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덜바에 조명이 켜지던 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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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탄 덜바에 조명이 켜지던 날 저녁에
  • 이금연
  • 승인 2016.12.12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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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나의 집 이야기-4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명을 받은 붉은 벽돌의 건물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파탄 덜바(Patan Durbar)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손 피켓을 만들어 나갔더니 취소가 되었는지 한인들을 보이지 않고 구경꾼들로 광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네팔에 한인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시국을 위한 집회를 연다니 이제라도 합세를 하고 싶어 나왔는데 취소가 되었는지 한인을 누구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찾아다니는 사이 날이 어두워졌고, 이때다 싶었는지 누군가 조명 기구를 켜자 ‘빛’이 작은 광장을 비추어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점점 더 밝아져 광장 전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고 구경꾼들은 빛을 잡으려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금연

덜바 광장, 쿠마리 여신도 있는

파탄 덜바는 카트만두와 박타푸르 덜바와 나란히 카트만두 분지 내에 자리한 네왈족들의 건축과 수공예 솜씨로 만들어 진 세 왕궁의 광장이다. 카트만두와 생활권이 잇닿아 있는 파탄 덜바는 다른 두 덜바와 마찬가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곳은 한때 세 왕국의 왕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건축물이 거의 유사하여 한 곳만 제대로 관람을 해도 네왈족들의 솜씨를 가늠하게 된다.

파탄 덜바 가까운 곳엔 쿠마리라 불리는 살아 있는 여신이 살고 있는 집도 있다. 덜바 근처에 있는 별장에 거처하는 파탄의 쿠마리는 약간의 헌금을 하면 누구나 ‘알현’(?)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광 상품이다. 하지만 네왈 힌두들에게는 엄연한 신으로 모심을 받고 있으니 타 문화를 대한다는 것은 늘 조심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쿠마리 여신이 살고 있는 집도 덜바 광장의 여러 사원과 탑들도 진흙으로 빚어 구운 붉은 벽돌과 나무 그리고 돌로 지어졌다. 지난 해 지진으로 탑이 무너지고 건물에 심한 균열이 생겨, 그 틈 사이로 나타난 붉은 흙이 언제 무너질지 모를 형태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보수 공사가 진행 중에 있는 덜바, 아직 보수 중이지만 오늘 만큼은 광장에 들어선 모든 건축과 조형물들이 휴식을 취하듯 빛을 받으며 각각 뽐내고 있다.

11월 25일은 여성폭력 근절의 날

불타듯 어둠속에서 신비감을 자아내며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빛과 건축의 어울림은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하여 '유엔 여성'이 조명을 설치하여 일어난 현상이다. 인간의 솜씨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에 인공조명을 비추어 캠페인을 펼치는 이 아이디어는 우연한 방문객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였고, 마치 지진으로 지친 모든 이들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아름답게 빛을 발하며 말하고 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면서. 침묵의 빛과 조형물들이 내 보내는 메시지는 구경꾼들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탄성, 기쁨, 어울림, 재잘거림과 시선 집중이 광장에서 저마다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집단의 기운인 것이다.

11월 25일은 국제 사회가 지정한 여성폭력 근절의 날이다. 이 날부터 시작해 세계인권의 날인 12월 10일까지 유엔 위민(UN Women)은 교육에 초점을 두고 여성폭력 근절을 위한 켐페인을 펼치며 여성 단체들과 성명서를 발표 하면서 16일간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주요 신문들도 성매매, 성폭력 그리고 가정 폭력 실태와 사례들을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평화의 땅 히말라야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여성 폭력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팔의 여성 단체들과 유엔 기구들은 빈곤, 문맹 그리고 결혼 지참금을 꼽는다.

사진=이금연

안전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

빈곤과 문맹은 교육과 직결되기에 유엔도 2015년 9월, 제70차 총회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전환기의 2030 아젠다>를 채택, 특히 핵심 내용에 교육을 중심에 놓고 있다. 빈곤 퇴치와 기아 근절, 건강과 보건 향상, 성 평등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여러 교육이 관련된다며 기초 교육의 기회가 극적으로 향상되어야 함을 담고 있다.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는 네팔에서, 유엔 산하 기구인 ‘유엔 여성’가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성명서에 ‘모두를 위한 교육의 안전한 보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모두를 위한 교육권 보장이란 장기적 목표 아래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정책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정부, 비정부 기구들의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안전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다 자신의 온전한 실현을 위한 목표에 도달할 만큼 가려면 수십 년 더 광장에 불이 켜져야 할 것 같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목표와 꿈을 가졌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자신의 생애를 설계하고 타인과 협력해 나가도록 하려면. 비단 네팔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을 ‘유엔 여성’과 공동 성명서를 낸 단체들이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 폭력을 근절하자’는 당위적인 말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원인으로 작용되는 교육과 문맹 퇴치 그리고 빈곤에서의 해방을 말해야 하는 것이고,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 여성 폭력의 세 번째 원인인 결혼지참금과 조혼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회에 소개하겠다.

저녁 여섯시에 켜진 조명은 밤 아홉시에 꺼졌다. 켤 때가 있으면 꺼질 때가 있으니 불이 켜지고 꺼지는 그 사이의 세 시간은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사회정의와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위를 성찰하게 하는 우리 마음의 자리 즉 의식에 빛을 주입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체험한 뒤의 행동은 각자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비추임을 받은 만큼 해내기 마련이다. 조명이 꺼지자 광장의 구경꾼들은 어느새 각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금연 세실리아
국제 가톨릭 형제회 (AFI) 회원
네팔 환대의 집 'Cana의 집'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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