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스트라이크 한 방, 대통령의 하야!
상태바
절실한 스트라이크 한 방, 대통령의 하야!
  • 최충언
  • 승인 2016.11.15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충언 칼럼] 

뉴스가 영화보다 재미있는 요즘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한국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정치가 희화화 된 지도 오래되었지만,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는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역겨움과 악취가 도를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 지난 토요일에는 전국에서 100만의 인파가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는 분노의 함성으로 장관을 연출했다. 나도 5만의 부산시민들과 ‘박근혜 구속 수사’라는 피켓을 만들어 촛불을 들고 서면 일대를 행진하며 구호를 외쳤다. 중고생들도 시국선언을 하고 집회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당당히 전한다. 이미 대세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균도와 함께 걷기

어제 집회에 참가하면서, 나는 균도와 균도아빠를 생각했다. 균도는 발달장애인이라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균도는 늘 엉덩이가 들썩거려 밖으로 나가기를 좋아한다. 몇 달 전, 심근경색으로 시술을 받은 균도아빠의 건강도 염려되었다. 역사적 현장을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직접 보여주려는 균도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한 주 전에 나는 균도와 사흘 동안 서울에 다녀온 뒤, 감기몸살로 고생하는 균도아빠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형편으로 무궁화호 야간열차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걸려 청량리역에 새벽에 닿았을 것이다. 다행히 잘 도착했고 집회도 잘 참가하고 많은 사람들도 만난 모양이었다. 광화문에서 내자동 로터리로 청와대를 향해 뛰어다니는 균도의 사진을 보니 그리 멋질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눈을 잘 맞추지 못한다. 균도와 만나면서 서로 교감하다보니까 이제는 균도가 나와 눈을 맞춘다. 균도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을 나는 ‘균도와 세상걷기’라고 이름지었다. 영화 관람을 하든, 공연을 보러가든, 야구장에 가든, 월성 원전을 가든 ‘균도와 세상걷기’다. 11월 첫째 주에 서울에서 외과추계학술대회가 있어서 균도 부자와 함께 올라갔다. 저녁에 청계광장에서 같이 촛불도 들었다. 서울대병원에 계신 고 백남기 어르신 빈소에도 찾아가서 균도와 같이 절을 두 번 올렸다. 꼭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했다. 균도는 절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진=한상봉

순실증, 영화 스플릿...그래서 더 아름다운 청년, 균도 

‘순실증’이라는 새로운 증상이 생겼다고 한다. 청년들은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이고 절망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오죽하면 20대 청년들에게 대통령의 지지율이 0%일까. 치통으로 음식 먹기가 두려운 나도 요즘 ‘순실증’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조와 절망이 섞인 분노, 우울증에 가까운 무기력감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11월 항쟁에 참여해야 하는데 일요일이 병원당직이고 원고 마감이 월요일이라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토요일은 휴무라 서면집회 전에 영화 <스플릿>을 봤다. 스플릿(split)은 볼링에서 첫 번째 투구에 쓰러지지 않은 핀이 간격을 두고 남는 것을 말한다. 볼링계의 전설이자 국가대표로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던 철종(유지태)은 교통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아기까지 잃어버린다. 낮에는 가짜석유 판매원으로, 밤에는 도박볼링을 하는 하찮은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짝인 브로커 희진(이정현)은 볼링 코치였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볼링장을 운영하다 빚을 지게 된다. 결국 두꺼비(정성화)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볼링장을 빼앗길 위기에 빠진다. 이자라도 갚기 위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그러다 발달장애에다 자폐증상이 있는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을 만나게 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우스꽝스런 투구 폼으로 던졌다하면 스트라이크를 치는 영훈을 고아원에서 빼내 도박 볼링판에 끌어들이게 된다. 결국 행복한 결말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발달장애인 영훈의 재능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른들의 욕망에 역겨움이 일었다. 발달장애인을 바라다보는 우리사회의 편견과 백안시하는 시선은 불편하기만 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균도아빠와 서울 광화문 집회에 간 아름다운 청년 발달장애인 균도를 생각했다.

노래방 마이크를 절대 놓지 않았다

균도와 세상걷기를 하면서 나름 느낀 점 하나가 있다. 균도는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언젠가 노래방에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런 저런 일이 생겨 약속이 미뤄지고 있었다. 균도의 행동이 이상했다.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었나보다. 서울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생명에 관한 관심이 많은 나의 대자와 기장에서 전복죽과 해산물을 먹는 자리에서 균도의 시무룩한 표정과 우울감은 최고조에 달했음을 알게 되었다.

균도에게 이 만 원을 주면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맘껏 부르라고 했더니 하늘을 날듯이 기뻐하는 모습이라니. 뒤에 들으니, 균도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혼자서 두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한 손에는 마이크를, 다른 손엔 음료수를 쥐고서. 균도아빠가 쓴 책인 <우리 균도>에 나오는 장면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지었다.

"노래방에서 1시간 반 동안, 균도는 절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어디서 배웠는지 록 가수처럼 머리까지 돌려 대는 통에 배꼽을 잡는다. 특히 싸이의 챔피언을 부를 때는 엽기 그 자체다. 혼자서 몇 바퀴를 돌고 난 뒤 어지러운지 벽을 잡고 컥컥거린다. 술 취한 아저씨가 전봇대를 끌어안고 있는 형상이다."(<우리 균도>, 140쪽)

영화 <스플릿>, 최국희 감독, 2016

약속을 지키는 것의 엄숙함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균도의 삶의 원칙이다. 한 번 한 약속을 균도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큰아버지, 몇 월 몇 칠 노래방 가기로 하셨죠? 노래방 언제 가요?” 앞으로는 이런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쓸 것이다. 가능한 한 균도의 눈높이에서 눈을 맞추려고 노력해야겠다. 균도에게 배운다. 약속은 지켜야한다는 것을.

어제 집회의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병원당직을 서는 날이라 일요일에 출근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마침 전태일 열사의 46주기 되는 날이다.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스물 두 살의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근로기준법을 품에 안고 분신하였다. 

‘준수하라’는 것은 약속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야 우리는 백남기 어르신의 부검을 막아내고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물대포도 운영지침을 어기고 쏘아댔고, 엉터리 사망진단서도 진단서 작성지침이라는 약속대로 작성하지 않아 사인을 외인사로 하지 않고 병사로 작성해서 그 난리를 친 것이 아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입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들 탓’으로 돌리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은 무얼 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의무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예수회 학교를 방문했을 때, 정치 참여에 대한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꼭두각시 대통령이 내려올 때까지 균도와 거리에 나가 외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의무니까.

시원한 ‘스트라이크’ 한 방이 절실하다

볼링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묵직한 공을 바닥에 던져 핀이 모두 쓰러지면서 내는 경쾌한 스트라이크의 소리에 기분이 좋아 하이 파이브를 한 경험 말이다. 영화 속의 영훈이도 자폐가 있던 어린 시절에 철종의 볼링시합에서 퍼펙트게임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자랐다. 비디오 녹화까지 하면서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고아원 선생이 어린 시절에 자주 보셨나 봐요, 하며 철종에게 영훈이가 눈을 맞춘 장면을 이야기한다.

어려운 국면이다. 영화 속의 철종처럼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여 상황을 정리하는 시원한 ‘스트라이크’ 한 방이 절실하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하야를 외친다. 발달장애인 균도도 백팩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피켓을 붙이고 서울 광화문을 누볐다. 답은 간단하다. 하야만이 답이다.

어제 광화문 집회에서 가수 정태춘이 말했듯이, 선이 악을 이기는 세상, 염치가 몰염치를 몰아내는 세상을 만들려면 직접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크 한 방은 아니더라도 깔끔한 스페어 처리를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연대해서 끈질기게 하야를 요구하는 길 외엔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아모스 선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아모스 5,24)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