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튼] 관상 없는 행동은 맹목적 행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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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튼] 관상 없는 행동은 맹목적 행동주의
  • 웨인 심직
  • 승인 2016.10.1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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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관상 수도자들까지. 포함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부르심을 받고 새로운 창조세계를 세우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참여하며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삶에서 발견되는 침묵과 평화를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요청받고 있다.

<시작 기도>

오 연민의 하느님,
제 자신으로부터 소원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약하게 하는 광란의 행동과
쓸데없는 행동을 피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머튼에 관하여

수도원에 들어오자, 머튼은 바깥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고 더 긍정적인 방법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것이 자유로왔다. 머튼이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된 중요 순간 중의 하나는 켄터키의 루이스빌에 있는 한 거리 모퉁이에서 일어났는데, 거기에서 그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교차로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루이스빌 4번가와 월너트가 모퉁이의 쇼핑 지구 중심에서 나는 갑자기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전율하였다. 서로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들의 것이며 우리는 서로 적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마치 분리라는 꿈으로부터, 특별한 세계, 이탈과 소위 거룩함이라는 세계의 거짓인 자아고립이라는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것과 같았다. 분리된 거룩한 실존이란 환각은 모두 꿈일 따름이다."

(「죄지은 방관자의 추측」에서)

관상적 자각이 커지면서 머튼은 그가 한때 거부했던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도록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무엇이 위기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어떻게든지 하느님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한다. 마치 내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나머지 인류로부터 나 자신을 격리시킨다면 결코 나 자신을 찾지 못 하게 될 것이다”(「관상의 새로운 씨」에서).

1964년경에 그는 관상적 생활이 수도자들로 하여금 바깥 세상에 문을 닫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며 시대의 요구에 더 민감하게 수도자들이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수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동감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인류에게 봉사할 필요가 있는 것만큼 수도자들도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들은 기도에 의해, 피정의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삶이 힘과 재산 그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침묵으로 증거함으로써 봉사한다. 머튼의 경우, 그는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는 책들과 글들을 쓰고 안내를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도함으로써 형제, 자매들에게 봉사했다.

<멈춤>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요구로부터 피하기를 원했거나 실제로 자신을 숨긴 적이 있는지 성찰해 보라.
 

머튼의 말

"내가 관상적인 생활을 언급할 때, 나는 어떤 기관의 봉쇄 생활이나 기도의 조직적인 생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 나는 내면의 훈련과 경험의 특별한 차원 및 개인적 발전의 어떤 완전함과 충만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외향적이고 분리되며, 바쁜 존재 양식과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내면의 훈련이 행동, 창조적인 작업, 헌신적인 사랑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것들은 모두 함께 진행된다. 단련되는 경험의 어떤 깊이는 결실의 행동을 위해 필요한 기반이다. 인간 실존의 내적 기반에 대한 탐구로부터 발생되는 더 심오한 인간의 이해없이 사랑은 피상적이고 기만적인 것이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도, 묵상과 관상의 개념들은 개인 생활의 심화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섬기는 역량의 확장과 관련을 맺어 왔다."

(「행동하는 세상 안에서의 관상」에서)
 

성 찰

농부들, 재정가들, 체육 교사들, 산부인과 의사들, 안전 기술자들과 상원의원들, 광부들과 수도자들, 그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여기는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봉사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하지만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한 봉사의 결과를 삼가려 하고 즉시 보상을 구하지 않고 사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머튼은 썼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사는 것을 보지 않으며, 즉각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일하며, 일순간의 만족없이 사랑하며, 어떤 특별한 인정없이 존재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아무도 섬이 아니다」에서).

이러한 이기심 없는 자아는 적극적인 기도생활의 한 결실이다. 우리 안의 하느님은 우리 행동의 근원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기도, 묵상 그리고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만날 수 있다. 머튼은 사랑하려는 능력 및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려는 능력은 우리 자신의 가치 평가와 다른 이들의 평가에 대해 덜 생각하고 그 대신 우리 안에 있는 깊이 용솟음치는 하느님 생명의 깊은 샘에 의탁하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제시한다.

침묵 안에서 우리의 내면 생활은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랑을 우리는 우리의 섬김으로 나눈다. 기도 없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주게 되는 모든 것은 빈 마음이나 갈등으로 가득 찬 마음이다. 머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자신과 평화롭지 못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의 내면의 싸움을 그가 살고 있는 사회로 투영하게 되며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갈등의 악영향을 퍼뜨리게 된다”(「아무도 섬이 아니다」에서).

기도와 섬김은 같이 협동하며 움직인다. 기도하는 풍요로운 생활에 의해 정보를 받고 안내되며 지지되지 않는 섬김은 쉽게 약해지고 낙담하게 되며 기진하게 된다. 관상이 없는 행동은 맹목적인 행동주의이다. 섬김을 일으키지 않고 자극시키지 않는 기도는 자주 거짓되고 자기 중심적이며 생명력이 없다.

★ 당신의 완전함과 구원이 혼자서 이웃에 대한 봉사 없이 성취될 수 있다는 착각을 키운 적이 있는가? 머튼에게서 따온 이 구절을 묵상하라: “분리된 거룩한 실존이라는 착각 전체가 꿈일 따름이다.” “분리된 거룩한 실존”을 추구했든가 또는 원했었던 때를 잠시 동안 당신의 의식 안에서 점검해보라. 머튼처럼이 모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하느님께 은총을 청하라.

★ 당신의 자매들과 형제들에게 한 섬김의 생활을 평가하라. 일기에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네 자리를 마련하라: 가족, 친구들, 일자리, 그리고 확대 공동체. 그런 다음 페이지의 왼쪽 밑에 다음의 애덕 행동들을 쓰라: 목마른 이에게 물을 준 것, 배고픈 이를 먹인 것, 나그네들을 따뜻하게 대한 것,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준 것, 병든 이나 감옥에 갇힌 이를 방문한 것. 각각의 애덕의 행동을 글자 그대로와 비유적으로 이해하라. 예를 들면 아마도 당신은 목마른 사람에게 글자 그대로 마실 것을 주지 않고 다만 아이들의 이해에 대한 갈증을 채워 주며 신앙 생활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가족, 친구, 일자리, 공동체의 네단에서 각각의 애덕 행위 다음에 당신이 어떻게 하느님의 백성을 섬겼는지 간단히 요약하여 쓰라.

★ 당신이 내적 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다른 이들의 삶에 알지 못하면서 혼란과 걱정을 일으켰던 때를 기억해보라. 그 때 발생했던 위기를 내적으로 느껴 보라. 당신 자신을 판단하지 말고 당신 인생 중의 이 때를 단순히 기억만 하라. 새로운 자아가 잿더미에서 나왔는가? 당신은 이러한 내적 생활을 커워 왔는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뜻에 더 많이 닿을 수 있고 당신 안에서 그분의 뜻과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 예수님과 이야기해보라.

★ 조용하고 고독감을 느끼며 평화스러움을 주는 장소 안에 있는 당신 자신을 상상해 보라... 당신은 이 장소에서 조용하게 앉을 수 있고 하느님의 현존이 당신 존재를 가득 채우도록 하는 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이 방황할 때마다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되는 이 지점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선택하는 한 오래도록 이 장소에 남으라. 그것이 평화와 안전의 상징이 되도록 하라... 당신이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거나 혼돈의 한 가운데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당신의 마음이 평화스럽게 있는 이 장소를 부드럽게 상상하라.

★ 당신이 최근에 내면의 평화를 느꼈던 때들을 나열해 쓰라. 그것에 “거룩한 순간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라. 다음, “혼돈”이라 제목을 붙이고 걱정했거나 분주했던 때들을 쓰라. 이러한 목록들은 당신의 생활에 대해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일기 속에서 당신 생각들에 들어가 보라.

★ 당신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미루고 있었던 섬김의 행동을 알고 있으면, 바로 그것을 행하라.
 

하느님의 말씀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인이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었다. 그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었던 마르타는 예수 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고 있는데 가만 두십니까? 저를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마음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된다.” (루가 10,38-42)

<마침 기도>

오 하느님,
저의 생활 중 특히 바쁜 동안에 당신 안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용기를 주소서.
내적인 평화의 불꽃을 살아 있게 해 주시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당신의 현존 안에서 살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제가 당신의 마음, 손과 목소리가 되기를 빕니다.


(이 책은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세인트 매리 출판사에서 발간된 웨인 심직의 <Praying with Thomas Merton>을 <참사람되어>(2001.1)에서 편역한 것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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