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상태바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
  • 신대원
  • 승인 2024.07.01 12: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대원 신부의 雜說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짙푸른 푸성귀와 견딜 수 없이 내리쬐는 더운 햇살과 이따금 그러나 시나브로 질척거려대는 빗소리에 한해의 허리가 휘어가는 줄 누구도 몰랐을 칠월의 초입이다. 계절이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휘어지고 굽어져 가는 그런 달이다. 하지가 지나갔으니, 폭풍처럼 기승을 부리던 양기(陽氣)도 서서히 음기(陰氣)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갈 것이다.

누군가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세무십년과(勢無十年過)” 했지. 이 두 가지를 합치면 그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누군들 모를까마는, 칠월의 초입에 들어서니, 홀연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는 말이 요즘 들어 절로 입가에 맴돈다. 해서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어쩌면 저리도 자연의 이치를 닮았을까? 그래서 일찍부터 노자라는 양반이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라고 일갈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해가 휘어져 가는 칠월에서 서서 해월(海月) 선생이 정성스럽게 세상을 향해 일갈했다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씀을 음미해본다. 이 말은 글자 그대로는 “하늘을 가지고 하늘을 밥 먹다.”라는 뜻이겠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뭇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예외 없이 그 나름의 “밥”으로 귀천(歸天)할 때까지 생명을 이어간다. 그래서 누구는 “밥이 하늘이다.”라고 하고, 또 누구는 “밥이 생명이다.”라고 하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늘이 생명이기” 때문이지. 생명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았고, 부여받은 생명은 끝에 가서는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은 “천명(天命)”으로 태어나고,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세상에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모두 “하나”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나하고 다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의 목숨이 소중하면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것쯤은 누가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이기 때문에 똑같고, 똑같음에서 평등이 따라나오고, 평등에서 평화가 나오며, 이 평화에서 정의가 싹트며, 정의에서 믿음이 움트고, 믿음은 사랑을 만들어내지. 말해서 “생명”은 “죽음”이나 “죽음의 세력”과는 결코 상종할 수 없다는 진리를 자아내게 한다.

다시 “이천식천”을 얘기해보면, 하늘로써 하늘을 밥 먹는다고 했으니, 곧 생명으로써 생명을 밥 먹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나의 생명으로 타인의 생명을 이어가게 만든다는 의미겠지.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성체성사(성체성사)”의 신비를 해월 선생은 일찍부터 깨달았나 보다. 아마도 하늘께서 가르쳐 주셨겠지. 그래서 예수님처럼 자신의 몸을 밥으로 내어놓지는 못했어도, 그렇게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애를 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제2의 예수 그리스도”는 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제2의 해월”을 닮아가는 삶이라도 살면 좋겠구나 싶다.

해바라기꽃이 만발하기 시작하는 칠월의 초입에 들어섰다. 요즘엔 해바라기가 유월이면 그 꽃을 피운다고도 하니, 세상이 점점 무서워져 간다. 생명 있는 것들이 제철을 잊어간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생명 있는 온갖 것들은 “이천식천”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듯 보이는데, 오직 인간들만이 자기만 살려고 타인의 밥그릇을 빼앗아 먹으려 드니, 언제쯤 이 시대에 “성체성사의 신비”가 드러나려나? 걱정이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고 하니, 올 한해도 지난해처럼 어처구니없이 피해 보는 생명이 없기를 두 손 모아 본다.

 

신대원 신부
안동교구 태화동성당 주임사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