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 그리스도가 못 박힌 교회, 충실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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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그리스도가 못 박힌 교회, 충실한 딸
  • 로살리 뤼글
  • 승인 2016.10.27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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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는 철두철미 가톨릭이었다." (마이클과 마가렛 가비)

개종했던 교회와 도로시 데이가 맺은 관계는 한결같고, 충실하며 열정적이었다. 고 에이드 베썬은 도로시가 가톨릭이 된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기꺼이 희생하려고까지 했다고 말한다. 그 중요한 것은 사회정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도로시는 그 희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피터 모린을 통하여 그는 사회적 가르침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했고, 하느님은 즉시 그것을 보상하셨다!”

로마 가톨릭이 되었을 때, 도로시는 교회 전체를 받아들였다. 교회의 교의, 신심 행위들, 교계 구조 등. 그러나 처음부터 그는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평신도들에게서 기대하고 받는 전통적인 수동성을 넘어선다. 도로시는 자신의 양심, 성서공부, 교회의 회칙들, 성인들의 저술로부터 그가 새롭게 발견한 신앙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기 위하여 도움을 받았다.

교회의 충실한 딸, 그러나 교구에는 시한폭탄같은...

미국 교회 전체를 볼 때 때때로 도로시를 무시하고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마침내 교회기관은 그를 전반적으로 폭 넓게 승인했으며, 뒤늦은 영예를 부여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영예는 가톨릭 일꾼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고 제도화 한 것이다. 도로시는 지금 제도교회에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많은 사회정의 문제들을 앞당겨 다루었는데, 그것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 평화 문제에 관한 적극적인 참여, 인종차별과 반(反)유대주의에 대한 반대, 범교파주의, 평신도들의 전례참여, 그리고 성서에 근거한 영성 등이다.

도로시는 그가 발견한 가톨릭주의를 받아들였고 20세기 후기에야 교회가 받아들였던 주제들을 앞서 실현하고 다루었지만, 교회의 제도적인 측면에 비판적 견해를 갖기도 하였다. 도로시는 그가 사랑했던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래서 “교회의 충실한 딸”이라는 표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이 표현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도로시의 충실성을 그의 복음의 내용에 대한 일관성보다 더 선명하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때때로 분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사적으로, 도로시는 로마노 과르디니의 다음 말을 자주 인용하곤 했다: “교회는 그 위에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이다.” 도로시는 교회의 잘못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교회가 물질주의 문화에 오염되고 있으며 어떤 조처가 필요하다고 자주 상기시켰다. 워체스터의 성모승천대학 교수인 마이클 트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는 교계가 도로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고 생각한다. 도로시는 마치도 당신 교구에 시한폭탄을 터뜨릴 사람 같았다. 그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캔들을 알아볼 수 있고, 교회가 소유한 엄청난 재산을 모두 볼 수 있다. 그래서 도로시는 지금 죽고 없기 때문에 갈채를 보내기가 훨씬 쉬운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추기경과도 잘 지냈지만...타협하지 않는 도로시

여러 사람들이 도로시에게 수도자들의 생활 수위에 관해 비판하는 말을 했다. 마가렛 퀴글리 가비는 어떤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회상한다. 어느 날 도로시가 신학생들에게 말하면서 그들을 창문가에 나란히 서게 한 다음 주차장에 있는 그들의 차를 내려다보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말했다, “처음 할 일은, 저 차들을 다 없애는 것이지요.”

도로시는 주교들에게 지지나 관심, 후원을 얻기 위해서 가지 않았고 대신 오라는 요청을 받을 때에만 그들을 보러갔다. 그는 또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주교들의 허락을 묻지 않았다. 가톨릭 일꾼 운동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존경의 거리를 두는 태도로 인해 주교들은 아니오라는 말을 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아마도 가톨릭언론의 비판을 침묵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도로시의 공손한 중산층 태도 또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주교들과 추기경들과도 잘 지냈다. 특히 도로시의 일관성 있는 평화주의 때문에 자주 불화를 일으켰던 스펠만 추기경과도 잘 지냈다.

짐 훠레스트는 나에게 도로시가 “추기경만큼 단순하고 순진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로시의 신앙과 솔직함 그리고 아마도 은총에 관한 타고난 감각이 때때로 불확실하고 다루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었을 때에도 잘 대처하도록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짐 훠레스트는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말한다:

❧ 나는 도로시와 주교관의 관계가 때때로 어느 쪽이 더 우세한지 우리 중의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로시가 <가톨릭 일꾼>이라는 매우 솔직한 가톨릭 신문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힘든 상황을 견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로시는 타협하지 않았다. 나는 로스앤젤로스의 맥킨타이어 추기경이 보낸 수표봉투를 뜯어보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도로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스프를 진하게 하라는 돈이야.” 그런데 가톨릭 일꾼에는 “스프를 진하게 하는” 기금이 없었다. 그냥 단 하나의 은행구좌가 있을 뿐이었다. 맥킨타이어 추기경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로시는 다른 뜻이 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누가 가톨릭 일꾼에 50달러를 보내면 그냥 쓰여졌다. 아무런 단서가 붙지 않는다. 어쨌건 추기경은 돈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화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꽤 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경탄할 이유 찾는 게 도로시의 취미

스펠만 대주교

그러나 여기 교계와 도로시의 관계에 있어 또 다른 흥미있는 모습이 있다. 가톨릭일꾼의 사람들은 교계에 대하여, 특히 스펠만 추기경에 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 도로시 역시 추기경에 대해 매우 비판적일 수 있었겠지만, 만일 누가 추기경을 나쁘게 말하면, 그는 항상 추기경을 변호했다. 그리고 그것도 막연히 옹호하는 것이 아니었다. 도로시는 나에게 스펠만 추기경이 빈민가인 바우어리가에 병자 성사를 주러가기 싫어하는 사제들 대신 자신이 직접 가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도로시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런 방식으로 알고 있었고, 그들의 좋은 쪽을 보여주기 위하여 말하곤 했다. 그는 대부분의 우리들과 매우 달랐다. 우리는 만일 어떤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일종의 취미같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들을 소집한다. 우리는 우리의 화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꽤 많은 이유들을 만들어낸다. 도로시는 스펠만 추기경을 좋아하지 않을 많은 이유들을 갖고 있었으나, 그에 관해 경탄할 이유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그의 취미였다. 


출처: <DOROTHY DAY : Portraits by Those Who Knew Her>, by Rosalie G. Riegle, Orbis, 2003. <참사람되어> 편역,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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