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원짜리 한식 뷔페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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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원짜리 한식 뷔페 한 접시
  • 김광남
  • 승인 2024.06.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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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점심 직전에 교회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밥 먹으러 오세요." 지난 주일에 함께 점심을 먹다가 내가 "요즘 밥값이 너무 비싸서 점심 한끼 사먹기도 부담스럽다"고 하자 녀석이 말했다. "우리 동네에 7천원짜리 한식 뷔페가 있는데 진짜 먹을 만해요. 제가 한번 대접할게요." 그러더니 오늘 점심 초대를 한 것이다.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한 김포 대곶면으로 갔다. 허름한 한식뷔페 식당은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식당 입구에서 한참 줄을 서 있다가 차례가 되어 들어가 먹었다. 허풍이 아니었다. 7천원짜리 뷔페에 반찬만 12가지가 나왔다. 음식 맛도 좋았다. 오랜만에 양껏 먹었다.

식사 후 녀석이 자기가 일하는 공장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작은 공장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모내기를 마친 논들 사이로 난 좁은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대곶면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허름한 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아연을 제련하는 공장의 한 구석을 월 35만 원의 세를 내고 빌려 쓰고 있다고 했다. 그 아연 제련 공장은 벌써 몇 달 전부터 가동이 멈춘 상태였다. 인근의 다른 공장들에서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일이 없어서 다들 놀고 있어요. 그 덕분에 내가 이 공장 한 구석을 빌려 쓸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진짜 큰일이에요. 나라가 망해가는 것 같아요."

공장 안쪽에 프레스 기계 두 대가 있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다른 공장에 다니며 일해서 번 돈 1천 만 원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서 구입한 중고 기계라고 했다. 녀석은 자기 힘으로 마련한 그 기계가 무척 자랑스러운 듯 했다. 그 돈을 저축하느라 지난 몇 개월은 작년 말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받게 된 생계비만으로 살았다고 한다. 녀석은 몇 달 더 그렇게 살면서 번 돈으로 금형(金型) 몇 개를 제작한 후 프레스를 돌려 돈을 벌 계획이었다(자기 말로는 자기가 망하기 전에 오래 거래해 왔던 어느 업체가 자기에게 주방용 집게 10만 개를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한데 지난 달 말, 녀석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서 녀석은 졸지에 다시 실업자가 되었고, 금형 제작 계획은 중단되었다. 멈춰선 프레스 기계를 보며 녀석이 말했다. "어떻게든 다시 일해서 금형 비용을 벌 거예요."

공장에서 나와 녀석이 수급자로 선정된 후 주거 지원비를 받아 마련한 보증금 1백만 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원룸을 찾아갔다. 한 층에 방 6개가 있는 3층짜리 빌라였는데, 녀석의 말로는 그 빌라 거주민 중 자기만 한국 사람이고 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했다. 두 평 남짓한 원룸에는 옷장 하나, TV 하나, 그리고 아령 몇 개가 전부였다. "지낼 만하냐?" 하고 물었더니 "전에 살던 원룸에 비하면 천국이지요" 한다. 그 원룸, 작년에 나도 한번 가봤는데, 그냥 딱 돼지우리였다. 솔직히 그때는 너무 한심하고 숨이 막혀서 그 방에 5분도 앉아 있지 못했다.

돌아가려고 일어서는데 녀석이 말했다. "수급자가 되어서 매달 몇 십만 원의 생계비와 주거비를 받아 보니 그게 굉장한 것이더라고요. 수급자가 되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는데, 이제는 무척 든든해요. 적어도 비바람은 피하고 밥은 먹을 수 있으니 다른 무언가를 시도해볼 의지가 생겨요. 형하고 형수한테 큰 은혜를 입었어요." 사실 나는 한 게 없다. 그냥 그 놈 곁에 있었을 뿐이다. 녀석이 수급자에 선정되도록 애쓴 것은 아내였다. 처음부터 아내는 "걔가 살 길은 수급자가 되는 것뿐이야" 했고, 계속 뭉기적거리는 녀석을 다그쳐 수급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게 했다.

조금 장황하게 썼는데, 글의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 흔히 실패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두 불성실하거나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거다. 둘째, 절망에 빠진 자들에게는 약간의 도움이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녀석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 우리 교회가 제공한 약간의 도움이 그를 살게 했다. 그러고도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다시 죽음을 생각했을 때 국가의 복지 시스템이 다시 그를 살려냈다.

7천원짜리 한식 뷔페 한 접시 먹고 와서 말이 길었다. 요즘은 책보다도 우리의 누추한 삶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교회가 이 고단한 시대에 하루하루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이들 곁에서 유신진화론이나 동성애 같은 문제를 두고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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