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함께 춤추는 메시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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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함께 춤추는 메시아, 예수
  • 김선주
  • 승인 2024.05.2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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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꼰대가 꼰대인 이유는 자기 시대의 문법 안에서만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하는데도 여전히 자기의 세계관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타인을 그 프레임으로 포획하려 한다. 그래서 나이가 먹은 사람은 삶의 지혜가 쌓인 성숙한 지성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이 기술이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세상 달라지는 것을 모르는 까막눈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 때는 말이야’의 문법으로 세상을 보고 타자를 규정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꼰대 현상은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집단이나 사회 공동체에도 나타난다. 한 예로 일전에 치러진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선거를 들 수 있다. 당원과 국민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추미애를 지지했지만 국회의장 투표권은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어 그들에 의해 우원식 의원이 선출됐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불만과 원성이 치솟고 지지율이 폭락하는 사태가 요 며칠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에 국민은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줬지만 박병석과 김진표 의장의 수박 짓으로 개혁 입법이 좌절되고, 오히려 정권까지 넘겨주고 말았다.

시민들의 급변한 정치의식과 그들이 생성한 새 시대의 정치 문법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민은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윤석열 검찰 독재라는 거악과 맞서 싸우는 자세를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이 목적이 아니라 민주적 가치 실현을 위한 실천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기성의 정치 문법으로 국회의장을 뽑은 것이다. 의회와 의원은 시민의 대리 기관이고 대리 결정자들일 뿐이라는 게 우리 시대 시민들의 정치 문법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 문법을 읽지 못했다.

정치에만 이런 꼰대 문법이 있는 건 아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신교회의 꼰대 의식은 눈물겨울 정도다. 교회의 목적은 영혼 구원과 교회 성장에 있으며 예배당이 크면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생각하는, 중세적 사고방식과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들이 한국 개신교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은혜 같은 종교개혁 슬로건을 맥락 없이 아무데나 갖다 붙이고 들이댄다. 이런 교회들은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없다. 교회를 통한 복음의 실현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이다. 믿음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아니라 믿음 자체가 목적이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뿌리가 아니라 열매를 통해 교회를 바라보는데 교회는 뿌리(교리)만 보라 한다.

세례자 요한의 종교 슬로건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였다. 예수의 복음 첫 일성도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회개’라고 번역된 말의 헬라어 원문은 메타노이아다. 메타(meta)는 초월하다, 뛰어넘다는 뜻이고 노이아(noia)는 ‘생각’, ‘마음’을 뜻하는 noos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회개’라는 말은 ‘생각의 변화’라는 뜻이다. 하느님에 대한 관념, 천국에 대한 관념을 바꾸라는 뜻이다. 기존의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 새 문법으로 종교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한 예수 복음의 첫 일성을 우리 시대의 문법으로 바꾸어 말하면 이런 것이다. “기존의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라. 시대가 변했으니 새 문법으로 예수를 보라”

불광출판사에서 다섯 권의 종교총서를 발간하며 ‘종교문해력’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 첫 책이 성해영 교수의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다. 종교를 새 문법으로 보기 위해서 종교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종교를 믿는 것은 열매 없는 뿌리를 보존하기 위해 생애를 바치는 것과 같다. 종교의 본질은 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내는 사람들의 현상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힘을 잃어가는 원인이 시대 변화를 무시한 근본주의적인 태도와 자기 종교에 대한 문해력 부재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우리 시대에 외면 받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회에서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인간이 현상을 초월하여 더 큰 세계와 합일(合一)하고자 하는 근원적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며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공통적으로 이러한 인간의 지향점 위에 있다. 지금 여기에 닥친 삶의 모순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과학 기술과 문명이 근원적인 답을 줄 수 없다. 인간에겐 종교를 통해 얻을 수밖에 없는 답변과 위로가 있다.

하지만 종교가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읽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 되면 꼰대 짓을 할 수밖에 없고 시대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그래서 종교가 가진 윤리와 지성,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종교가 독점하고 있던 신비적 요소와 사건들이 종교 밖에서 체험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영적 체험의 다양성을 세속적 신비주의(Secular Mysticism)라고 말한다. 종교 밖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종교성을 갖고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무종교의 종교(Religion of no Religion)라고 말한다.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기성의 체제를 부정하고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영적 체험을 통해 종교적 삶을 살기 원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체험의 절대성이 가진 문제와 위험성 역시 저자는 간과하지 않는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여러 가지에 빗대어 말하였다. 그 중 하나로 겨자씨 비유가 있다. 하느님 나라는 선물처럼 우리 앞에 주어지는 어떤 물 자체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발아하고 생육하는 활성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고정된 시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운동하며 우리 안에 자라는 우주라는 것이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 비유를 얘기할 때, 그것은 유대교의 율법과 전통에 대한 비난과 저항의 의미였다. 종교를 고정된 관념으로 보지 말고 변화하는 시대를 통해 재해석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시대와 함께 춤추라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은 생명을 잃고 박제화 된 유대교의 사막에서 생명의 춤을 함께 추자는 요청이었다. 예수는 춤추는 메시아였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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