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한 소식 들은, 정호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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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한 소식 들은, 정호경 신부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6.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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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그이를 만나러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 자락 비나리에 간 것이 2008년이니까 참 오래되었지요. 장일순 평전을 준비하면서 정호경 신부님이 새삼 새록 떠올랐습니다. 권정생이 쓴 <비나리 달이네 집>에서 느꼈던 풍광이 고스란히 새겨진 집에 살고 계시더군요. 하필이면 마을 이름도 ‘비나리’인 곳에서 매실나무를 가꾸며 지내던 정호경 신부님이 갈망하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손님이 왔다고 부엌에서 손수 밥을 챙겨주던 신부님의 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애잔한 감흥이 일어납니다. 사제라기보다 식복사도 없이 사는 늙은 독신 남성으로 느껴진 정호경 신부님. 동행한 신대원 신부가 준비해 간 뼈해장국을 덥히고 밥그릇에 밥을 얹고, 밑반찬을 챙기셨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유언장에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라고 적어 놓았는데, 이 때문에 자신이 ‘잔소리 심한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면서, 변명을 하셨다지요. 권 선생님이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게 싫어 뭔 말만 하면 잔소리한다고 투덜대었다는 것이지요. 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오며, 인생이란 게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강대 재학 시절 정양모 신부님의 수업을 듣다가 정호경 신부님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안동교구 출신의 정양모 신부는 정호경 신부에 대한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였지요. 당신은 대학에서 ‘입’로 먹고살지만, 정호경 신부는 ‘몸’으로 복음을 산다고 믿었기 때문일 겁니다.

 

생애를 낭비하지 않는 삶

그때가 1982년이니까, 정호경 신부님이 가톨릭농민회를 하면서 생명공동체운동을 한창 벌일 때였지요. 당시 나는 학우들과 ‘제삼세계 신학회’라는 서클을 만들었는데, 해방신학을 공부하자는 모임이다. 그때 정양모 신부님이 기꺼이 지도교수가 되어주시고, 정호경 신부의 뜻을 받아 서클 회보의 이름을 ‘생명에의 부르심’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후 신부님이 함창성당 계실 때 한번 찾아가 뵌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혈기가 창창하셨는데, 비나리에서 다시 만난 정호경 신부님은 다소곳이 곱게 늙은 할머니 같았습니다.

하느님이 창조주이신 것처럼,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사람도 평생 창조적인 일을 해야 마땅하다고 하셨던 정 신부님은 농사며 매실효소 만들기, 전각, 집짓기, 그림, 번역 등 무언가 새로운 자기 실험을 즐기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좋아하면 맛들이고, 뭐든지 맛들이면 장인이 된다는 것이지요. 생애를 낭비하지 않고 사는 법을 터득한 분 같았습니다. “사람은 자동차나 컴퓨터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밥과 옷과 집 없이는 살 수 없다”면서 직접 의식주를 해결했던 정 신부님은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했다. 지식과 지혜를 두루 쌓는 공부였습니다.

 

가자, 가자, 깨달음을 얻기까지

정 신부는 1997년 정월 초하루에 문득 불교의 게송(偈頌) 하나를 읽게 되었답니다.

똥창자가 꽉 찬 사람일수록
똥이 더럽다 하고
똥창자가 텅 빈 사람일수록
똥을 좋아합니다.

정호경 신부님은 “역시 중요한 건 ‘비움(空)이구나!”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불교가 생각났고, 84,000이나 된다는 불경들을 260자로 농축시켰다는 <반야심경 (般若心經)>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된 <반야심경>이 너무 어려웠답니다. 그리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밑바닥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셨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야심경>에 대한 학자들의 해설도 아리송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귀신은 무당의 주문을 겁내지 않는다’고 직접 번역해 보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이렇게 시작된 동양경전에 대한 번역작업이 <반야심경> 곧 <가자! 가자! 함께 가자!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햇빛출판사, 1997)에서 <장자>로, <우파니샤드>로 이어졌습니다.

정호경 신부는 <반야심경>의 알맹이를 “인연을 깨달아 영원히 사는 길”로 여겼습니다.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된 것도 이 ‘인연’을 깨달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어서 묻히더라도 온갖 사람들과 심지어 우주만물, 하물며 미물까지도 관계를 맺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죠. “따라서 나는 나 혼자서 따로 있을 수 없으니, ‘나’라는 독불장군은 허깨비요 우상(空)일 뿐이니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비워서 늘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연과 달리, 사람은 비우기보다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게 문젭니다. 속이 꽉 차면 햇빛도 받아들일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으며, 물도 먹을 수 없는데 말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 한 생명

그러니 인연을 깨달은 사람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비운 사람입니다. “우쭐대거나 기죽지도 않으며,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넘어 모든 것을 한마음 한몸으로 여기게 된다”고 정호경 신부는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깨달은 사람은 “먼 조상들과 후손들, 어제·오늘·내일의 수많은 생명들을 이 순간에도 느끼며 오늘을 자비롭게 살아간다”며 “아프리카나 북한 형제들의 굶주림을 못 본 체 할 수 없고, 세계 인구의 20퍼센트가 세계 에너지의 80퍼센트를 소비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며, 남미의 고문 실상을 지나쳐 버릴 수 없고, 밥상이 독으로 범벅이 되는 것을 막아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인연’을 깨달은 자유인이 곧 부처이며 예수라고 믿었던 정호경 신부님은 그들이 “자비와 평화의 화신”이며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정호경 신부님이 발견한 이 깨달음은 그의 <반야심경> 번역문 첫 장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 깨달음을 살고자 하는
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는
깊은 깨달음의 저 언덕을 향해
줄기차게 가다가
어느 날 홀연히
‘한 소식’을 듣습니다.

정호경 신부님의 이 이야기는 전태일이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여공들에게 ‘나인 너여!’라고 말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농민들과 자신과 한가지로 여겼던 정호경 신부님은 다른 농민들처럼 작물을 키우는 흙이며 벌레며 비바람마저도 상호 작용하여 한 생명을 이루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큰 깨달음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임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한번 살고 죽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이 많지 않은 세상에서, 정호경, 그분의 그리운 이름을 다시 불러 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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