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이런 가난도 있다, 들의 백합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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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이런 가난도 있다, 들의 백합들처럼
  • 로살리 뤼글
  • 승인 2016.11.15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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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무엇을 소유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데레사 머레이 수녀)

바우어리가의 가난을 기꺼이 끌어안는 도로시 데이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복음을 완전하게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확고한 표양이었다. 내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주제에 관하여 열정을 보였다. 특히 가톨릭일꾼에 초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더 그랬다. 그들 대부분에게 가난은 새롭고도 평범하지 않은 주제였다. 그리고 도로시가 지은 책들, 특히 「환대의 집」을 읽어보면 역경의 상황을 앞에 놓고 영적으로 활력을 느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난 벌레가 무섭다는 얘기를 하느님께 말씀드리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캐트린 럼프가 한 리포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가난은 가톨릭일꾼에서 보면 이쁜 모습이 아니었다.” 니나 폴린 무어는 도로시가 가톨릭일꾼에서 보낸 대부분의 세월 동안에 경험한 가난에 관하여 생생한 묘사를 한다:

❧ 도로시는 참으로 가난의 삶을 포옹했다. 나는 그가 작은 셋집에서 한 여성과 함께 살았던 것을 기억한다. 찬물만 나오고, 화장실도 없어서 아래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다. 방은 이 여성이 모아오는 신문지로 가득 찼다. 사적인 공간이나, 쾌적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도로시의 선택이었다. 매일 그의 생활은 어느 곳에서도 쉽지가 않았다.

버니 길리간 신부는 그와 동료 가톨릭일꾼인 쟈네뜨 노엘이 뉴욕에서 겪었던 가난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 우리가 도로시를 뉴욕의 가톨릭일꾼에서 처음 만났던 때는 1950년대 후반이었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그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하여 내려갔다. 그날 밤 저녁식사는 생선대가리와 밥 한 공기였다. 생선의 눈과 거기에 달린 모든 것이 그대로 접시 위에 놓여 있었다. 아, 나는 그런 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먹지 않는 것을 사람들이 볼까봐 부끄러워서 빵과 밥을 조금 먹는 체 하였다.

아, 그땐 정말로 어려웠다. 쟈네뜨 노엘이 처음으로 뉴욕의 가톨릭 일꾼에 와서 살아 보려고 했을 때, 그는 “험악하고 공포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쟈네뜨는 처음 와서 수 주일 동안만 머물렀다. 벌레들이 온통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다. “나는 심판에 관해 생각했어요, 하느님께서 나에게 물으시겠지요, ‘왜 너는 내가 너를 불렀을 때 가톨릭 일꾼으로 가지 않았는가?’” 쟈네뜨는 이렇게 말했다, “아, 난 벌레가 무섭다는 얘기를 하느님께 말씀드리기가 부끄러웠어요.”(후에 물론 쟈네뜨는 나와 함께 허버즈 타운에 있는 가톨릭 일꾼에 갔고 죽을 때까지 뉴욕에서 살았다).

우리의 “소유물”이란 다만 우리가 빌리고 있는 것

사우스 벤드의 테리 맥커넌은 1949년, 어떤 사람이 도로시 데이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런 상황아래에서 어떻게 지 낼 수 있어요?” 도로시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 일이니까요.” 도로시는 가난하지 않은 것보다 가난해지는 것이 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빵 때문에 우리를 용서해주기를 청하는 성 빈센시오 아 바울로의 기도를 자주 인용하곤 했다. 그러나 도로시는 또한 모든 사람이 환대를 받아들일 때 편안하기를 바랐다. 아네뜨 컬렌은 이렇게 말했다, “도로시가 살았던 모든 곳은 가난한 사람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면서 발부터 먼저 씻어야 한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우리는 도로시의 옷이 기본적으로 기부 받은 것들 중에서 오는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짐 훠레스트는 “도로시는 사치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그의 삶은 매우 어려웠다. 도로시는 옷과 좋은 음식을 좋아했다. 보통 좋은 것을 좋아하였다. 가톨릭 일꾼의 궁핍한 상황은 벌로 좋지 않은 음식, 때때로 매우 기본적인 것들도 없었을 뿐 아니라, 눈과 코에 대한 모독이었다.”라고 말한다.

도로시는 몇가지 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는데 그것마저도 가볍게 지녔다. 패트리샤 앤 브라이온은 1970년대 초기에 도로시와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 나의 이메일 친구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어느날 도로시가 우리의 “소유물”이란 다만 우리가 빌리고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그것들을 더 필요로 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한 여인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도로시는 자기 것에 대해 매우 너그러웠다! 항상 자신의 책들을 내 서랍위에 놓고 가고, 내 딸 제니퍼에게 막대사탕, 작은 교회 모형, 아동용 묵주, 자기에게 보내온 것이나 기부되어오는 아동 책들을 주곤 했다. 물건들에 대한 그의 태도를 생각해보니 나는 그 때 환대의 집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여성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은 내가 더 가졌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나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도로시가 물건에 대하여 좀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그들이 도로시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주었을 때, 그가 재빨리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주어버리는 것을 보고 그랬다. 에이드 베썬은 도로시를 사랑해서 아름다운 스웨터를 짜 주곤 했던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했다. 도로시는 스웨터들을 함께 살고 있던 여인들에게 주곤 했다. 그래서 어느 겨울에 에이드의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에(1920년대)자기가 짰던 스웨터를 도로시에게 주면서 말했다, “도로시, 난 이걸 당신에게 빌려주는 겁니다. 그건 내꺼니까 잘 보관하세요.”

지적인 탐욕에 관하여

세월이 지난 후, 가톨릭 일꾼의 가난은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쟈네뜨 노엘이 말한다:

❧ 어느날 도로시는 그가 사치스럽다고 느끼며 불평하고 있었다. 그는 “난 TV도 있어요, 에어콘도 있네요! 이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도로시, 그냥 ‘고맙습니다.’ 하느님께 선물 고맙다고만 말해요.” 그러자 그는 웃고 대답하지 않았다.

리챠드 클리버는 도로시와 지적인 소유에 관하여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이건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도로시 이야기”이며 그에게서 얻은 가장 개인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도로시는 콜롬비아에 있는 유대신학원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도로시는 학위 수여식에 참석치 않았고, 어떤 사람이 대신 받아 왔는데, 학교 프로그램도 가져왔다. 프로그램은 한 쪽에는 영어로 다른 한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었고 우리는 금요일 밤 원탁 모임 전에 저녁식사를 하며 앉아 있었다. 나는 “알다시피, 나는 늘 히브리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전혀 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로시는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때때로 그럴 기회가 없는 것도 일종의 가난입니다. 우리는 순전히 물질적인 가난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가난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가끔씩 생각했다. 알다시피, 나는 도로시가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만큼 철저하게 가난을 실천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전혀 머리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떤 지적인 탐욕에 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고향과 계급, 그 모든 익숙한 것을 떠나는 가난

이 세상 것들에 대한 도로시의 포기에 관해 마죠리 라니는 다음과 같이 예민한 관찰을 하고 있다. 마죠리는 부르클린의 노동자 가족 출신이고 자라면서 도로시 데이를 알게 되었다:

❧ 나의 아버지는 도로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지 못한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자면, 도로시는 중산층 출신이므로 노동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가 그로 하여금 변화하게 했는데, 내 아버지는 그것이 단순히 자기가 속한 계층이라든가 자기 가족들을 돌보는 것 이상의 더 높은 동기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 “우리를 길러 준 고향”을 잘 돌보고, 우리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로시는 그를 키워진 공동체와는 다른 공동체를 알고 사랑하고 일하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속한 그룹을 사랑하는 특권을 포기했다. 지위를 포기했다. 물질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출처: <DOROTHY DAY : Portraits by Those Who Knew Her>, by Rosalie G. Riegle, Orbis, 2003. <참사람되어> 편역,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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