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며
어디에 있느냐, 꽃다운 역사
-조정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너는 잘못 살고 있다고 요즘
허공이 내 귀퉁배기를 툭툭 친다
내가 뭘
뭘 그리 잘못 해서
숲을 잃은 새처럼 웅크린 채
이토록 여러 해를
아픈 소식과
슬픈 기별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틀 농사 믹해불* 셈치고
쌀값에 대하여 무슨 방도를 찾으러 서울에 온 농부가 보니
뇌성벽력 속에 물대포 터지는 광화문통은
작달비 쏴아 내달리는 보성 들판이나 같았다
우주 군단 같은 차벽이
저 통치자와 농부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누구든 길을 뚫어야지 논에 물꼬 트는 일은 내가 평생을 해온
내 일이여
농업은 전문직이나 농부는 하잘 것 없이 부서지는 과녁이었다
정조준된 물대포가 그의 머리를 부쉈다
그는
들에서 죽었다
한 농부가 들에서 뇌성벽력 비바람과 싸우며
물꼬 트다가 죽었다
나는 죽음을 소비하는 대머리 독수리 혹은 하이에나
오늘 밤도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저 논에 물꼬 막히고 터지고 나락 허리 부러지고
들이 난장 된 줄 알면서마루에 쭈그려 앉아 봉초나 빠는 건달
어쩌끄나
떠나보내지도 못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나는 추모나 하고 있다
* 믹해불: 묵히다와 미뤄두다의 뜻을 지닌 전라도 말
조정 시인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 산문집 공저 <그대, 강정>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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