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가난한 자가 교우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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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가난한 자가 교우라는 이름으로
  • 김광남
  • 승인 2024.06.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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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사진출처=pixabay.com

가까운 교우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 교우는 오랫동안 전기와 관련된 사업을 해왔는데, 아내와 딸 셋을 한꺼번에 미국으로 보내 교육을 시켰다. 이번에 결혼한 둘째 딸은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국내 어느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오늘 그 아이의 짝이 된 청년은 국내 모 대학 교수의 아들로 그 교수 부부가 미국 유학 시절에 그곳에서 낳아 키웠다고 한다. 그 청년은 코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한국으로 들어와 지금 어느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신랑과 신부 모두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똑똑할 뿐 아니라 연예인처럼 잘 생기고 예쁘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랬다. "TV 드라마에서만 봤는데, 결혼생활을 저렇게 시작하는 아이들이 정말로 있네."

며칠 전 우리 아둘람 줌 모임의 대화 주제는 '약한 자에게 손 내밀기'였다. 대화 끝에 어떤 이가 이번 달에 교회가 실시하는 '지명 방어'(어려운 이웃을 위한 주거 환경 개선 프로그램) 때 내가 전에 몇 번 언급했던 모교회 후배(지금은 우리 아둘람에 소속되어 있다)를 도와주자는 제안을 했다.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원룸을 찾아가 장판과 도배를 교체하고 간단한 생활용품 몇 개라도 구매해 주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아둘람 식구들의 제안에 고마움을 표하고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과연 그 친구가 주일마다 교회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아둘람 식구들에게 자기 삶의 누추함을 드러내려 할까 싶어서였다. 솔직히 나라면 굶어죽더라도 가까운 교우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작년에 내가 억지를 부려서 그의 원룸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 형편이 너무 처참해서 둘러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아둘람 식구들에게 일단 그 문제는 그 친구의 의향을 물어본 후에 결정하자고 제안했는데, 내 생각에 그 친구가 우리 아둘람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오늘 결혼식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그런 말도 했다. "그러고 보면 교회는 참 희한한 곳이야. 사회라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섞여서 살아가니 말이야." 내가 그 말에 답했다. "섞인다고? 아닐 걸. 내가 보기에는, 양쪽 모두가 서로를 잘 몰라서 어영부영 같이 있는 것일 뿐, 안다면 양쪽은 결코 한 자리에 모일 수 없어. 어쩌면 지금 우리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교우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하는 마지막 시간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어."

분명하게 말하는데, 빈부의 격차는 교회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부유한 신자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 문제는 오늘 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다. 어쩌면 부패와 타락보다도 심각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원인이 어디에 있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먹고살 만한 중산층 신자들의 사교 모임이 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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