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참 어렵다" 균도아빠가 성당 떠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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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참 어렵다" 균도아빠가 성당 떠난 이유는?
  • 최충언
  • 승인 2016.09.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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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데이 집무실에 있는 성모자상. 사진=한상봉

[최충언 칼럼] 

우리가 무언가에 감동을 받는 경우는 지난날의 어떤 기억과 맞닿을 때가 많다. 비슷한 경험이나, 글을 읽다가 과거를 해석해 주는 문장을 만났을 때나, 과거에 맛있었던 음식에 대한 냄새가 떠오를 때처럼 말이다. 내가 자폐성 발달장애인 균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된 것도 그런 경험과 소아마비를 앓았던 남동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균도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 것도 30년 전에 원주 봉산동에 있는 ‘천사들의 집’에 갔을 때 겪었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주 봉산동 천사의 집 그 아이

원주 가톨릭 사회복지회 산하 기관인 ‘천사들의 집’은 7세부터 18세에 이르는 지적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다. 천사들처럼 고운 마음을 지닌 친구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복학을 할 것인지, 노동운동에 뛰어들 것인지 고민 중이었을 때였다.

최기식 신부를 따라 중증복합장애아동들이 살고 있는 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앉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생활하는 뇌성마비에 걸린 한 아이를 안아주었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아이가 나를 얼마나 세게 껴안던지 지금도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를 겨우 떼어 놓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 아이에게서 사랑을 느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랑을 느끼게 해주어야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은 웃을 일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웃다가도 오히려 인상을 찌푸리는 일들이 굴비처럼 엮여 나온다. 추석이 다가와도 명절분위기가 없다.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보아도 체감경기는 얼어붙은 지 오래다. 그러나 성인발달장애가 있는 균도를 만난 뒤로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확실히 균도는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전도사다. 우리가 살면서 남에게 웃음을 주는 일은 흔치가 않다. 균도는 만날 때마다 내게 웃음을 준다. 참 신비롭다. 균도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환자들이 의사들의 스승이듯이 말이다.

장애아동 아빠의 소원,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균도와 서면의 한 극장에서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있었다. 고정된 극장의 좌석이 좌우로 흔들렸다. 다시 한 번 더 흔들리자, “지진이다~”하고 균도가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균도 아빠는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쳤다. 그제야 굼벵이 체질인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극장표를 환불 받고 밖으로 나왔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나 차 안에서 균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 균도와 함께 부산 사상에 있는 장애인 단기보호시설인 ‘들꽃’을 방문한 일이 있다. 최근 균도 아빠가 심근경색으로 입원하여 심장혈관에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하마터면 심장마비가 올 뻔하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와서 그런지 균도 아빠는 고민이 더욱 많아졌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들의 부모의 소망은 딱 한가지다.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다. “형님, 내가 죽으면 우리 균도 맡길 곳은 여기뿐입니다.” 균도 아빠가 내게 말했을 때, 우리나라 복지현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성인발달장애인

우리나라에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만 21만 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은 19세 미만까지만 학령기로 여겨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및 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발달장애의 경우는 5만 8천여 명에 불과하다. 균도처럼 19세 이상의 성인발달장애인의 수는 15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장애인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직업재활시설, 거주시설 등을 이용한다. 사회로부터 방치된 성인 발달장애인이 학대와 성폭력, 인신매매, 노동력 착취는 물론 각종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뉴스는 전한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20%가 채 안 되는 2만3000여명만이 복지시설을 이용한다. 나머지 9만 2천여 명은 갈 곳이 없다. 성인이 되면 18세 이전까지 지급되던 서비스 보조금마저 끊긴다. 간단히 말해 성인발달장애인들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알아서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사회복지 체계 전반에 걸쳐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지체장애와 달라서 발달장애는 성인이 되었더라도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아 평생 보호가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을 가진 부유한 가정도 힘이 든다. 하물며 발달장애인을 가진 가난한 가정의 부모들은 신체, 정신, 경제적 부담으로 등골이 휜다. 사회복지망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에 비해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렇게 성인발달장애인들이 복지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발달장애아와 그 부모들의 어려움을 사회화하기 위해 애쓰는 균도아빠가 존경스럽다. 한 선배는 ‘고통’의 사회화라고 표현한다. 장애인의 문제도 사회가 품어야만 한다.

균도 아빠가 성당을 떠나게 된 이유

균도는 기장에 살고 있다. 주일이면 나는 성공회 기장성당에 나간다. 집에서 차로 50분이나 걸리는 기장까지 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느리게 자라는 자폐성 발달장애인 균도와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균도 아빠가 그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균도의 과잉행동이 성당에서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분심이 생긴다고 했다. 물론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균도 아빠가 성당을 떠나게 된 주된 이유는 일반신자들이 보내는 ‘싸늘한 눈길’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균도는 주위 사람들에게 언제나 웃음을 선사한다. 미사 도중에 갑자기 박수를 치기도 하고, 몸을 끊임없이 들썩이고, 웃으면서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졸기도 한다. “쉬는?” 하고 크게 말하면, 미사 중에 아빠와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런 상황에서도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들 균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의 기도를 큰 목소리로 낭독하기도 한다. 균도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하고 또박또박 읽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와 균도와 나란히 제대 앞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 이 시간은 균도가 마치 하느님의 대사처럼 느껴진다.

미사를 마치면 신부와 함께 애찬시간을 갖는다. 주로 국수를 먹는다. 이 교회는 가난한 교회다. 신자들이 열 명도 되지 않는 작은 교회다. 균도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주일에 교제를 나눈다. 자연스레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된다. 사회복지사인 균도 아빠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복지시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복지시설은 물먹는 하마가 아니라 복지예산을 빼먹는 하마다.

최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대구시립희망원이 국가인권위로부터 직권 조사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2014년부터 2년 8개월간 거주 인원의 약 10.6%인 129명이 숨졌다. 노숙인 복지시설에서 벌어진 최대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12년간 513명이 숨진 ‘형제복지원’과 견줘도 적지 않은 수치다. 사회복지에서 집단수용은 가장 하책 중에서 하책이다. 노숙자든, 발달장애인이든, 고아든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 속에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서 13,8)

이승철의 노래 중에 <사랑 참 어렵다>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남에게 해야 할 의무 중에서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한 가지는 사랑의 의무다. 그래서 사랑이 참 어려운가 보다. 원주 ‘천사들의 집’에서 본 돌에 새겨진 지학순 주교의 글이 생각난다. ‘우리는 이곳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사랑과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 바쳐지는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제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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