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3일. 일요일 오후 제나의 생일잔치에 여자게스트들이 초대를 받았다. 그는 내가 마돈나하우스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게스트 생활 1년을 끝내고 떠난 스물세 살 아가씨였다. 숙소에서의 송별파티. 여자게스트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그와 뜨겁게 포옹하며 이별했다. 다시 못 볼 사람 같았다. 그런데 제나의 집은 걸어서 3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집이 코앞인데 1년 동안 마돈나하우스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다니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마돈나하우스의 생활이 결코 편하다고 할 순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혼자 자유로움을 즐기고 싶고, TV와 인터넷도 그립고. 자극적인 음식도 먹고 싶고, 도시의 북적거림이 그리웠을 텐데.
제나의 생일파티, 부모님은 마돈나하우스 커플
이태리계 제나의 집은 작은 1층 단독주택. 집안에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과자와 차, 과일 등 생일 테이블 세팅도 단순했다. 부모님, 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제나는 넷 중 둘째. 생일축하를 위해 여덟 살 막내 동생이 우리들 앞에서 하프를 연주했다. 살짝 부끄러운 듯 바알간 볼. 서툴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주였다. 차를 마시며 제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 바로 옆에 편한 집을 두고 1년이나 마돈나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마돈나하우스에 왕래하며 자랐어요. 아버지가 러시아 정교회에 속해 있고 마돈나하우스의 채플에 참가해왔어요. 마돈나하우스를 잘 알고 있고 그 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없었어요.”
- 친구들에게 마돈나하우스 얘기를 하면 뭐라고 해요?
“대부분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어떻게 사냐고 놀라죠. 친구들은 ‘이제 너 뭐 할 건데?’에만 관심이 있어요. 영혼의 성숙과 성장,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대화에 한계가 있죠.”
앞으로 뉴욕에 가서 홈리스 돌보는 일을 할 거라는 제나. 그런데 내가 더욱 놀란 것이 있었다. 제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마돈나하우스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초 마돈나하우스에 게스트로 왔다가 토론토로 돌아가는 버스를 우연히 함께 탔다. 버스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제나의 아버지는 컴버미어의 마돈나 상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짝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마돈나하우스의 순결 서약을 어겼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밝고 당당했다.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들처럼 마돈나하우스에는 이곳에서 만나 결혼한 커플들이 가끔 다녀가곤 했다. 게스트는 물론 수련생이나 스탭으로 있다가 두 사람이 사랑을 만나 마돈나하우스를 떠나는 걸 전혀 이상하거나 나쁘게 보지 않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스트로 와서 사랑을 만나 결혼한 한국의 젊은 여성 M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곳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요
“마돈나하우스를 방문했을 때 25살이었어요.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 있었죠. 생태적 삶을 추구하며 지방의 대안고등학교에서 공부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대학입시에 번번히 실패했죠.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불안했어요. 이 나이가 되면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직장도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압박감이 심했어요. 다행히 엄마 친구의 소개로 마돈나하우스에 와서 1년 동안 지낼 수 있었어요. 다른 문화, 다른 삶을 접하며 새로운 문이 열리는 듯했어요. 특히 마돈나하우스에서 다른 젊은 게스트들을 만나며 가장 좋았던 건 하나의 틀과 일정에 맞춰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어요.
메인하우스 주방에서 6개월, 과수원에서 6개월. 아침 저녁 미사는 물론 일하는 시간도 기도의 시간이었어요.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 주어지니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랐어요. 한 달 동안 저녁시간에 스스로 상처라고 느꼈던 시간을 글로 쏟아냈죠. 힘들었어요. 내 안에 담아둔 감정이 너무 강력해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상처들. 하지만 기도하고 글을 쓰며, 이 모든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니 마음이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어요. 그러다 한 남자를 만났어요.
프랑스에서 온 청년이었어요. 미국에 사는 이모가 마돈나하우스를 소개했대요. 그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판단 없이 경청하는 사람이었죠. 내면의 힘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우리는 둘이 석 달 동안 산책을 하며 데이트를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신부님에게 들켰어요. 신부님은 남녀 둘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마돈나하우스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어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몰래 편지를 주고 받았죠. 더 애틋했어요. 하하.
마돈나하우스에서 1년 간 게스트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어요. 남친도 내 집을 방문했구요. 몇 년 후 우리는 결혼했어요. 나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어요. 아이도 태어났구요. 마돈나하우스에서는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주었어요. 남편과 함께 마돈나하우스에 가서 휴가를 보내기도 한답니다. 고향 같고 친정 같은 곳이에요.
내가 마돈나하우스에 있을 때 남자친구를 찾기 위해 오는 여자게스트도 있었어요. 가족 모두 가톨릭 신앙심이 강한 친구였는데, 마돈나하우스에서라면 영성이 깊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라 했어요. 그는 주차장에서 키스하다 발각되어 쫒겨났어요. 그런데도 마돈나하우스에선 그가 다음에 게스트로 방문하는 걸 또 허락하더군요. 마돈나하우스의 열린 분위기가 참 좋아요.”
순결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다스리는 것
제나의 부모, 그리고 한국인 M은 게스트로 마돈나하우스에 와서 사랑을 만난 경우. 그렇다면 종신서원을 한 마돈나하우스의 스탭은 사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을까.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나도 여기서 이성에게 깊은 감정을 가진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는 건 현명하지 않았죠. 왜냐면 상대는 마돈나하우스에 성소(vocation)가 있다고 생각해 이곳에서 살고 싶어 했거든요. 나는 그 사람도 나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음을 알았어요. 하지만 내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모든 게 복잡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죠. 나 또한 마돈나하우스를 내가 평생 살아갈 곳으로 여겼으니까요. 마돈나하우스를 떠날 생각이 없는데도 그 사람에게 고백한다면 공동체가 분열하게 돼요. 특정한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니까.
나는 그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동안 마음이 아팠죠. 그렇지만 그 시기를 거치면서 더 깊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그 사람과 나는 지금도 좋은 친구로 남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내 깊은 감정을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죠. 내 기준에서 그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이야기했을 수도 있죠. 우리는 모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저마다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요.”
이성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겼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더 깊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 사랑을 주님에게 바치기로 했다. 상대와는 마돈나하우스에서 좋은 친구로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말처럼 마돈나하우스 스탭이 되었다 해도 언제든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마돈나하우스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관점은 무엇일까? (다음은 마돈나하우스의 몇몇 사람들에게 들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요. 누가 누구에게 매력을 느낄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죠.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들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도록 노력합니다. 만약 평신도 스탭이 이성에게 호감을 느낀다면, 그는 자신에게 솔직해지려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신부님을 포함해 디렉터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닫겠죠. 호감을 떨쳐낼 수도 있고 아니면 선을 넘지 않으면서 그 감정을 품고 평화롭게 살 수 있어요.”
“우리 공동체는 다들 마음을 열고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기기도 해요. 우리 인간은 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대해 수련자들과 대화를 나누죠. 섹슈얼리티에 관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성적 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죠. 그 점이 중요해요. 왜냐면 바깥세상에서는 사랑하면 성적 관계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으니까요. 확실한 것은 그러한 사랑의 방식이 주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사랑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우리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죠. 사랑이라는 것은 성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지요.”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나의 모든 섹슈얼리티가 작용하게 돼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것인지 인식하고 있어야 해요. 인간이 성적인 존재라고 해서 반드시 육체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사랑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지를 깨달아야죠. 우리는 자신의 성적인 욕망은 거부하면서도 사랑을 표현하며 성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순결(chastity)'이라고 부릅니다.”
“순결은 나의 욕망과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영적인 인간으로서 나의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죠. 나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하면서도,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어요. 왜냐면 제가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상대는 다를 수 있으니까. 나의 사랑은 상대가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존중해줄 수 있어요. 결혼해서 여길 떠난 커플들도 꽤 있어요. 좋은 일이에요. 그것도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거죠. 그걸 나쁘게 보지 않아요.”
“우리 공동체에는 외딴길을 이성과 단둘이 걷지 않도록 하는 규율이 있어요. 소문이 나는 걸 방지하기도 하고 개인의 감정을 보호하는 차원이에요. 우리가 가진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늘 문제죠. 특히 다른 지켜야 할 책무(commitment, 서약)가 있는 경우에 더욱 그렇죠. 결혼도 서약이니까요.”
사랑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는 공동체 문화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종교적 영성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성적 존재임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그저 눈감고 누르는 게 아니었다. 사랑의 감정을 인정하되 표현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 고민의 과정에 마돈나하우스의 신부님, 디렉터선배와 마음을 터놓고 의논한다. 그 사랑 안에서 상대가 성장하도록 존중한다.
동시에 내 안에서 질문이 올라왔다. 이렇듯 사랑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며 상대의 영적 성장을 위해 ‘행동’하는 태도. 이것은 꼭 마돈나하우스 같은 종교적 영성공동체에만 가능한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내가 존경하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사랑을 외면하는 것은 영혼이 사막지대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 하는 의지다. 사랑하려는 ‘의지’를 갖고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이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존경, 이해와 책임감을 통해 자신과 상대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 다는 것. 마돈나하우스에서 나는 그것을 실천하는 성숙한 삶과 사랑을 보았다. 배우고 싶은 아름다운 삶이었다.
* 인터뷰 녹취 번역: 김민경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 현장에 가다>가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행하면, 사랑하면서 상처받기 보다는 모두가 성장하게 되겠네요.
"나의 사랑은 상대가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존중해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