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은 그 일에 내 사랑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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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은 그 일에 내 사랑을 더한다
  • 최태선
  • 승인 2024.06.1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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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나는 거의 매일 시장을 들른다. 건질 것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최근에는 현금으로만 거래가 가능한 한 야채가게가 생겼다. 가격이 싸다. 열무나 얼갈이는 한 단에 천 원, 부추는 한 단에 오백 원이다. 어제는 양파를 사러 그곳엘 갔다. 역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싸다. 계산을 하러 줄을 서며 다른 것들의 가격을 보곤 어쩔 수 없이 사게 되는 것들도 많다.

그렇게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한 할머니가 폐휴지 리어카를 끌고 박스를 줍고 있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눈빛에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싸인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돌아가 폐휴지 한 장을 드리며 점심식사나 하시라고 드렸다. 돈을 받고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리어카에 실려 있는 박스를 좀 들어달라고 했다. 물병을 꺼내려는 것이었다. 내가 박스를 들어 올리자 물병을 꺼낸 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혼자서는 박스를 다 내려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고 도와줄 사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그분과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집에 모아둔 깡통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또 한 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날도 양파를 사느라 겨우 천 원 정도를 절약한 후, 그 몇 십 배에 해당하는 돈을 낭비했다. 이것은 돈에 시선을 맞춘 사고다. 하지만 사랑에 사고를 맞추면 나는 횡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하느님의 경제를 몸에 익혀가고,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별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은 그 일에 내 사랑을 더한다. 나는 그분이 조금이라도 힘과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또 그 일을 위해 기꺼이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드리고, 또 그런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 깡통 모으기 같은 일을 한다. 나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이 하느님 나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의 관건은 관심과 사랑이다.

사람들은 폐휴지를 수거하는 분들을 보고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분들을 보면 기쁘다. 내게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더욱이 그분들이 내가 만나고 싶은 주님을 대신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분들이 귀하게 여겨지고, 그분들에게 내 사랑을 쏟아 붓는다. 물론 보잘 것 없는 사랑이고,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랑과 하찮은 일들이 내겐 가장 소중한 일들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게 치매노인들이 거주하는 노인요양원에서 설교를 하게 하셨다. 전에는 보육원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셨다. 나는 그 일이 내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목회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노인요양원의 치매노인들이 무슨 복음을 알아듣겠는가. 오히려 싫어하는 이들은 있다. 순복음교회를 다니시던 분들이다. 이분들은 들썩거리며 찬송을 하고 예수 믿으면 천당 가고,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나는 정 반대의 이야기들만을 한다.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변화된 삶이 없으면 그런 믿음은 가짜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순복음교회에서 평생을 신앙생활 하시던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마귀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그분을 쳐다보며 말씀을 전한다. 나는 그분이 그토록 원하고 확신하고 있는 천국에 꼭 가시기를 바란다.

생각해보면 나는 노인요양원에서도 말씀을 전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치매노인들까지 싫어하는 목사가 되었다. 

어떤 목사는 아이티에 지진이 나면 어마어마한 돈을 보내는데 나처럼 폐휴지 줍는 분들에게 약간의 돈을 드리는 일 따위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위대한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인요양원에 가서 설교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소용도 없고, 전할 길도 없는 그곳에서 설교하는 일이야말로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일만을 하고 있다고 위축되거나 그 일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사랑을 담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어떤 우월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내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일들을 하고 싶다.

어제와 같은 일들이 바로 그런 일들 가운데 하나다. 조금만 주의하면 나는 다른 사람의 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그런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반응하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모른다. ‘삼층천’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이 좋은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지 나는 전혀 짐작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다만 그곳이 서로 사랑하는 일의 완성판인 일들이 일상인 곳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떤 모습일는지는 짐작이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내가 하는 그 하찮은 일들에 사랑을 담으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천국은 금으로 된 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금을 가장 천하게 여기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를 반영할 것이라는 정도만을 나는 짐작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천사들이 와서 자신에게 엎드려 절을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천사들이 그러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엎드려 절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를 지니고 있으니 황금 길을 걸으며 천사들의 수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전하는 메시지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확인하실 내용이 얼마나 선한 일을 많이 했느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주님께 하듯 했느냐를 물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주님은 내가 하는 일에 얼마나 사랑을 쏟아 부었는가를 확인하실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일중독에 함몰되어 마땅히 품어야 할 예수의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커지려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야 하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것은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은 정확하게 확정해주셨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테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런 수녀님을 나는 좋아한다. 존경하지 않는 것은 그분이 사람들의 존경을 마다하는 정도가 아니라 끔찍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늘 있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직무유기다. 그래서 나는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다닌다. 그러다 눈에 띠는 노숙자 선생님들이나 구걸하시는 분들은 내게 보증수표다. 그 다음이 폐지를 수거하시는 분들이다. 나는 그분들이 좋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 전부다. 나는 참 별 볼 일 없는 목사다. 하느님 나라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나라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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