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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 부처의 맨발에서 발견한 하느님

<주제>

머튼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인류와 일치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고유한 종교적 전통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지만 다양한 종교들 안에 있는 진실들을 발견하도록 추구해야 한다.

<시작 기도>

오 진리의 하느님,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이신 하느님,
저에게 제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만 배우지 않고
다른 고대의 영적인 전통을 더 잘 이해하도록 순례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의 유사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로
제가 모든 형제, 자매들과 좀 더 일치되도록 하소서.
아멘.
 

머튼에 관하여

관상하는 생활이 심화될수록 머튼은 모든 다른 종교들이 그의 목적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더 깨닫게 되었다: 아트만, 누마, 또는 침묵이라 불리는 “존재와의 일치...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 안의 모든 것과 하나되는 기쁨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다”(<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다른 종교전통에 대한 개방에 힘입어 머튼은 동양의 신비주의 특히 선에 대해 열심히 탐구했다. 그는 동양의 신비주의가 삶을 부정하고 자기 편견으로 이끌며, 현실을 회피한다는 주장들에 대하여 방어하였다. 그는 동양의 묵상 훈련이 잘못된 자아의 착각을 벗게 하고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에 참다운 결속을 창출한다고 인식하였다.

머튼은 동양의 종교들이 서양인들에게 그들 고유의 전통의 깊이를 더 잘 깨닫도록 도와주며 서양 종교를 정체된 상태에서 구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종교적 전통은 침묵, 묵상, 평화, 그리고 연민에 대한 존중을 제공함으로써 돈과 권력, 군국주의, 그리고 자기 만족에 대한 서양인들의 열정을 조절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다.

1968년 머튼은 독서와 명상을 통하여 이미 탐험했던 장소로 돌아가는 순례자로서 동양을 여행하였다. 동양의 신비주의적 고전을 묵상하고 동양 종교들의 학자 및 수행자들과 교신하였던 이 순례자는 영적인 자양분을 위해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침묵의 불빛>에서). <아시아 여정>에서 머튼은 썼다: “나는 다른 수도적 전통에 대하여 정보와 사실들만 얻으려고 하는 순례자가 아니라 고대의 수도적 비전과 경험들로부터 마시기 위하여 왔다.”

머튼은 특히 삶을 대하는 선의 철학이 그리스도교의 사막의 교부 교모들이 지녔던 가난함, 고독, 비움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서양에서 선의 명상을 대중화시킨 다이세츠 스즈키와의 만남에서 머튼은 “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전통의 사랑이 성숙하고 완전하며 자신의 길을 발견한 것을 보게 되었다”(<선과 욕망의 새들>에서).

자아에 의해 창출되어진 착각을 거슬러 생명을 확언할 수 있는 선의 능력은 특히 머튼에게 매혹적이었다. 그는 순수한 경험의 단계에서는 선과 그리스도교 사이에 어떠한 갈등도 없음을 알았다. 머튼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처럼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광대한 교의적 차이들을 합당하게 존중하고 차이를 지니고 있는 다양한 종교들의 주장을 손상시키지 않고 보존하며 불교의 “개화”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비전”을 혼합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종교가 “무한함”의 정신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종교는 이것을 많은 같은 언어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지금 “비움”, 또 “어두운 밤”, 또 “완전한 자유”, 또 “마음을 버림” 또 “가난”이라는 공통적인 말로 표현된다.(<선과 욕망의 새들>에서)

머튼은 전세계의 신비주의가 모두 똑같은 것을 경험하고 그들의 종교적 실천들을 통하여 문화와 전통을 초월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이 라마와 같은 위대한 스승들, 수도자들과의 대화에서 그는 다양한 전통들 사이에 공통되는 요소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특히 모든 문화의 수도자들이 내면의 변화와 절대적인 존재와의 점차적인 일치에 대한 진지한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지속적인 훈련에 의해 그 갈망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튼에 의하면, 참다운 종교적 추구는 그 사람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드러내게 하고 다른 전통들과의 일치를 느끼도록 이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우리자신의 영적 여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 가는 길에서 우리는 다른 전통들로부터 동반자를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멈춤>

당신 자신에게 물으라. 나는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여정을 존중하는가?

사진출처= http://happybuddhabreathing.wordpress.com/

머튼의 말

우리는 이집트의 사막의 교부들을 알고 있다. .. 그들은 마음의 완전한 순수함을 추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그 자체로 끝나는 너무나 많은 개념적 지식을 배우는 것을 피했다. 우리는 “이탈”을 추구하는 비슷한 노력을, 그리고 “정신의 비움”으로 요약되는 침묵의 관상을 발견한다... 그러나 선의 “정신 비움”의 방법으로서 “비움”과 “대상 없음”은 잘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러한 미묘한 문제에서는 약간의 잘못도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움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고 획득할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상상적인 “마음의 순수함”에 집착하게 되면 아무리 그런 모습이 신비적 삶의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핵심을 전부 놓치는 것이다. (<신비가들과 선의 대가들>에서)

아시아로의 여정에서, 머튼은 스리랑카의 폴로나루와에 있는 부처 석상을 보러 갔다. 다음은 그 때의 감동적인 경험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나는 풀숲과 모래에 젖은 발로 부처상의 맨 발과 조용한 모습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자 비상한 모습들의 고요. 그 위대한 미소. 거대하면서도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있었다. 모든 가능성으로 꽉 차 있고 아무 것도 묻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알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음... 교의적인 사람들, 안정된 위치를 필요로 하는 정신에 그러한 평화, 침묵은 두려울 수 있다. 나는 얼굴들의 뚜렷한 선명함, 모습과 선의 명료함과 유연성, 구성에 안도감과 감사함을 압도적으로 느꼈다...

이 상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갑자기, 거의 내칠 수 없을 정도로 사물에 관한 관습적이고 반쯤 묶여진 비전으로부터 던져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면의 깨끗함, 명백함이 마치 바위들로부터 폭발되어 나오는 것처럼 확실해지고 분명하게 되었다. (「아시아 여정」에서)

 

성 찰

1967년 경 머튼은 수도원의 쇄신에 그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는 미래의 수도자는 가톨릭 전통뿐만 아니라 비 그리스도교 전통의 가르침도 받아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종교들에 대해 지적인 이해를 넘어 수도자는 그 종교들과 일치하면서 그것들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고, 오직 그리스도교 성서 뿐만 아니라 우파니샤드나 불교 경전으로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머튼의 목표는 동양과 서양 전통을 특징짓는 인식에 관하여 그 관상적인 양식을 깨닫는 것이었다.

동양에서 머튼은 서양이 기술적인 지배, 돈, 그리고 힘을 추구하면서 내버렸던 관상적인 이상들에 대한 동감을 발견하였다. 그는 동양과 서양의 대화가 모든 종교 안에 있는 공통의 관상적 체험의 기반을 쇄신할 것이라고 강하게 느꼈다.

특히 그의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머튼은 이해와 사랑 안에 일치되는 인류의 비젼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불교든, 힌두교든, 그리스도교든 모든 종교의 진보된 영적인 성장 단계에서 초월적인 실체에 대한 통교가 체험된다고 믿었다.

머튼은 종교적인 전통들의 지혜에 감사했고 그것들 사이의 공통되는 기반을 추구했으나 여전히 그는 그의 인생 끝까지 가톨릭과 가톨릭의 수도자로서의 독실함을 유지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전체 인류의 일치에 관한 그들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종교적인 편견을 넘어 그리스도교인들은 진실을 향해 여정을 계속하는 다른 남자, 여자들과 함께 결속을 찾아야만 한다.

머튼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영혼의 “어둔 밤”을 강조하는 선의 실천과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전통 사이에 공통적인 측면을 발견하였다.

󰋮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마태오 27,46)의 문구를 반복하라. 그리고 예수께서 이 말들을 입 밖으로 표명하였을 때 느꼈던 완전한 버림받음에 대해 숙고하라.

󰋮 그런 다음 아래의 말들에 집중하라: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필립비 2,9)

충만함으로 가는 길인 비움, 모든 것으로 가는 길인 아무 것도 없음에 대해 성찰하라.

비 행동의 방법-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어떤 일들을 하는 것보다 일들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에 더 관여하는 부드러운 예술은 이 동양적 종교들 속에서 발견된다.

󰋮 다음의 문구들에 대해 성찰하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마음대로 들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먹으면
그 때는 팔을 벌리고
남이 와서 허리를 묶어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다. (요한 21,18)

󰋮 인생의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정과 행동들을 통하여 그들의 운명을 지배하려고 한다. 초기에 당신의 삶을 다루었던 방법들, 당신이 만들었던 결정들, 당신이 세운 목표들의 목록을 작성하라.

󰋮 삶의 다음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삶을 지배하기보다 내적인 생활에 더 열리게 된다. 당신의 삶을 되어지는 대로 놔두었던 예들을 나열하라. 예를 들어, 상해로 인한 병, 나이, 절망, 패배의 때 등.

󰋮 요한 복음의 내용을 훑어 보고 다음에 당신의 목록들을 읽으라. 일기에 당신이 성찰한 것을 써 보라.

힌두교 성전에서 인용된 다음의 구절들을 성찰해보라: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우주를 바라보라: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움직이는 것들을 바라보라. 순간적인 것을 떠나고 영원함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라: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당신의 마음을 두지 말라”(<우파니샤드>에서).

󰋮 어떻게 이 인용구가 그리스도교 성서를 당신에게 상기시키는가? 그 둘은 어떻게 다른가?

󰋮 당신의 고유한 영적 길에 이 구절이 어떻게 적용되는가?

󰋮 이 힌두교 전통의 구절처럼 다른 전통들로부터 복음의 메시지를 발견하는 현명함을 주십사고 하느님께 청하라.

선에서는 어떤 사람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그의 본래 얼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본연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광명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에게 말하고 있는 다음의 말들을 선의 이러한 이미지와 비교해 보라: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예레미야 1,5)

이 말들을 들으면서 예레미야는 하느님 안에서 그의 진정한 자아를 경험하였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자아이며 머튼이 말한대로 착각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자아이다.

󰋮 당신의 본연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을 막는 장애물들에 대해 생각하라.

󰋮 당신의 본연의 얼굴이 거울이라면(불교의 비추는 마음), 그것이 당신 자신의 얼굴보다 다른 얼굴, 즉 하느님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 하느님에 의해 고유하게 사랑받고 선택된 당신 자신에 대해 묵상하라. 일기 속에서 묵상에 들어 가 보라.

 

하느님의 말씀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지구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 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마르코 4,30-32)

이것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성령이다. 쌀알보다도 더 작고 보리씨보다 작거나 겨자씨보다 더 작거나 카나리아 씨앗보다 작거나 카나리아 씨앗의 낟알보다도 더 작다. 이것은 내 마음 속의 성령이다. 지구보다 더 크고, 하늘보다 더 크고, 창공보다 더 크고 모든 이 세상보다 더 크다. (<우파니샤드 철학>에서)

<마침 기도>

오 하느님,
서로를 온 마음으로 충만하게, 완전하게 받아들이면서
저희는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에게 감사드리며 당신을 숭배하고 온 존재를 다해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당신 존재 안에 있고,
우리의 영이 당신의 성령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희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저희가 제각기 다른 길을 갈 때에 사랑으로 함께 묶이게 해 주시고
세상 안에 당신을 현존케 하고
사랑이신 궁극적인 실체로서 당신을 증거하게 하는
이 하나의 사랑의 정신 안에서 일치를 이루도록 해 주소서.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합니다.
사랑은 승리합니다.
아멘
(캘커타에서 제 1차 영적 장상 회의에서 한 토머스 머튼의 마침 기도).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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