요’하는 응답을 반찬으로 삼았다.

일찍 어른이 되어 가는 네팔 아이들

두바이로 가면 지금 월급의 세배를 더 받을 수 있게 되니 어느 정도 저축이 가능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아유스, 그리고 나서 결혼을 하겠다는 23살의 아유스는 일찍 어른이 된 것 같고, 수자타도 마찬가지로 이미 어른이 되어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일찍 어른이 되어 가는 네팔의 아이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아유스가 한 달 일하여 받는 월급은 사십대인 숙련공 레누씨가 45일 걸려 한 장 짠 카펫 수당과 같은 금액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네팔에서 일을 한 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이주노동이다.

이미 우리 장학생 출신의 청년들 다수가 해외로 일하러 떠났고 어떤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다 말고 인도나 걸프지역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해외로 이주노동을 떠나는 현상은 사실 이미 네팔에서 오래된 현상이다. 이백년이 넘은 이주 노동 역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네팔의 고르카 군인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지구상의 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자리를 어딘가에 찾기를 바라면서 이번 글을 마친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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