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나무, 기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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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나무, 기자영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5.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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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기자영. 본래 이름은 기희선(레오나, 45세)입니다. 광주 사레지오 여고를 졸업하고 학창시절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소외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일산에서 6년 동안 개원의로 일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마음공부의 길로 들어섰던 여자사람입니다. 2000년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진도 귀성마을에 살면서 명상공동체를 꿈꾸며 ‘자연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녀는 다음 포털사이트에 ‘의식혁명’이라는 가상의 집을 짓고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래, 인터넷에서였죠. 내가 무주생활을 청산하고 경주로 이사갈 무렵이니까, 아주 오래 전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나는 당시 ‘인디고유니콘’이라는 다음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때마침 식구들과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제 카페에 들어온 그이의 거처가 ‘진도’라 했지요. “가고 싶다”는 메시지에 바로 “환영합니다”라는 답신이 왔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 나선 길에서 그이를 만났습니다. 진주와 하동, 순천과 벌교, 보성, 강진, 해남을 거쳐 진도에 닿았습니다. 진도(珍島), “보배와 같은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개펄이 있는 바닷가는 뭔가 풍성한 것이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유럽의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켈트족의 언어로 말하자면 ‘아남카라’(Anam Chara, 영혼의 동반자)를 발견했습니다.

가톨릭 신앙과 명상 수행을 통해서 낡은 허물을 벗고 새 몸과 영혼으로 갈아입은 사람 같았던 기자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지요. 그녀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평화롭고, 객관적 불행을 넘어서는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매일 하루가 빛나는 놀라움을 그녀에게 던져 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첫눈을 마주치고서야 그녀에게 한쪽 다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암이 전이되어 골반 한쪽을 쪼갰습니다. 그이는 한 다리를 부목에 의지해 마당에 한 다리로 서 있거나 자주 침대에 몸을 누였습니다. 그녀와 밥을 나눠 먹었던 식당 뒤편 논에는 아직 쌀쌀한 초봄의 자운영이 자줏빛으로 마구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생애처럼 아스라한 들판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그녀가 쓴 일기 중에서 83편을 골라서 <춤추는 나무>라는 책을 동무들이 책으로 펴냈고, 이듬해 샨티출판사에서 <내 인생의 좋은 날>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한 그녀의 이야기는 매사를 ‘제 영혼을 위해 좋은 것’으로 바꾸어내는 기적을 엿보게 합니다. 사실 그이는 투병 중에 <기적수업>이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그의 영혼 자체가 기적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기자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이된 종양으로 인해 골반의 절반을 쪼개어낸 후, 제 몸은 활동영역이 매우 좁아졌습니다.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대신에 불필요한 움직임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놓게 되었고, 마음은 고요해졌습니다. 이상한 것은, 잘 놀릴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도, 가슴 깊은 곳에서 ‘그분’은 새로운 꿈을 주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영은 흙으로 ‘자연의 집’을 짓고 작은 명상공동체를 꿈꾸었는데, 자신이 아픈 만큼 뜻하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벗으로 도반으로 찾아와 주었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꿈들은 내 몸만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분신인 벗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이는 사람들을 만나러 서울이고 어디고 갈 때는 자동차 뒷칸에 누워서 다니곤 했는데, 살면서 몇가지 원칙을 세워두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환하게 웃는 것’입니다. 나는 그이를 만나면서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 냉담한 표정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몸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그녀가 사람과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미소였던 것이지요.

몸은 편안했다가 아프다가를 반복했지만, 극심한 몸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그 어떤 깨달음이 뒤이어 찾아오는 걸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바람에 한껏 몸을 맡기고 춤추는 나무처럼, 모든 상황과 흐름에 심신을 맡기는 것”뿐이었다지요. 그래서 행복했다고, 자연이 그러하다고 전합니다. 그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것을 “오히려 내 앞에 나타난 새로운 문이요 희망”이었다고 고백하는 기자영에게는 “사랑만이 중요한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너도 만나고, 풀꽃도 만나고, 우주도 만납니다.

그이는 자신이 아프면서도, 그 아픔이 지구 어머니의 아픔을 나누어 앓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지구 어머니의 젖가슴은 파헤쳐졌고 자궁은 황폐해졌다. 인류는 지금도 더욱더 파헤치고 잘라내어 쓸모없는 것들을 대량생산해서 쓰레기를 만들고, 어머니의 몸 여기저기를 더럽히고 있다. 어머니는 아프다. 나도 그 아픔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은총뿐 아니라 죄의 연대성마저 나누어 갖는 기자영은, 자신이 이른바 정상에서 멀어져 갈수록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움직일 힘이 없어서 가만 누워 있으니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만 바라보아도 탄성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숨 쉬고 눈을 떠 그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의 충만한 행복과 기쁨. 불편한 육체 속에서 빛나는 영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기자영은 의식을 붙잡고 늘어지는 통증을 완화해 주는 ‘진통제’마저 무한한 감사의 대상이라 합니다. 더구나 아픈 몸에겐 수시로 “고맙다” 말합니다. “몸아, 아프느라 수고 많다. 그래, 정 수고한다. 사랑하는 내 몸!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헛되다.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일곱가지 습관>을 쓰고서도 파산하고 말았다. 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내가 쓴 대로 하지 않아서...라고 했다지. 나도 마찬가지. 소리내어 말하자. 늘 사랑을 속삭이자. 어쩌면 고생하는 몸에게 더한 고생만을 강요했는지도 몰라. 이제 아껴주고 위로해 주자. 몸아, 너 정말 사랑해. 이뻐. 통증이 심한데도 잘 움직여주고 잘 싸워주지. 참 대단해. 그리고 너 아름다워!”

그리고 무엇보다 제 영혼을 돌아보라고 권합니다.

“영혼의 충만함을 체험한 사람은 영혼의 메마름이 무엇인지도 안다고 한다. 불안에 휩싸일 때,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할 때, 답답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외로울 때,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때, 바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릴 때,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흥이 일어나지 않을 때,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지 않을 때,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일지 않을 때....이러한 순간을 대면할 때엔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영혼이다.”

2009년 8월 11일, 그녀의 여행이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지요. 그때 나는 “그 길에서도 여전히 안녕하시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을 보낸 모현 호스피스 병동 방명록에는 이현주 목사님이 남긴 한 마디가 적혀 있었습니다. “레오나 자영에게. 축, 졸업! 그리고 입학”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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