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형제,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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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형제,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
  • 김영욱 신부
  • 승인 2016.09.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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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광화문 시국기도회 강론: 김영욱 신부_ 인천교구 숭의동성당

이 시대의 순교자 고 백남기(임마누엘)

김영욱 신부

작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생명. 평화의 일꾼 백남기(임마누엘)’ 형제님이 의식을 잃은 지 317일 만인 어제 선종하셨습니다.

백남기 형제님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쌀값 안정 공약을 지키라고 농민들과 함께 상경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시위를 통해 항의하는 비무장 노인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며 머리를 다쳤고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왔습니다. 물대포를 쏘기에 앞서 경고방송이나 예비적 분사도 없었고 안전지침도 무시했습니다. 심지어는 구호하는 응급차까지 물대포를 쐈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야만적인 행위입니다.

얼마 전 청문회에 출석한 전 경찰청장은 시위대의 직접 살수를 합법적이라고 하면서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최소한 자기 방어를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맨손 노인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이라니 황당합니다. 세 살 아이들도 그런 판단은 안합니다. 혼이 비정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상황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족들의 말처럼 “백번양보를 해서 불법시위였다 하더라도 비무장 노인을 향해 수압이 강한 물대포를 쏘아대고 부상자와 구조하는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조준 발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묻고 싶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을 죽였습니다. 마치 ‘유신독재’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섬뜩합니다. 또한 죽은 사람이 있는데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부 책임자 누구도 사과는 커녕 가족을 찾아 위로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럴 수 있는지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루빨리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길 촉구합니다.

백남기(임마누엘) 형제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순교자이십니다. 대학생 시절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하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의 삶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이 땅에 생명과 평화가 가득한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습니다. 급기야 불의한 세상에 맞서 행동하다가 목숨까지 잃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이 미사 중에 백남기(임마누엘)형제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유가족 모두 주님께서 친히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3주 전에 민주노총 인천본부장과 시민연대 대표가 찾아왔습니다. 인천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문제와 관련해 작년부터 갈등이 있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을 묻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교구장님께서 선종하신 이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해법이 될 만한 제안도 나왔습니다. 자리를 바꾸어 한잔 하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한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 교구가 운영하는 병원 문제 해결을 위해서 신부님들은 무얼 하고 계십니까? 왜 가만히 계십니까? 왜 가난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계십니까? 밀양, 강정, 세월호,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면 뭘 합니까? 그리 먼 곳은 찾아다니면서 왜 가까운 인천 병원에는 안오십니까?....”

취중진담이라 했던가. 그동안 섭섭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치 제 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티를 탓하느냐는 말로 들렸습니다.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주교님도 만나보고 병원관계자 신부도 만났지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냥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병원문제로 사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두 가지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첫째는 고소고발의 문제입니다. 병원 측이 아무리 억울하다 하더라도 성직자의 이름으로 노동자와 시민단체 사람들을 고소 고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정신에 맞는지 묻고 싶습니다.

소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원고 :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이사장 염00 / 피고 : 홍00 등 6명
청구취지 : 피고는 연대하여 원고에게 5억을 지급하라

인천교구 호인수 신부님은 <자비로운 예수, 자비롭지 못한 교회>라는 글에서 “대학 측이(이사장 명의로) 법원에 냈다는 업무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구약 율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연상시킨다. 암만 생각해도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마저 돌려대라는 예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분은 먼저 화해한 연후에 예물을 바치라 하셨다. 화해의 손은 힘 센 사람, 가진 사람이 먼저 내밀어야 한다. 교회가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목청 돋우어 빌기만 한다면 실로 염치없는 짓이다”(<기쁨과 희망> 2016 여름)고 이야기합니다.

병원 측은 모든 것을 법의 규정대로 한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법으로 따지고 드는 율법학자들을 타박하셨습니다. 이제는 신자들에게 용서와 자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고민은 시민단체와의 관계입니다. 사회교리의 가르침은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시민단체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 만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인천 지역에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서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교구장님의 선종을 계기로 서로의 주장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만나면 좋겠습니다. 어렵다면 비공개를 전제로 만나 서로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집안 내부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에 대한 실마리를 오늘 복음과 독서에 찾아봅니다.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복음묵상: “누가 큰 사람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라는 문제로 논쟁을 벌입니다. 이 논쟁은 당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왔지만 결국은 직책의 높고 낮음에 따른 서열 그로인해 특권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열흘 전(9.16,17) 교황님은 신임주교와 전 세계 교황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 시대에 필요한 주교는 “관리자형 리더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아도취적이거나 자기 생각만을 고수하는 주교와는 함께 걸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하느님의 자비를 ‘손으로 만질 수 있듯’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당부는 모든 사제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곁에 세우신 다음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높은 사람이 되려면 섬겨야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10,43-45)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깊이 새겨봅니다.

독서묵상: 의인의 고통

오늘 독서에서는 사탄이 하느님의 허락 하에 의인 욥에게 고통을 줍니다.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립니다.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신자유주의’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악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밀양, 강정, 상주 등에서는 재산을 빼앗아 가고 세월호, 농민,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심한 기근’이 들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심한 기근이 아니면 아들이 돌아오지 않기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섭리였습니다.

이 나라와 교회에는 아직 더 큰 기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도 5.8 규모의 지진으로는 어림도 없나 봅니다. ‘개소리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법문’이라던데 도대체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더 뛰어야겠습니다. 저도 시간을 더 내서 참여하고 연대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과 공동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미사 중에 사탄인 악의 세력에 고통받고 희생당한 모든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김영욱 신부_ 인천교구 숭의동성당

<출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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