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잔디마당, 빙충이와 빙충이의 노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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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잔디마당, 빙충이와 빙충이의 노예들
  • 김선주
  • 승인 2024.06.03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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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할머니, 쏟아지는 빗방울이 몇 갠지 셀 수 있어?”
장마가 지던 날, 오래된 소나무 옹이를 가진 마루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암만, 셀 수 있지...”
“어떻게...?”
“눈을 감어 봐.”
“그리고...?”
“지금부터 셀 수 있을 만큼 하나둘을 세어봐.”
“아니, 빗방울을 셀 수 있냐고...?”
“빗방울은 니가 셀 수 있는 마음속 개수만큼 내리는 겨.”
“에이 참, 할머니는...”
“빗방울 개수하고 니 마음의 개수하고 같은 겨.”
“니 마음을 빗방울이라고 생각하면 되야.”
“사람의 마음을 세는 법도 같은 겨.”
“어떤 사람의 마음을 알라믄 내가 그 사람이 돼 보면 되야.”
“니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밥때가 되면 얼렁 집으로 와야 햐.”
“느그 친구네가 가난한 집이면 말여.”
“아줌마가 밥 먹고 가라고 하면...?”
“목소리를 잘 들어봐, 진짠지 해 본 소린지.”
“얼굴이나 몸짓을 자세히 봐, 진짠지 해 본 소린지.”
“살림하는 여자는 제 식구들만 먹는 밥상 찬거리를 이웃한티 뵈주기 싫은 벱이거덩.”
“진짜 같으면 먹고 와도 되야.”
“그 대신, 맛나게 잘 먹었다고 고개 이쁘게 숙여서 인사 혀.”

‘앉을 자리와 설 자리 분간도 못하는 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인격을 얕잡아 보는 욕설입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우리를 앉을 자리와 설 자리를 분간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많은 암시와 훈육을 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분별력이 없으면 빙충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지, 내가 나서야 할 때인지, 내가 말을 끼어들어야 할 때인지, 여기서 해야 하는 말인지, 맥락과 낌새를 알아차리는 걸 눈치라고 합니다. 눈치가 없으면 빙충맞은 짓을 하게 되고 사람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당하기 쉽습니다. 어른들은 그런 인간이 안 되도록 자식에게 각별한 주의를 주었습니다. ‘앉을 자리와 설 자리’를 분간하는 것이 사회화 과정의 첫발이기 때문입니다.

타자와의 거리는 윤리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그 타자에게 지나친 중력을 행사하거나 타자의 중력으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거리감이 생기지 않도록 계산하는 것을 삶의 중요한 기술로 여겼던 것입니다.

 

YTN뉴스 동영상 캡처
YTN뉴스 동영상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만찬을 벌였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초청하여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태평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복한 잔치 마당이 다른 이들에겐 불편하고 불쾌한 빙충이들의 짓거리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앉을 자리와 설 자리 구분도 못하는 빙충이 짓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나라와 국민이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태평하게 공개적으로 사람들과 만찬이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는데 눈치도 없고 세상 돌아가는 낌새도 모르니, 빙충이입니다. 빙충이 짓을 자꾸 하면 등신이라고 합니다. 등신 짓에도 레벨이 있는데, 눈치도 없이 자꾸 반복하면 상등신이라고 합니다.

이젠 서울법대 출신이 할 일은 AI가 더 잘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서, 앉을 자리와 설 자리를 구분할 때 AI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앉을 자리와 설 자리를 구분하지 못면 사람은 AI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빙충이의 노예가 된, ‘기자’라 부르는 또 다른 빙충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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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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