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회개의 은총을 거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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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회개의 은총을 거부하지 마라”
  • 프란치스코 교종
  • 승인 2016.12.0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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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12월1일 목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사진출처= L'Osservatore Romano

[프란치스코 교종은 12월 첫날인 대림 1주 목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우리 모두는 은총을 거스르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이를 발견하고 주님께서 자신들이 죄인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십사 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공허하거나 정당화시키려 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내면에 숨어 은총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만드는 것이며 가토파르도식 사고방식처럼 오직 외형만을 바꾸어 자신이 가진 특권을 보호하려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바꾼 것 같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따라서 교종은 죄로 인해 주님을 거부하려는 마음을 은총으로 극복하기를 청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가로막는 것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저항이 있습니다. 선한 의지가 생겨나도록 하려는 마음에 대한 거부가 그 중 하나입니다. 그 예로 사울(바오로)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 전까지 은총을 거부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직접 사울을 멈추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드러난 저항이 회개를 위한 은총에 열려 있다면 건강한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의 방식으로 은총에 대해 보이지 않는 저항을 합니다. 이를 발견하고 주님 앞에 드러내어 우리를 정화시켜 주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율법학자들은 스테파노가 증언한 것에 대해 저항합니다. 그들은 마치 하느님의 영광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척하지만 성령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스테파노는 생명을 걸고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드러나지 않는 거부감은 모두가 지니고 있습니다. 어디서 온 천성일까요? 거부감은 우리가 회개로 나아가려는 것을 방해합니다. 언제나 말입니다! 멈추어 서는 것은 맞서 싸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달라요! 마치 붙잡힌 것 같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수동적인 저항입니다.
 
어느 기관이나 가족이 변화를 만들려고 하면 언제나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가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만일 저항이 없다고 한다면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일이 아닐 겁니다. 이러한 반대가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실행하시지 못하도록 악의 세력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세 가지 유형의 숨어 있는 저항이 있습니다. 첫째, 공허한 말의 저항이 있습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주님, 주님’하고 말하는 이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밭으로 두 아들을 보내려고 하는 아버지에 대한 비유 말씀과도 같습니다. 한 아들은 싫다고 했지만 포도밭으로 갔고, 다른 아들은 그리 하겠다고 해놓고 가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주 외교적인 언사로 “네”라고 답할 수 있지만 이건 아니라는 대답입니다. 얼마나 말로만 '네'라고 하는지요. 모두 변화됩시다. 말한 그대로 '네'라고 말입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하지만 진짜 의미는 부정인 가토파르도(누리는 혜택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진보를 떠받드는 것)식의 마음이 있습니다.이것이 공허한 말의 저항입니다.
 
또 다른 저항으로는 정당화하려는 말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속적으로 정당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반대되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너무 정당화 시키려 할 때 하느님의 좋은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악마의 악취가 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당화 시키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당화 시키는 말들은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저항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으로는 비난의 말들입니다. 다른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증거는 바리사이와 세리들에 대한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때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보게 해 달라고 주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 각자에게 두려움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마음에서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해도 말입니다. 대신 주님께 명확히 말씀드리십시오. “보세요, 주님. 저는 이걸 숨기고 싶어합니다. 당신 말씀이 제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주님의 권능으로 저를 구해주십시오. 당신 은총으로 죄로 인해 생기는 저항을 이겨내 주십시오.”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원죄로 인한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습니다.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흉한 일인가요? 아닙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주님의 은총에 거스르고자 하는 저항의 방패로 사용할 때 흉한 것입니다.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입니다. 우리 모두 이것을 묵상하면서 다가오는 성탄을 준비합시다. 감사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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