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타인들을 생각한 이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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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타인들을 생각한 이가 누구인가?
  • 김광남
  • 승인 2024.05.2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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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자기 어머니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괴테를 사랑했던 베티나 폰 아르님(Bettina von Arnim, 1785~1859)는 모든 일에 열정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괴테, 베토벤, 아르힘 같은 당대의 예술계의 거장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온갖 정치 문제에 관여해 소수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괴테는 얼핏 매우 이타적이고 숭고해 보이는 그녀를 '자기에 몰입해 있는 어린애'로 여겼다. 그리고 이렇게 충고했다. "네 자신으로부터 뛰쳐나오라." 그 일을 두고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다.

"괴테에게 그런 충고를 할 권리가 있었는가? 티롤의 애국자들을 성원한 사람이 누구인가? 페퇴피를 기리도록 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미에로슬라브스키의 생명을 옹호한 이가 누구인가? 끊임없이 타인들을 생각한 이가 누구인가? 괴테와 베티나 둘 중 누가 자신을 희생하려 했는가? 베티나다. 이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괴테의 지적이 무색해지는 것은 아니다. 베티나는 한번도 자신의 자아에서 빠져나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디로 가건 그녀의 자아는 마치 깃발처럼 그녀의 등 뒤에서 펄럭거렸다. 티롤의 산골 사람들을 편들도록 그녀를 자극한 것은 그 산골 사람들이 아니라, 티롤의 산골 사람들의 투쟁에 열정을 느낀 베티나의 매력적인 이미지다. 괴테를 사랑하도록 그녀를 자극한 것은 괴테가 아니라 늙은 시인을 사랑하는 베티나라는 아이의 매혹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스무살에 공산당에 가입하는 소년이나 손에 총을 들고 게릴라에 합류하러 산속으로 가는 소년은 혁명가라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었다... 강렬하게 집중된 시선 앞에서 영혼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부풀고, 부피가 커지다가, 마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발하는 기구처럼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먹을 들게 하고, 총을 잡게 하고, 정당한 혹은 부당한 명분을 옹호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이상 팽창된 영혼'이다." (밀란 쿤데라, <불멸> 중에서)

우리 주변에서 그럴 듯한 일을 하는 이들 중 '이상 팽창된 영혼'을 가진 이들 꽤 있다. 겉보기에는 꽤 이타적으로 보이는데 속은 '자기'로 가득 차 있는 이들. 그들은 자기가 설정한 자신의 그럴듯한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 이미지를 깃발처럼 펄럭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속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우리만큼이나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문제는 순전함과 명실상부(名實相符)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혹은 환상에 가까운 기대다. 그런 기대는 대개 실망 혹은 절망으로 이어진다.

물론, 간혹 우리는 '이상 팽창된 영혼'이 아니라 '순전하고 명실상부한 인격'과 마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기회를 얻은 사람은 복되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이가 있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사람처럼 살아오지 못했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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