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 신부, 무조건 환대하고 무조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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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무조건 환대하고 무조건 사랑하자
  • 이정화
  • 승인 2024.06.1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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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칼럼

오늘은 예수회 정일우 신부님 선종10주기를 맞이하여 이냐시오 카페에서 <내 친구 정일우>라는 다큐를 보고 난 후 그 분과 삶을 동행했고 경험한 이들이 그분을 기억하며 그 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정일우 신부님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복음자리' 라는 공동체를 세워 가난한 이들과 동거동락하는 '파란 눈을 가진, 담배 피는 모습이 멋진 신부님' 정도로만 알았다. 진작 <내 친구 정일우>라는 다큐를 봤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그분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영상으로 그분을 만난 것이다.

정일우 신부님은 미국 일리노이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예수회 사제가 되어 한국에서 반세기를 넘어 사시다가 이 땅에서 눈을 감았다.

동료사제 박문수 신부님(예수회)이 기억하는 정일우는 단 한순간도 자기 개인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늘 가난한 이들 곁에서 울고 웃고 온전히 투신하는 삶을 사신 것이다. 그는 1986년 상계동 도시 철거때 그곳에 들어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남은 거라곤 잿더미밖에 없는 이들과 함께 투쟁하고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었다.

다큐 영화 스크린에는 정일우 신부님이 사람들을 웃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웃을 일이라곤 일도 없는 상황에서 그분은 특유의 '유머'로 늘 그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었다. 그분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고민과 울부짖음을 끊임없이 들어주고 "괜찮다"고 위로해주고 아이들과 장난치고 그들의 주거공간이 파괴되어 돌더미 밖에 남지 않았을 때는 함께 울었다.

미사 강론을 하시면서 "참 잘된 일이다. 우리는 더 가난해졌다. 가난해지면 가난해질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살린다"라고 하셨다.

그분과 뜻이 맞은 제정구 선생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친형제처럼 지내셨다. 그런데 제정구 선생님이 먼저 죽음을 맞았을 때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분처럼 많이 슬퍼하시고 많이 우셨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친구 라자로가 죽었을 때 울며 슬퍼하셨던 것처럼.

정일우 신부님은 모든 사람을 '환대'하고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끌어 안았으며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분이었다. 전주희 수사님 말처럼 그는 한편엔 '공동체' 또 다른 한편에는 '가난'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 둘은 같은 것이었다. 공동체에 '돈'이 끼어드니 공동체가 와해되었다. 공동체가 가난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이치다. 신부님은 이것을 가장 가슴 아파 하셨다.

신부님이 같이 살던 상계동 공동체는 내가 보기에 말 그대로 '하느님 나라'였다. 니것 내것이 없고 서로의 속사정을 다 알고 서로 부대끼면서 나누고 기도하며 가난하지만 기쁘게 살았다. 천막조차 없어서 하늘을 지붕삼아 잘 때도 그들의 입에선 노래가 절로 나왔다.

정일우 신부님은 '신부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종교색채를 띠지 않는 그냥 그 마을의 아저씨요, 할아버지요, 친구였다.

그분이 떠난지 10년, 그의 빈자리를 추억하면서 '우리는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조현철 신부님 말대로 지도자 하나 바뀐다고 이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고 이제는 안다. 정일우 신부님 말대로 가난하고 가장 작은 이들의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이 바뀌어왔고 바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발딛고 사는 '지금 여기'에서 정일우처럼 살아보자.

 

사진=이정화
사진=이정화

신부님은 가난한 이들을 '무조건 환대'하고 '무조건 사랑'했다. 제정구 선생님의 부인, 신명자 선생님은 말한다. "신부님에게서 사람을 어떻게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그 당시 꼬마였던 청년이 기억하는 '가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들지만은 않았단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힘들고 배고프기도 했지만 지겹기만 하지는 않았단다. '다양한 결'을 가진 가난이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가난이 '죄'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정일우 신부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통로'요, '축복'이라는 믿음을 주셨고 가난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 준 '진짜배기'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상처입고 다치고 먼지 묻히는 그런 교회를 좋아한다"고, "교회는 야전병원"이라고 하셨다. 정일우 신부님은 교종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삶으로 살아내신 분이다. 변방으로 내몰린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내몰리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길을 나서는' 참 목자였다.

영상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퉁퉁 부은 얼굴로 본인을 간호하는 이들을 웃기려고 장난을 치며 애쓰시는 모습에서 어린애같은 그분의 순수한 사랑을 보았다.

세상이 칠흙같이 어둡고 거칠기에 빛나는 미소를 가진 그분의 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신부님과 일면식도 없는 내가 다큐를 보고 이렇게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정일우 신부님처럼 사는 사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간절한 바람이고,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삶도 하느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 마침내 그분처럼 당당하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신수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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