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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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 김광남
  • 승인 2024.07.0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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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단편소설의 매력이요? 한 인물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찰나의 순간에 있죠. 대신 주어진 몇 페이지 안에서 깊숙이 파고들어야 해요.” (앤드루 포터)

올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단편소설 읽기의 재미를 발견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사에 소개된 책 두 권을 주문했다.

 

주문했던 앤드루 포터의 책들이 왔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과 <사라진 것들>. 예배 마치고 돌아와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표제작을 읽었다. 물리학과 대학원생인 젊은 여자 헤더가 아버지뻘의 늙은 교수 로버트와 아슬아슬한 정신적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실제로 둘은 마지막 몇 초간의 짧은 키스 외에는 육체적 관계를 맺지 않는다).

헤더에게는 젊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친절한 남자 친구 콜린이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버지처럼 편안하게 늙은 교수 로버트에게 끌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콜린이 그 둘의 관계를 알아차린다. 콜린이 괴로워하는 모습에 죄의식을 느낀 헤더는 로버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로버트는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인다.

몇 해 후, 이미 콜린과 결혼한 상태였던 헤더는 로버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헤더는 그 소식에 통곡하고, 콜린은 (아마도) 헤더의 그런 통곡의 이유를 안다. 그러나 콜린과 헤더는 결코 로버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의 죄의식을 들춰내지 않기 위해서다. 포터는 이렇게 말한다.

"죄의식은 좌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모든 것을, 심지어 은밀한 죄의식까지도 소유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여겼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단편 소설 한편을 읽고 마음이 좀더 깊고 너그러워지는 느낌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라는 낯선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어떤 이가 이런 설명을 해준다. "낯에 램프를 켜놓으면 빛이 유리창의 표면에서 부분적으로 반사된다. 가령 빛의 입자가 100개 있다면 96개는 투과하지만 4개는 부딪혀 돌아온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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