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 두려움 벗고 사랑 때문에 행동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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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 두려움 벗고 사랑 때문에 행동하는 신앙
  • 웨인 심직
  • 승인 2016.10.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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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하느님에 대한 강력하고 변화적인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의와 평화의 문제에 민감해지게 만들며 철저하고도 진보적으로 정의와 평화에 대해 공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한다.

<시작 기도>

평화의 하느님,
제가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도록 하여 주시고
당신의 진실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를 만드는데 협력하게 하여 주소서.
아멘.

 

머튼에 관하여

콜롬비아 대학 시절 동안, 토머스 머튼은 학생 평화 운동에 관여하였고 할렘가의 우정의 집에서 봉사하였다.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그는 양심적인 병역 반대자의 위치에 있기로 선택한다. 가톨릭에 개종한지 얼마되지 않았어도 그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수도원 생활의 초기 16년 동안 머튼은 세상의 많은 문제들과 행동적 생활의 많은 혼돈으로부터 물러나 있었다. 1950년대 후기에 천천히 자각하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그 다음 10년은 이러한 깨우침이 더 강해졌다. 그는 60년대 문화의 문학에 깊이 빠졌고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핵 재앙에 대해 성찰하였다. 그는 <최초의 유치한 폭탄>이라는 제목의 저항시에서 폭탄을 떨어뜨리게 한 결정을 산문시로 공격하였다.

냉전시기의 자세를 취하는 강대국들에 오싹함을 느낀 머튼은 점점 커지는 핵의 위협에 관하여 피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미국의 가톨릭 신자들과 교회의 침묵에 대해 공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는 곧 자신이 예수회 신부 다니엘 베리건과 평화운동의 다른 사람들과 연합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튼은 그의 전쟁 반대 입장과 수도자적 소명사이에 연결을 보지 못 하는 수도자들에 대하여 불평했다. 다니엘 베리건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세상과 관련하여 수도적 삶과 이상에 대하여... 양피지 위의 생명력 없고 새겨진 글자들의 이름으로 우리는 우리 생활이 성서에 관한 평화롭고 경건한 묵상과 세상으로부터 조용하게 물러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눈과 귀를 열고 예언서를 읽는다면 하느님의 의지, 하느님의 진실, 사람에게의 정의에 대하여 크게 외치라는 책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것이 모든 수도자들의 몫이라고 말하진 않으나 확실하게 어떤 수도자들에게는 의무로서 주어진다고 말한다."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에서)

그의 암자를 방문한 가톨릭 평화주의자들은 머튼에게 용기를 주었다. 간디의 글들을 대하면서 그는 비폭력에 관한 자신의 위치를 발전시켰다. 모든 전쟁을 다 비난하지 않았지만, 머튼은 비폭력적인 반대가 유일한 효과적인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가톨릭 평화주의 운동의 지도자, 제임스 포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폭력의 정의를 확장시켰다:

"...이렇게 하여 참으로 양심적인 병역기피자들인 비폭력적 사람들의 중요성은 핵전쟁뿐만 아니라 폭력과 범죄라는 똑같은 분위기 속에서 핵전쟁으로 이끌어지거나 함께 가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데에 있다. 나는 비폭력 사람들의 관점이 모든 방향으로 확대되어야만 하고 그래서 그것이 진정으로 심오한 영적 운동이 되어야하며 실제로 황폐해 지고 있고 썩어 가는 세상 속에서 생명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 말인가."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에서)

미국 안의 엄청난 인종적 긴장은 머튼의 주의를 말콤 엑스의 삶과 마틴 루터킹의 연설로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운이 좋게 흑인들은 은총의 사람, 사랑의 법을 이해한 사람, 흑인들에게만 주어져 왔던 위대한 신비스러운 비밀의 은총을 가진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영가를 만들어 내었던 사람들은 은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만들어 준 뽑힘의 은총, 끔찍하고 불의한 고통 안에서조차 삶의 의미 없고 사소한 것들을 넘어 그들을 올려 주신 은총."(「죄지은 방관자의 추측」에서)

머튼은 폐쇄적인 폭력의 문제를 단지 몇 몇 지도자들 또는 폭동자들에게서만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 깊이 박혀진 환각에까지 추적했다. 그는 미국의 거리에서 폭동을 막는 유일한 길은 각자 개인이 “마음의 평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멈춤>

불의에 대한 당신 자신의 예민함에 대해 생각해 보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머튼의 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행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 직장, 더 나은 보수를 위한 사회 프로그램, 사회적 보장 안에서 종교를 발견하는 행동이다. 그것은 교회를 위해 노동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형제가 궁핍하고, 무시되며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든지 더러움 속에서 살도록 내버려 둘 권리가 없기 떄문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진정으로 사회적 생활에서 그리스도 신앙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하나로 볼 것이며 비참함, 더러움, 인간 이하의 생활조건, 경제적 또는 정치적 예속, 무시, 격리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보게 될 것이다." (「죄 지은 방관자의 추측」에서)

"모든 전쟁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 서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라기보다 모든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런 두려움이다. 단지 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언제 누군가가 돌아서서 그들을 죽일지도 모른다고 확신하지 못하면, 언제 돌아서서 그들 자신을 죽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믿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

위험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우리의 미움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미움이다. 특별히 우리 자신에 대한 미움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직면하기에는 너무나 깊고 너무나 강력하다. 왜냐하면 이 미움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안에서 우리 자신의 악을 보게 만들며 우리 자신 안에서는 악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떄문이다." (「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성 찰

사랑 안에서 자라고 사회적 악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에 저항할 강함과 지혜를 가지기 위해서 기도, 묵상, 관상이 요구된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사랑, 충만한 생활로의 하느님의 초대에 우리를 집중하게 한다. 기도, 묵상, 그리고 관상은 우리에게 “사랑의 감추어진 기반”을 알게 하며 그 곳에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안에 통합된다고 머튼은 말하고 있다. 그러한 사랑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인종 차별, 폭력, 두려움과 억압에 직면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한다.

사실, 머튼은 영적인 변화 없이 우리가 서로 대립하는 일이 계속 될 것이라고 깨달았다. 인간 존재라는 보편적인 면을 무시하면서 우리는 경쟁하고 의심하고 서로에게 갈등인 상태로 끝낸다. 오직 사랑만이 현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극복할 것인데, 왜냐하면 오직 사랑만이 개인적 관심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튼은 모든 이 안에 존재하고 있는 거룩한 생명을 찬미하며, 우리 모두를 한데 묶어 주는 일치를 발견하라고 요청한다.

기도의 생활 없이 대중 문화와 역기능적인 전통의 공허한 가치는 우리의 영혼을 오염시키고 우리의 의지를 약하게 할 수 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되어야할 인격체, 사랑에 바탕을 둔 인간은 인종적 우월주의나 최고만을 추구하는 부패된 가치들처럼 파괴적인 신화를 너무나 열심히 방어하는 자아를 위하여 희생될 수 있다.

정의와 평화를 만들기 위한 행동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수도자이든 모델이든, 상원의원이거나 판매원이든 - 인류의 선을 위하여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서 제외될 수가 없다. 머튼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삶의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일부이다.”

★ “머튼의 말”에 있는 두 번째 글에 대해 묵상하라. 다음의 질문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의식을 점검해보라:

󰋮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목록을 작성할 수도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머튼이 말한 것은 옳은가?

󰋮 나의 두려움이 언제 나에게 방어적이고, 비열하고, 호전적이고, 질투하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되도록 했는가?

󰋮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한 때가 있었는가? 언제? 누구와 함께? 왜?

󰋮 나는 다른 사람들 안의 무엇을 미워하는가? 그것이 내가 내 자신 안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어떤 것인가?

지금 당신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열라. 당신의 두려움과 증오로부터 어떻게 자유롭게 될 수 있는지 그분의 인도를 요청하라.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은총에 대해 기도하라.

★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목표 없는 소비에 의해서 우리가 불의를 영속시킨다는 사실에 깨어 있으라. 다른 사람과 잡지, 책들, 영화들, 비디오들, 가구들, 옷장, 오락장비등 당신이 사용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들이 다른 사람과 당신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는지 생각해보라. 이런 소유물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가? 생활을 단순화하는 것이 두려움으로부터 어는 정도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 현재 당신의 생활 안에 있는 분노의 근원은 무엇인가?

󰋮 당신은 분노를 억눌러서 그것이 당신의 정서적 영적 생활을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있는가?

󰋮 상상의 대화를 통하여 당신의 분노의 근원과 평화를 이룩하도록 하라.

󰋮 분노를 다루는 전략을 짜 보라. 스트레스에 대해서 분노를 다루는 세 가지 길이 열려 있다: 하나는 상황을 변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황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이며; 셋째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분노를 점검한 후 이 세 가지 선택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인가?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한 후에 당신의 분노와 대면하는 행동을 하라.

󰋮 기도 중에 분노로 인한 당신 내면의 상처를 고쳐 주시도록 요청하라.

★ 우리의 시대에 정의, 평화, 자유 또는 구제를 호소하는 소리를 들은 것의 목록을 작성하라. 당신에게 더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 소리들 중의 하나를 골라 보라.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소리를 허용하는 대화를 만들어 보라. 그 소리가 가난하거나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면 당신의 관심을 (진실이든 상상이든) 그 그룹을 대표하는 개인에 맞추라. 그 대화가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계속하라. 그런 다음, 다음의 질문에 대해 당신 자신에게 물으라:

󰋮 이런 대화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인식을 어떻게 고조시켰는가?

󰋮 대화가 끝났을 때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 대화가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주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묘사해 보라.

󰋮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 전쟁과 폭력에 대한 우리의 중독은 오직 “마음의 평화”를 통하여 극복될 수 있다. 머튼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마침기도에서 하고, 잠시 동안 침묵하거나 기도 중에 어떤 응답을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 떄에 성찰한 것을 덧붙여 보라.

 

하느님의 말씀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제자들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0,19-21)

<마침 기도>

우리의 힘을 조화있게 할 분별력을,
우리의 학문을 조화있게 할 지혜를,
우리의 부와 세력을 조화있게 할 자비로움을 허락하소서.
모든 인종과 사람들을 돕고 우정 속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협력하는 우리의 진지한 의지를 축복하소서.
정의, 자유, 지속되는 평화의 길을 따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길이
필연적으로 당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해주시고,
당신의 신비의 계획을 우리가 완전하게
통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게 해주소서.
그리고 이 지구에 지금 날뛰고 있는 힘의 폭풍은
당신의 숨겨진 의지와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결정을 드러냅니다.
이 광대무변한 폭풍의 빛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우리가 보게 허락하소서.

오 거룩하고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하느님:
참으로 발견되는 곳에서 평화를 구하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당신의 뜻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아멘.
(토머스 머튼, “평화를 위한 기도”)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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