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위한 작가, 엘리 비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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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위한 작가, 엘리 비젤
  • 케리 케네디
  • 승인 2016.10.30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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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의 바람은 나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 비젤(Elie Wiesel)은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에서도 주민들의 유대가 돈독한 시게트 유대인공동체에서 자랐다. 그는 열여섯이 되던 해에 가족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었고, 두 누나는 목숨을 건졌다. 비젤은 아버지와 함께 부헨발트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비젤의 회고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년 9월 30일 ~2016년 7월 2일)은 루마니아 태생 미국의 유대계 작가 겸 교수이다.

“나는 수용소에서 보낸 그 첫날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밤은 내 인생을 일곱 번 저주받고 일곱 번 봉인된 길고 긴 밤으로 이끌었다. 나는 조용하고 푸른 하늘 저편, 동그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간 아이들의 작은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내 믿음을 영원히 불태워버린 그 불꽃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내게서 삶의 의지를 영원히 빼앗아 가버린 그 밤의 침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느님만큼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더라도, 나는 결코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없다.”

비젤은 나치의 잔학한 행위를 잊지 않도록, 그리고 그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아와 박해 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이고 핵전쟁 방지운동에도 힘을 쏟는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펼쳤다. 1978년 대통령 직속 홀로코스트 위원회 의장에 임명됐고 1980년에는 미합중국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엘리 비젤 재단을 설립해 차별과 불관용, 불의에 대항해 싸워왔다.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당신은 왜 세상의 온갖 불행에 맞서고 있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존재, 우리의 도움,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필요한 아이들을 생각한다. 나는 소수자들을 생각한다. 사회의 소수자, 인종의 소수자, 종교의 소수자, 건강의 소수자, 그리고 에이즈 환자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권리가 없다. 지금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삶의 불행을 덜어주지 않을 권리가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다. 자신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자신이 잊혀진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람들, 수감자들에게는 자신이 잊혀진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지 않다. 박해자들은 수감자들의 용기를 꺾기 위해서 아무도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다. 우리가 쉽게 잊는 것은, 그런 피해를 당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하다는 사실이다. 한 사회의 기득권층이 그들의 가난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여주기는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한다.

나는 뒤처진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우리는 지나치게 생명 지향적이다. 우리는 강하고 젊은 것을 찬미한다. 텔레비전 광고에 예쁜 여자들, 건강한 젊은 남자들만 나오는 것만 봐도, 젊지 않은 사람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무시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 관해 글을 쓴다. 나는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어째서 잔인해지는가? 증오에 대해 말해 달라.

우리는 결론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증오를 품은 사람은, 어느 한 그룹을 미워하는 것은 모든 그룹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증오는 암과 마찬가지로 전염성이 강하다. 증오는 어느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어느 한 뿌리에서 다른 뿌리로, 어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어느 한 그룹에서 다른 그룹으로 퍼져나간다. 증오를 품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파괴하는 것이 곧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을 죽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데서는 기쁨이 없다.

-듣고자 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이런 가르침을 되풀이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이다. 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변하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야기 하나 하겠다. 의로운 남자 하나가 인류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죄악에 가장 깊이 물든 도시 하나를 골랐다. 그 도시를 소돔이라고 하자. 남자는 갖은 궁리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다. 남자는 한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잊지 마라, 살인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남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남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주 두 주가 지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해가 흐른 뒤, 한 아이가 그 남자를 만류하면서 “도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잖아요. 왜 계속 외치고 있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대답했다. “왜 그런 지 알려주지. 나는 사람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그런데도 점점 큰소리로 외치는 건 사람들이 나를 바꾸어놓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용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용기는 정의하기 나름이다. 내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망명자다. 나는 경찰을 무서워한다. 우연히 경찰을 보게 되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달아난다. 나는 제복 입은 사람들이 무섭다. 장군들을 봐도 겁이 난다. 이런 점에서 지지자도 보호해 주는 사람도 한 명 없었던 예언자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살피는 아주 강한 하느님이 계시지 않았던가?

증명해 보라. ‘우주를 만든 신인 내가 너를 지명했다’라는 신원증명서가 있었는가? 예언자는 “하느님이 나를 보내셨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예언자는 하느님을 통해서 말을 했다. 용기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이든 왕의 권력이든, 모든 권력은 개인을 파괴할 수 있다. 권력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용기를 찾느냐다. 내 평생의 바람은 나의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진실을 외치다>, 케리 케네디, 뿌리와 이파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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