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개돼지 아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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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은 개돼지 아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 한상봉
  • 승인 2016.10.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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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실상 최순실 정권으로 확인되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빚어진 참상의 중심에는 늘 ‘부패하고 탐욕스런 인간’들이 자리잡고 있다. 세월호, 우병우 민정수석, 진경준 검사장, 미르재단과 K스포트재단, 최태민과 최순실. 박근혜 정부가 종료되어야 그칠 수 있는 참화다.

그동안 청와대는 이 모든 사안에 대해 발뺌을 하고, 여당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옹호하며, 검찰은 합법적인 축소은폐에 부심하고, 경찰은 피해자들을 오히려 겁박해 왔다. 공권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사과마저 거부한 대통령과 경찰 앞에서 “인간이 저럴 수 있나?” 하는 말이 나왔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로 상징되는 탐욕에 기초한 우상숭배와 사이비 종교심, 역사적 트라우마와 친일파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발생한 참사들을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다 발생한 ‘작은 실수’쯤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을 포기한 금수저와 그래도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흙수저의 사고방식이 같을 수 없다.

그들에게 대다수 국민은 ‘개돼지’에 다를 바 없었고, 그래서 짐승들이 바다에 수장된다 한들 오래 애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사나운’ 짐승이 물대포에 맞아죽었는데 ‘사과’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인간이란 ‘기득권층’과 동의어일 뿐이다. 그 가증스런 허위의식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

인디언의 눈물을 닦아준 사제 

대학시절부터 내가 주문처럼 외고 있는 긴 이름이 있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1474-1566).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로 스페인 사람들이 ‘인디언’라고 부르던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행한 학살과 참상을 고발하고 ‘그들도 하느님의 자비 안에 있는 인간’임을 선포한 사제이며 주교가 된 예언자이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으면서, 그들을 ‘영혼 없는 짐승’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라스카사스는 이 학살의 현장에서 “이들도 인간”이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적 이권이 달려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즈가 ‘인디언의 눈물을 닦아준 사람’이라고 불렀던 라스카사스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던 라스카사스는 신대륙에서 출세와 영광을 꿈꾸었지만, 도미니코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가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강론을 듣고 식민정복자로서의 삶을 회개하였다. 1492년 이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무력을 통한 선교’를 주장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에겐 선교라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겐 끔직한 재앙이었다.

구원받지 못할 짐승인 채로 살륙당한 인디언

스페인 군대는 대포를 쏘기 전에 인디언들을 향해 ‘개종권유문’을 낭독했다. 알아 들을 수 없는 라틴어로 된 권유문이 낭독되고 나면 인디언들은 ‘신자가 아니라 구원받지 못할 짐승인 채로’ 무참하게 살육되었고, 가톨릭 사제들은 옆에서 ‘평화를 위한 기도’를 계속 읊조렸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범죄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욕심 때문에 인디언들을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취급하였고, 정글의 ‘자유로운 짐승’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자신들의 노예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1525년에 토마스 올티즈 신부는 “인디언들은 복음을 이해하기에 부적절한 인종이다. 하느님은 이러한 사악한 인종을 창조하신 적이 없다. 인디언은 당나귀보다 더 멍청하며 우리 유럽인들의 어떠한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디언을 학살하는 스페인 군인들(드 브리, 1504년 목판화)

그러나 라스카사스는 인디언들도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이라고 항의하였다. 그는 인디언들을 ‘짐승’이라고 부르는 선교사들을 오히려 ‘굶주린 늑대’라고 비판하면서, 그들의 강압적 선교야말로 반(反)그리스도교적이라고 비판했다. 라스카사스는 <인디언 파괴에 대한 보고서>(1552년)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은 겸손하고 인내력이 있으며, 평화롭고 온화하며, 이 세상 어디에나 가득한 분쟁도 소요도 없고, 분노도, 불평도, 증오도, 복수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가장 섬세하고 여위고 연약한 체격의 사람들이어서 노동을 견디기에 힘들고 작은 질병에도 죽습니다. 그래서 비록 노동자의 혈통일지라도 우리들 가운데 왕자들과 영주들의 자식들보다도 허약합니다. 또한 매우 검소하여 최소한의 것들만 소유하고 더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거만하지도 않고 야심도 없고 탐욕도 없습니다. ...

맑고 생기 가득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어서 좋은 교리를 받아들일 능력이 있으며, 순응적이고 우리들의 신성한 가톨릭신앙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합니다. 이들은 하느님이 이 세상에 창조하신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에 가장 최소한의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스카사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20년 동안 1200만 이상의 인디언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인디언들을 광장의 똥만큼도 취급해 주지 않았다. 낙심한 라스카사스는 한 걸음 물러나 저술과 연구를 통해 아메리카의 현실을 고발하고 신학적 성찰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결과 1530년 스페인 국왕은 그의 청원을 받아들여 신대륙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그리스도는 인디언을 위해서도 목숨을 바치셨다

교황 바오로 3세는 1537년 교서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도 하느님을 믿을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며, 따라서 그들의 종교적 권리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라스카사스는 1544년에 지금의 과테말라 지역인 치아파스의 주교가 되어 인디언의 권리를 보호하고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조직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교구장이 되자마자 라스카사스 주교는 노예를 즉각 석방하지 않는 식민정복자들에게는 성체성사를 베풀지 말라고 교구의 모든 사제들에게 지시하였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스페인으로 귀국한 라스카사스는 다시한번 세풀베다와 유명한 신학논쟁을 벌이게 된다. 세풀베다는 정당한 전쟁론을 통해 ‘무지몽매한 인종의 노예화’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였고, 반면에 라스카사스는 “인디언들 또한 우리들의 형제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서도 자기 생명을 바쳤다”고 반박했다.

그후 400년 뒤에 라틴아메리카에 해방신학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짐승으로 취급해 왔던 바닥민중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1979년 열린 푸에블라주교회의에서는 “소수의 사치는 거대한 대중의 비참한 가난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가 이 가난한 얼굴들 속에서 감지해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질문하고 도전하시는 그리스도의 고통스런 모습이다”(2장2항)라고 말했다. 


한상봉(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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