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영적 우정의 고리, 프란치스코와 성 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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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영적 우정의 고리, 프란치스코와 성 글라라
  • 머레이 보도
  • 승인 2016.12.0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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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길-11

아씨시의 글라라. 모든 위대한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 중에서, 나에게 그녀는 가장 신비에 쌓인 인물이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글들 속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진 것 이외엔 우리로부터 그 내적인 삶이 숨겨진 관상가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들에 관한 책들은 있으나, 프란치스코와 그 형제들과 함께 한 첫 여성인 글라라에 관한 것은 매우 적다.

우리는 그녀가 귀족 가문의 출신이며, 자매와 어머니도 결과적으로 산 다미아노에 살았던 '가난한 부인회'에 가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 생애 동안 글라라는 그녀가 “가난의 특권”이라고 이름붙인 것을 지키기 위하여 애썼으며, 그녀의 인내는 임종의 자리에서 그녀와 산 다미아노의 가난한 부인회가 생계를 전적으로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완전한 복음적 가난 속에 살아가는 것을 승인 해준 교종의 칙서를 붙잡았을 때 보상받았다.

프란치스코와 그녀와의 관계는 첫째로 영적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였다. 그리고 비록 그녀가 일생동안 그를 “우리의 거룩하신 아버지 프란치스코”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딸 그 이상이었다. 글라라는 그의 가장 충실한 동료이며 프란치스코가 주님께로부터 받은 꿈과 삶의 방식을 가장 완전하게 구체화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그의 동반자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철저하게 따르는 복음적 남자의 여성형이며 보완하는 이가 되었다.

프란치스코회의 생활은 거의 처음부터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였으며, 그것은 복음적 생활의 풍부함을 더 드러나게 하였고 오직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기를 거부하는 어떤 삶에도 풍부함을 보태준다. 세상에 복음을 설교하고 증거하기 위하여 형제들이 끊임없는 진출 속에서 노력할 때에 그 안에 무언가 남성적인 요소가 있듯이, 산 다미아노와 그곳에서 살아진 삶에는 무언가 심오한 움 같은 요소가 있다. 나는 이러한 양쪽의 모험이 서로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 위의 형제들의 삶은 가난한 부인들의 관상적인 삶을 풍요롭게 했으며, 반면에 부인들 삶은 형제들의 사도적 생활과 설교의 효력을 가능하게 하였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그리고 형제들과 가난한 부인들 사이의 관계는 궁정의 사랑 이야기 속에 있는 기사들과 부인들 사이의 관계 같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 대한 열렬한 사랑과 자발적 가난이라는 복음적 이상을 수호하는 공통의 투쟁으로 인하여 생긴 깊은 영적인 우정의 고리로 일치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서로를 거의 보지 못했으나, 상대방의 투쟁과 수난을 알았으며 각자가 독립적으로 거룩한 여정을 따라갔지만, 성배의 원탁의 기사의 전설처럼 그들을 끌어당기신 가난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의해서 여전히 마음과 영혼은 결합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몰락해 가는 서구 그리스도교의 정원을 복원시키는 새로운 아담과 에와 같았다. 그리고 비록 따로 일했지만, 그들이 결코 정말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마음과 영혼의 일치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예술작품과 대중적인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이야기는 성 글라라 없이 결코 완성될 수 없으며 그녀의 이야기도 역시 프란치스코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대중적인 마음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프란치스코 삶의 방식은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진실의 상징들은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자신들이다.

그들과 동시대인들이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또한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을 일치시키는 프란치스코의 길에 있어 남성성과 여성성의 심오한 통합을 상징화하는 한 중세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아르날도 포르티니의 저서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행적>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1926년 밀란에서 출판되었다:

어느 날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스펠로에서 아씨시까지 함께 여행 중에 있는데, 도중에 약간의 빵과 물을 얻으러 한 집에 멈춰서 문을 두드린다. 가족은 그들을 안으로 초대 하지만 그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더니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오직 단둘이서만 함께 있는 것에 대하여 헐뜯는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 두 성인은 눈 덮인 시골길로 계속 가는데, 왜냐하면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프란치스코는 갑자기 “글라라여, 당신은 그 사람들이 뭐라고 넌지시 말하는 것을 이해했나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글라라는 두려워서 목구멍에 말이 걸릴까봐 괴로워하며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떨어져야 할 때가 됐습니다. 당신은 해질녘까지 산 다미아노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홀로 계속 갈 것이고, 하느님께서 어느 곳으로든지 나를 이끄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글라라는 길 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침묵 중에 잠시 기도하더니 뒤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간다. 그녀는 깊은 숲에 들어갈 때까지 걷고 멈추는데, 왜냐하면 위로의 몇 마디 말이나 작별인사 없이 계속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기에서 프란치스코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숲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아버지여, 우리 둘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되나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여름이 돌아오고 장미가 다시 피어날 때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모든 노가주나무 수풀주위와 서리로 덮인 산기슭이 장미로 뒤덮인다. 그러자 놀라움 속에서 정신을 차리며 글라라는 덤불로 걸어가 장미 한 다발을 꺾어서 프란치스코에게 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다시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전설은 말한다.

<출처> 머레이 보도의 <성 프란치스꼬의 길-모든 이에게 도전하는 프란치스꼬의 영성>, 참사람되어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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