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선생의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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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선생의 몸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 윤영석 신부
  • 승인 2016.10.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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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상봉

[윤영석 신부 칼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공동번역 마태오 26,41b)  인간은 몸된 맘이고 맘된 몸이거늘 몸과 맘의 분열이 잦다. 맘의 분주한 소리가 몸의 소리가 보다 큰 세상이다. 몸은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기 보다는 맘의 노예다. 몸의 의지는 별로 소용이 없다. 몸은 전적으로 맘의 의지에 달려있다. 예를 들자면, 몸은 맘이 원하는대로 표현된다. 몸은 맘이 입고 싶은 옷을 걸친다. 때로 맘은 몸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도 한다.

반면 병원은 몸의 소리가 큰 곳이고 그래서 맘에게 잔인한 장소다. 또한 몸과 맘을 분열해 살아가는 우리 일상이 폭로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병원 안에서 몸과 맘의 관계는 달라진다. 맘은 몸의 의지에 달려있다. 맘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몸과 맘은 주로 어긋나기 마련이다. 병든 몸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고 맘에게 말한다. 몸은 언제나 현실과 마주하지만 맘은 과거와 미래를 허우적거린다.

내가 병원사목에 몸 담으면서 배운게 있다면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몸은 철저하게 정직하다. 몸은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맘처럼 꾸미지 않는다. 어떤 선택의 여지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맘은 괜찮다고, 괜찮아야 한다고 하지만 몸은 편치 않다. 환자가 된 누군가의 맘이 병으로 인해 신음하는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과정은 필연적이다. 어찌보면 병원 사목이란 환자가 겪는 이 과정을 측은지심의 자세로 함께 하는 일이다.

사진=한상봉

악이 할퀴고 지나간 백남기 선생의 몸처럼

몸이 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일 기회가 맘에게 언제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사고를 당해 맘의 의지가 들리지 않는 경우다. 오직 몸에 생긴 상처의 소리만 들린다. 지난 9월 25일 생을 영면한 백남기 선생의 몸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악의 힘이 지나간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병사’라고 현실를 왜곡하려 해도 백남기 선생의 몸은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은 억울함을 토해낼 맘의 소리를 박탈하지만 몸의 소리는 올곧이 홀로 남아 맘을 대변한다.

우리 사회가 몸에 잔인하게 행한 악을 목격하는 일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이제 병원 사목 5년차에 들어서는 내게 몸에게 자행된 악을 대하는 일은 힘겹다. 악이 할퀴고 지나간 백남기 선생의 몸처럼 네살박이의 몸에 일어난 가정폭력의 악과 마주한 적이 일이 있다. 그날 마침 당직이어서 어린이 병동의 중환자실로 가야했다. 엄마의 남자친구가 아이의 얼굴을 구타하고 목을 졸라 그 결과로 뇌상을 입은 케이스였다. 아이의 몸에 난 상처 자국을 보니 눈물이 절로 나왔다. 가슴이 아팠다. 화가 치솟았다. 몸에 선명하게 남겨진 악의 흔적에 치가 떨렸다. 이 아이 앞에 선 나의 무력함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죽어가는 이 아이 앞에서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내게 주어진 건 기도 뿐이었다. 아이의 뇌가 기적적으로 치유되길 기도했고, 아무 고통없이 하느님께 돌아가길 기도했다. 생명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진리 앞에 내 기도는 허공에 맴도는 듯 느껴졌다. 불현듯 아이에게 필요한 건 내 기도와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시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게 필요한 건 악으로 훼손된 아이의 몸, 하느님의 성전을 정화시키는 일이었다. 한번이 모자랆까 성호를 긋고 또 그으며 아이를 축복했다.

이 세상에 버림받은 몸은 하나도 없고

예수의 몸 역시 이 아이와 백남기 선생의 몸처럼 악이 지나간 흔적을 지녔다. 예수의 몸은 은총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갔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세상의 모든 악으로 인해 하느님께 버림받은 어린 양 예수의 몸은 다른 버림받은 몸의 곁으로 한 몸이 되어 은총이 단절되지 않게끔 한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버림받은 몸은 하나도 없고 하느님의 은총이 닫지 않는 곳 또한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은총의 몸이다. 이 은총의 몸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영원히 주어졌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대한성공회 성찬기도 1양식) 은총의 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은 언제 어디서나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은총을 싱기시키고 악이 지나간 몸을 축복하는 일이다.

악으로 맘과 몸이 어지럽고 신음하는 세상이다. 그만큼 교회에게, 그리스도인에게 축복하고 함께 할 맘과 몸이 많은 요즘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의 가르침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몸성히, 맘놓이, 바탈퇴히…”

 

윤영석(바울로) 신부
미국성공회 뉴왁교구 소속 사제
NewYork-Presbyterian Hospital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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