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기도 2 : 시인처럼 기도하다 '기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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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기도 2 : 시인처럼 기도하다 '기도'가 되다
  • 머레이 보도
  • 승인 2016.11.1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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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용길

시인은 그가 시를 만들든 않든 간에 시인이지만, 저술가는 쓰지 않는다면 저술가가 아니다. 프란치스코는 시인이지만 시를 만드는데 그의 삶을 보내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고 가난하게 됨으로써 그의 삶을 산다. 허지만 시인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을 시적인 요소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기도할 때 그는 시인처럼 기도한다.

프란치스코의 첫 전기작가인 셀라노의 토마스는 프란치스코의 기도에 대하여 많은 것들을 말하는데, 그것들을 함께 모아보면, 기도하는 시인에 관한 복합적인 그림이 형성된다. 프란치스코가 어떻게 기도했는가에 대한 세라노의 묘사를 사용하여 나는 프란치스코의 기도에 관한 일종의 캐논을 그려보았다:

"너의 모든 시간을 마음속에 지혜를 새기는 거룩한 여가로 만들어라."

"방문자들이나 그 밖의 다른 용무가 너를 방해 할 때, 너의 기도를 끝까지 하는 것보다는 중단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런 연후에 너는 너의 가장 깊은 중심 속에서 다시 기도로 돌아갈 수 있다."

"네 영혼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하느님과 함께 쉴 수 있는 고독의 장소로 물러나라."

"네가 주님의 현존을 체험 할 때, 이 숨겨진 만나를 들추어 내지 말아라. 다른 이들이 그 신랑의 만짐을 알지 않도록 하라."

"네가 주님께 요청하는 한가지에 너의 온 존재를 다해 주의와 애정을 향하게 하라. 그렇게 하여 너는 너무 많은 기도를 하기보다 네 자신이 기도가 되어갈 것이다."

"성령의 어떤 방문이든지 경시하지 말아라. 심지어 어떤 일이 압박하거나 여행 중에 있든지 은총의 만짐에 응답할 시간을 가져라. 자주 일어나는 주님의 잡아 올림 속에서 달콤한 만나를 맛보아라."

여행 할 때, 비를 맞으며 로마에서 돌아오는 프란치스코의 이야기와 그가 어떻게 말에서 내려 비에 흠뻑 젖은 채 오랜 시간 동안 서 있었는지를 기억하면서 항상 기도하기 위하여 멈추어라. 

네 앞에 이 이야기를 간직하라: 어느 사순절에 프란치스코는 약간의 여가 시간에 작은 꽃병을 만들면서 그 일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고 있던 중에 그 꽃병을 보기 위하여 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의 내적 자아가 그런 욕구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의 목소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중단했던 것이 슬펐던 그는 형제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아, 그것은 내 마음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얼마나 무가치한 일인가! 나는 그것을 주님께 희생으로 바칠 것이며, 그것이 방해했던 것을 바칠 것이다.”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는 그 작은 꽃병을 집어서 불 속으로 던졌다.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점철된 전 생애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하는 진한 에너지이다. 첫 전기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그렇게 많이 기도하지 않는다. 자신이 기도가 된다. 프란치스코의 기도에 대한 모든 묘사들 중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이 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나를 늘 사로잡는 묘사인데, 왜냐하면 나는 각 사람의 운명이 어떻든지 살아있는 기도가 되어 가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고도로 개인화된 이야기이며, 각 사람이 나름대로 자신을 형성해 주는 토양을 취하고 그 굳은 토양을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민감한 도구로 변화시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라 베르나 산의 은수소에는 깊은 감동을 주는 성 프란치스코의 상이 있는데, 춥고 비오는 거리를 운전하던 오후에 처음으로 보았을 때, 그 상은 내 자신이 상상하는 프란치스코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그 상은 어떤 격노한 예술가가 눈과 귀와 입을 도려내고 거칠게 비틀은 팔과 다리와 뒤틀어진 목 그리고 마침내는 그 전체를 땅에 뭉그러뜨린 것과 같이 거칠고 완성되지 않은 한 조각의 진흙을 닮았다.

그러나 조각품 자체는 수동적인 진흙이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마치 조각가의 거친 강타와 찌름 속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황홀경에 빠진 조각가의 손을 붙잡기 위하여 땅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의 어떤 원천으로부터 밀어내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조각품은 항상 내 앞에 있고 나를 그 안에서 모든 인간과 일치시키는 어떤 근원적인 진흙으로부터 내 꿈속에 일어난다. 그것은 홀로 정신과 마음속에서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기도가 되는 진흙 그 자체이다. 우리의 전 존재가 영 속에서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무엇인가가 될 때에 우리는 하느님의 엄숙한 손이 우리를 십자가 위의 뒤틀어진 그리스도의 모양으로 빚으시도록 허용하는 우리자신을 발견한다. 오직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기도하기를 멈추고 우리자체가 살아 있는 기도로 변한다. 기도의 모습은 각 사람이 제각기 다양한 살아있는 기도가 되어 가는 것처럼 개별적이다.

<출처> 머레이 보도의 <성 프란치스꼬의 길-모든 이에게 도전하는 프란치스꼬의 영성>, 참사람되어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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