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손, 청소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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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손, 청소부의 손
  • 김흥순
  • 승인 2024.07.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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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순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손(hand)은 사람의 팔목 아래 손바닥, 손등,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부분으로 우리 몸의 중요한 부분이다. 우스개 말로 사람들은 왼손 오른손만 가지고 살지만 성인은 겸손을 가지고 산다는 말도 있다. 

같은 손도 의미가 다양하다. 가위, 바위, 보 놀이의 손이 되기도 하고, 주먹 대신 펴는 본바닥 중심으로 내미는 손은 강자가 내미는 자비의 손이 된다. 손은 강자가 먼저 내밀어야 약자가 잡을 수 있다. 약자가 내밀면 무언가를 구걸하는 모양새로 비루해 보인다. 강자가 내내 주먹을 쥐고 살면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천양희

구두 닦는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새삼 인간의 손을 생각해 보게 된다. 손의 능력은 무한하다. 베풂도 살인도 복수도 혁명도 손에서 시작해 손으로 완성된다. 모든 것은 손 안에 있다. 숨이 끊어지면 맨 먼저 손이 풀어진다. 생명도 손이 쥐고 있음이다.

손은 제2의 뇌라고 한다. 원래 인간의 신체구조는 온순하게 살아가는 포유동물과 비슷하다. 그래서 인간의 손은 남을 때리기보다는 껴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 손들이 때리기 좋게 만들어졌다면, 이 아름다운 손가락들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말도 손으로 나타내는 속담도 많고 손대다, 손끊다, 손내밀다, 손가락질하다 등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말도 많다. 정 든 님이 떠나가면 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흔든다. 서로의 손을 잡고 흔드는 모습은 아름답다. 손을 맞잡으면 손과 손 사이로 감정이 흐른다. 

악수는 싸우지 않겠다는 신호다. 상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그러나 분노가 뭉치면 주먹을 쥔다. 무언가 감출 것이 있어도 주먹을 쥔다. 때려 주려면 주먹을 쥔다. 남과 북도 이제 점점 주먹을 세게 쥐고 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 함에도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내밀어야 하는가. 강자가 손을 내밀면 아량이고 포용이다. 약자가 내밀면 치욕이고 굴복이다. 누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누가 강자이며 약자인가. 제발 손을 펴자. 그러면 마음도 펴질 것이다. 손바닥에는 평화가 흐른다. 주먹이 아닌 손을 내밀자. 그것이 본래 인간이 지닌 원래 모습이다. 손에서 자비와 사랑이 나온다.

오늘 복음 중심 말은 ‘손’에 있다.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예수님께서 ……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마태오 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손을 소개한다. 하나는 ‘사람의 손’이다. 간절함과 믿음으로 ‘손’을 내미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기에 그렇다. 혈루증을 앓는 여자의 ‘열두 해’가 그 손을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손이다. 성전에서 솟아나는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살아나듯(에제 47,9 참조), 예수님의 손이 닿은 소녀가 살아난다. 예수님의 손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손’이 보인다. 단순히 건강을 회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창세 1,31 참조) 새로운 창조가 오늘 예수님의 손에서 시작된다.

여인의 간절함과 믿음은 그가 예수님의 옷을 만지게 했고, 회당장의 간절함과 믿음은 예수님의 손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오늘 저마다 삶의 자리에서 겸손과 용기의 손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을 만지고, 하느님의 손이 내 삶에 닿아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기를 기도하자.

✠ 마태오 복음 9,18-26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김흥순
천주교청년연합회 민주화 활동
민통련 민족학교 1기 아태 평화아카데미 1기
전 대한법률경제신문사 대표
사단법인 세계호신권법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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