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전통적인 견해대로, 여성 수도자들이 교회 살림만 돌보아야 한다면, 바깥살림도 겸해야 하는 남성 사제들은 복음의 빛으로 사회문제를 얼마나 다루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실상 가톨릭교회에서 사회적 사안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밝힌 사회교리에 대해 사제들조차 충분한 견해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신학교에서 사회교리를 숙지한 것도 아니고, 사제평생교육원에서 보수교육을 받지도 못했다. 사회교리를 모르니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 입장을 알 수 없고, 알지도 못하는 일에 사제들이 참여하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나 본당신자들은 대부분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나름대로 정치적 사안을 분별해야 하는 시민이며, 때로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는 유권자다. 가계부를 작성하거나 아이 교육을 염려하고 병원에 갈 때조차도 모든 신자들은, 심지어 사제 자신과 수도자들도 ‘정치’의 영향력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정치의 목적은 공동선”에 있으며, 신자 모두에게 이웃 사랑의 구체적 형태로서 ‘정치적 사랑’을 설파해 온 것이다.
“그들이 통치하니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의 통치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그들이 더 잘 통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능력껏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르면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입니다. 정치가 공공의 선에 봉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에게 사형을 내린 빌라도처럼 손을 씻고 뒤로 물러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기여해야 합니다. 좋은 가톨릭 신자라면 정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참여함으로써 통치자들이 제대로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교종 프란치스코, 2013년 9월 16일, 성녀 마르타의 집 소강당 미사 강론)
따라서 사제들이 신자 다수의 삶이 연루되어 있는 사회교리에 무관심하고, 사회복음화에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 태만’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자신의 삶을 신앙 안에서 돌보아야 할 의무는 일차적으로 신자들 자신에게 있으며, 사제들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향에 따라서 양을 지키는 ‘양치기 개’에 불과하다고 보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개들이 늑대로부터 양을 지켜야 하듯이, 사제들은 세상이 설파하는 ‘우상[맘몬]’에 맞서 신자들의 ‘복음적 삶’을 함께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못 영적인 투쟁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싸움에서, 그 (전투)교본이 ‘사회교리’다.
고통 받고 있는 자매형제들 앞에서 중립이란 없다
이러한 사제들의 사목적 태만이 수도자는 물론 신자들에게 ‘복음화’라면 무조건 입교자들을 늘이고 본당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용산참사가 발생했을 때,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소란할 때,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설 때, 노동현장에서 해고노동자들이 줄줄이 무덤으로 들어갈 때,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떼로 수장될 때, 이태원에서 꽃다운 청년들이 압사당할 때, 군에 간 채상병이 급류에 떠내려 갈 때, 친일파들이 다시 득세하고,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될 때에도 교회는 ‘대체로’ 안녕했다.
차별과 배제, ‘무관심의 세계화’가 교회 안에서 고스란히 관철되고 있었다. 공감과 연대의 마음으로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일부 사제, 수도자들을 향해 “미사를 정치도구로 이용한다.”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은 교회와 복음에 대한 모욕이다. “고통받고 있는 자매형제들 앞에서 중립이란 없다.”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헛되이’ 날려 보내는 일이다.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했던 사탄처럼, 교회 안팎의 악마적 세력은 세상의 가난한 이들에게 문을 닫은 제 가슴을 치는 대신에,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교회를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데 무심한 ‘공범’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것은, 교회는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이라는 교종의 말씀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8월, 이탈리아 예수회가 발간하는 잡지 <라 치빌타 가톨리카>의 대표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와 인터뷰하면서,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무엇보다 자비의 사목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목자들이 있는 “어머니이며 여성 목자인 교회를 꿈꾼다.”고 전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