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자비의 희년은 끝났어도 자비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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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자비의 희년은 끝났어도 자비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 프란치스코 교종
  • 승인 2016.11.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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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수요 일반알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23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자비의 특별희년 끝난 후 첫 번째 가진 수요 일반알현 가르침에서 자비의 희년은 끝났지만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자비의 활동은 언제까지나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출처= L'Osservatore Romano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비의 특별희년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자비의 활동에 대해 묵상할 것이 아직 남았기에 계속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자비의 영성적인 활동에 대한 묵상은 서로 관계가 있는 두 가지 행동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것과 무지한 이에게 알려주는 일입니다. 

무지한 언사는 무척이나 강합니다. 안 그런가요? 하지만 모르고 있는 이에 대해서는 알려주어야만 합니다.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족과 만나는 모든 이들, 특히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상황에 맞고 조리 있게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한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예로 생각해 봅시다. 요즘같이 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아직까지 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인간의 존엄에 반대되는 큰 불의가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쉽게 착취당하고 다양한 사회의 악습에 이용당합니다.
 
  교회는 오랜 기간 교육환경에 기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실천해 왔습니다. 복음 선교에는 가난한 이들의 인간존엄성 회복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유스티노 성인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더욱 잘 알도록 하기 위해 2세기 이곳 로마에 세우신 학교는 그 첫 번째 모범이 될 것입니다. 칼라산즈의 요셉 성인도 유럽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무료 학교들을 설립하셨고 그 외에도 수많은 성인성녀들께서 여러 시기에 혜택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셨습니다. 교육이 그들에게 주어진 비극과 차별로부터 삶을 호전시킬 수 있는 길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평신도와 수도자, 사제들과 같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해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사업에 삶을 바치셨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까! 그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교육의 선구자들은 자비의 활동의 근원을 이해하고 계셨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셨습니다. 단순한 활동과 작은 가르침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까! 

교육은 많은 경우 일자리를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과 후앙 보스코 성인들처럼 많은 살레시오회 신부님들도 계십니다. 돈 보스코 성인께서는 거리의 소년들에게 숙소와 학교와 노동 그리고 일자리를 위한 교육을 제공하셨습니다. 수많은 전문 기술학교들이 다양하게 생겨났고 인간과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가르치면서 직업교육을 하였습니다. 교육은 진정 복음화의 특별한 형태라고 할 것입니다.

교육을 받을수록 사람들은 확신과 의지를 가집니다.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필요한 것이지요. 좋은 교육은 비평의 방법론을 배우고 일정 분야의 의심되는 것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고 해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더욱 훌륭한 양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합니다. 

자비의 활동으로서 조언을 해준다는 것은 의심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의문점으로 인한 아픔과 두려움의 고통과 갈망을 줄여주는 것이 자비의 활동입니다. 그렇기에 불신으로 인한 나약함을 지닌 이들을 지탱시켜 주는 진정한 사랑의 활동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신부님 하지만 제가 가진 믿음은 너무 많은 의심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부님은 의심해보신 적 없으시죠?” 천만에 저도 많습니다. 많아요. 

우리 모두는 의심이 드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믿음을 흔드는 의심은 하느님과 예수님, 그분들이 지니신 우리를 향한 사랑을 더욱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염원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혹이 있습니다. 찾아보고, 공부도 하고 조언도 구해보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고민들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해 줍니다. 

모든 종류의 의심은 극복됩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을 지닌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실질적인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신앙 선포가 동반된 교리입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으로 신앙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을 의심이 배가되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만들지 맙시다. 신앙은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형제들, 특히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실현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합당하지 못한 우리 안에서 모두와 나눔을 하도록 이끄는 사랑이라는 복음의 진실을 느끼게 되어 수많은 의문은 사라질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보시다시피 자비의 두 활동은 우리 삶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의 신비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슬기로운 이들이 아닌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기에(루카10.21, 마태11.25-26 참조) 우리 각자가 주님의 말씀이 실천될 수 있도록 일상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전하도록 부름 받은 가르침과 의혹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확신은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요한1서 4.10 참조) 위대하며 조건 없이 언제나 주어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절대 거두지 않으십니다! 절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지는 사랑 때문에 우리 형제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증거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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