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명상여행] 애도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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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명상여행] 애도의 춤
  • 재마 스님
  • 승인 2016.11.24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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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거리를 황금빛으로 가시는 가을을 황홀하게 수놓았던 지난 한 주 동안 건강하신지요? 안부를 묻기 어려운, 중고생들조차도 혁명정부를 외치는 시국현실이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바꾸는 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지난 주 토요일 밤은 광화문에 나가지 못했는데요, 지인의 모친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어 제 발길은 그곳으로 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도 장례식장에 가서 기도를 해드릴 분이 계십니다. 이렇듯 죽음은 우리와 너무나 가까이 있습니다. 가톨릭 전례력으로도 11월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달이지요. 떨어지는 낙엽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이승의 생명이 유한함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진=재마

저는 매주 한 번씩 암병동에 가서 환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영적 돌봄을 합니다. 이번 주는 유난히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만나고 왔어요. 30대 초반의 유방암환자인 그녀는 속이 상해서 울고, 호흡하는 것이 힘이 들어 울고, 애기들이 보고 싶어 울고, 혼자 남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니 더 숨쉬기가 어렵다면서 함께 했던 30분 내내 울기만 했었습니다.

복도에서 만난 그녀의 어머니도 눈물을 훔칩니다. 어머니는 환자가 6학년 되는 해 남편을 떠나보낸 후 하나 뿐인 딸을 키우며 잘 지냈다고 합니다. 이제 딸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놓고 잘 사는가 싶었는데, 암이 걸려 투병 중에 재발과 전이가 여기저기에 일어나 다시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항암제도 더 이상 듣는 것도 없어서 딸에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해요. 이제 서서히 딸과 이별해야 할 텐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자꾸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병상에 계신 분들 중에 의식이 있는 분들을 만나면 저 세상으로 가는 자원, 자량을 쌓으시라고 초대합니다.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갈 의도와 행위의 공덕을 지을 수 있는 방법이지요. 그것은 호흡을 통해 ‘일체존재들이 행복과 행복의 원인 갖기를, 일체존재들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벗어나기를, 일체존재들이 내면의 변치 않는 기쁨 갖기를, 일체존재들이 애증 없는 평등심에 머물기를’ 바라는 염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과 모든 이를 위한 선한 의도를 호흡의 행위를 통해 공덕을 지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그 자체로 행복하게 머물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거나 누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라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해보면 숨을 쉴 수 있어서, 혼자 움직일 수 있어서, 미소 지을 수 있어서, 신발을 신을 수 있어서, 간병해주는 분이 계셔서,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들을 수 있어서, 말할 수 있어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아시고는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가까운 식구들과 친척, 지인들부터 기억나는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고마운 것을 찾아 고맙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마음을 기쁘고 가볍게 하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그러다가 미움과 원망으로 인해 가슴 한 쪽을 무겁게 차지한 이들이 떠오른다면 용서를 빌거나 묶었던 것을 풀어주고 놓아주는 실험을 해보라고 권합니다. 이럴 때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함께 흘리기도 하는데요, 눈물과 함께 그 사건과 상황, 사람들을 놓아주라고 권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집착과,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가볍게 다른 세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번 주 소마명상여행에서는 지금까지 떠나간 사랑했던 이들과 미워했던 모든 이들 중에서 마음으로 아직 보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다시 떠나보내는 춤을 춰보시면 어떨까요? 그 분과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며, 그 분이 좋아했던 음악을 틀어놓고 그 리듬과 함께 그분을 떠올리며 고마움과 그리움을 움직임으로 표현해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잘하고 못하고는 없습니다. 그저 호흡과 맥박의 리듬으로 시작하여 손가락, 발가락 등 신체부위의 작은 것 하나부터 몸이 움직여지는 대로 허용하면 그뿐입니다. 그리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사건, 상황들도 모두 떠나보내는 움직임을 해보세요. 이때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힘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하시는 것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생각으로 이렇게 움직이거나, 저렇게 움직여야지 계획하거나 의도하지 않고, 몸(소마)의 지혜에 자신을 맡겨보시길 권합니다. 세포와 근육들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떤 움직임들이 시작되는지 알아차리면서 남아있는 기억들을 내려놓으며, 풀어주는 움직임들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떠나보내는 움직임을 하고 나면 아마도 <멀리서 빈다>처럼 우리 자신이 ‘꽃’이나 ‘풀잎’처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눈부신 아침’과 ‘고요한 저녁’을 경험하는 한 주간이길 빌며 나태주(1945~) 시인의 시를 들려드립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재마 스님
소마명상여행 길잡이, 중앙승가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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