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일상, 때로는 외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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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일상, 때로는 외롭지만
  • 주은경
  • 승인 2024.04.30 09: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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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경의 순례여행 - 마돈나하우스 9화

11월 25일. 일요일 아침미사 후 브런치를 마친 다음, 청바지와 스웨터로 갈아입었다. 바느질, 목공, 양초작업 공방들이 모여 있는 세인트 라파엘(Saint Raphael)에 게스트들이 모였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준비하기 위해 소나무 가지를 크기별로 모으는 일을 했다. 가뜩이나 몸이 힘든데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나? 이거 초과근무 아닌가? 속으로 조금 투덜거렸다. 일을 끝내고 2시 30분쯤 숲속 언덕길을 올라갔다. 한국인 게스트 은수씨와 함께하는 산책. 한참을 걷다 오른쪽 길로 접어드니 눈 덮인 평지에 외딴 집이 보였다.

마돈나하우스 근처에 이렇게 예쁜 집이 있구나 하는 순간, 사자처럼 큰 개가 무섭게 짖으며 달려왔다. 엄마야. 심장이 얼어붙었다. 후덜덜. “으악. 저리 가.”

산책하다가 개에게 물릴 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내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주인이 달려오며 개를 불렀다. 겨우 위기 모면. 이 멀리 캐나다 하고도 마돈나하우스까지 와서 개에 물린다면, 개도 웃을 일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카르멜 힐(Carmel Hill) 정상에 도착했다. 앞이 툭 트여 멀리까지 내려다보였다. 조금 전 공포심을 내보내려 깊은 숨을 쉬었다.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그 개가 나를 물려고 한 건 아닐 거야’ 하면서.

 

 

마돈나하우스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경
마돈나하우스 언덕에서 바라보는 전경

눈밭을 더 걷고 싶었지만, 발목까지 푹푹 빠져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3시40분쯤 가던 길을 접고 내려왔다. 저녁미사에 맞춰가려면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눈길이 미끄러웠다. 중고품 가게(Saint Joseph)에서 1달러에 산 부츠가 헐떡거렸다. 발이 아팠다. 워낙 차가 뜸한데다가 대부분 마돈나하우스 스탭들이 오고가는 길. 힘들게 내려오는데 마침 차 한대가 지나갔다. 힘껏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로버트 신부님이다. 3주일 전 내가 처음 마돈나하우스에 도착한 날 저녁, 메인하우스 입구 반지하 로비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했던 분. 이후에도 그가 베토벤 소나타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쳤다는 신부님.

다시 옷을 갈아입고 일요일 저녁미사가 열리는 세인트 메리(Saint Mary) 건물로 5분을 걸어가는데, 젊은 게스트 안젤리나가 저 앞에 걸어간다. “안젤리나!” 그녀를 큰 소리로 불러 수다 떨며 걷다보니, 없던 힘이 다시 생기는 것 같다. 확실히 웃음과 수다는 피로 퇴치약이다.

세탁실, 양말 개고 다림질 하고

11월 27일 화요일. 어제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어제보다 발이 더 푹푹 빠지는데, 오후 내내 또 눈이 내린다. 오늘 배치 받은 일터는 세탁실. 나는 세탁실을 좋아한다. 탈수기에서 금방 나온 침대시트나 수건을 갤 때 그 감촉이 포근하다. 양말 개는 일도 재미있다. 제각기 널려 있는 양말들 모양을 확인해 짝을 찾아 사람들의 이름표를 확인하고 접을 때는 마치 카드게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세탁실 책임자 버나뎃이 다림질을 하란다. 집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다림질인데. 미사 때 신부님들이 제단에서 사용하는 하얀 린넨. 두 시간쯤 다리고 나니 와이셔츠를 내준다. 다리미가 너무 무거워 팔도 어깨도 아프다. “나 다림질 못해요.” 버나뎃은 포기하지 않는다. “가르쳐 줄게요” 하며 시범을 보인다. 하는 수 없이 와이셔츠 하나를 다렸다. 팔이 후들거렸다. 그가 딱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는 수건과 침대시트 개는 일로 바꿔준다. 이렇게 몸이 힘들 때는 자유로운 시간이 그립다.

오늘은 힘 빠지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하우스 마더 쟌에게 물었다. “어제 키에렌 신부님이 1주일에 한번 뿌스띠니아에 가는 걸 허락했어요. 이번 주에도 갈 수 있겠죠?” 쟌은 “정식 스탭은 1주일에 한번 가능하지만, 게스트는 2주일에 한번만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세상에. 매주 한 번 뿌스띠니아에 갈 수 있다면 계획대로 7주를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실망이네.

소소한 즐거움, 고마운 사람들

11월 28일. 수요일 오전엔 신부님의 강론을, 저녁식사 후에는 공방건물(Saint Raphael)에서 게스트들과 함께 대림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처음보다 점점 잘 들려서 기분 좋았다.

오늘 저녁 미사 때는 기도에 좀 더 몰입하기 위해 고전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머리도 바닥에 조아렸다. 이곳 마돈나하우스 사람들이 하듯이. 어떤 이들은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 기도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여행하면서 가보았던 티벳 불교사원, 파키스탄 이슬람 사원에서 보았던 모습과 비슷하다. 기도하는 모습은 동서양 종교를 초월해 공통점이 있다.

 

마돈나하우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마돈나하우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11월 29일 목요일. 오늘도 영하 17도. 어제 밤은 더 추웠다. 양말을 신고, 폴라 자켓을 껴입고 잤다. 담요에 이불에 그렇게 겹겹이 덮고 자는데도 밤새 이불 양쪽에서 찬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잠을 설쳤다. 6시 45분, ‘띠 띠’ 자명종이 울린다. 이불과 담요가 많은 만큼 나는 침대정리에도 남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옆자리의 카타리나가 나를 딱한 듯이 바라본다. 체코 출신의 그는 나보다 더 작고 말랐지만 늘 이불 하나만 덮고 잔다.

그래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몸이 활짝 깬다. 하얀 눈 세상이다. 눈이 녹지 않은 채 그대로 나무에 얼어붙어 빙설작품을 만들어낸다. 아침미사 가는 길. 하루가 시작되는 이 길은 매일매일 다른 색채의 살아있는 그림을 선물한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목요일. 점심식사 후 자유시간이다. 한국인 게스트들은 벼르고 벼르던 냉동새우를 먹기로 했다. 이곳에선 식자재를 주로 농장에서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해산물을 먹을 기회가 드물다. 한국인 게스트 지연씨, 은수씨와 1층 부엌 구석에서 스파게티를 만드는데 마음이 급해 완전 두서가 없다. 소스는 만들었는데 스파게티 국수 삶는 15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김치, 김, 고추장을 먹다가, 국수를 삶고 토마토 소스에 새우를 넣고 요리를 한 다음 스파게티를 먹었다. 셋이 냉동새우 한 봉지를 거의 거덜을 냈는데 뭘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며 배를 채운 다음 혼자 산책을 했다.

 

호수 같이 흐르는 마다와스카 강변 산책길

눈이 내린다. 살포시 얼음이 얼은 강가에 다시 눈이 내린다. 이곳 마돈나하우스에 이 호수 같은 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이 강은 정말 좋은 마음붙이 친구다. 길을 따라 올라갈 땐 배도 뜨뜻하고 걸을 만했는데 오후 네 시가 되니 갑자기 어둑하니 바람이 세다. 바람소리도 황량하다. 다시 걸어 내려오는데. 너무 춥다. 손도 발도 다 얼어붙어 감각이 없어질 무렵 이번에도 누군가 차를 타고 가다가 태워준다.

저녁 미사 시간. 오늘 하루 이렇게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이 단순한 생활이 지루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더없이 마음은 평화롭다. 그래도 여기서 얼마나 더 있을지. 자신이 없다.

오후에 스파게티도 든든히 먹었겠다, 저녁식사는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에 오늘은 한국에 있는 친구와 수다를 떨어야지. 1층 공중전화 박스에서 혜영에게 전화를 했다. 혜영에게 이곳 하루 일과를 간단히 설명하고, 내게 잔소리를 하는 A 때문에 힘들었던 일, 단순하고 단순한 일을 하면서 가끔 ‘내가 뭐 하고 있나’ 한다는 얘길 털어놓았다. 역시 혜영이는 나를 응원했다. “그게 이 뭐꼬 명상이야, 소중한 체험이야” 하면서. 역시 수다가 최고다.

11월 30일. 금요일. 오늘 아침에도 눈이 내린다. 6시 50분. 일찍 기상하는 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하지만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아침 식사 때 작은 도서실의 작은 사과를 먹으려고 주방에서 과일칼을 가지고 나오는데 스탭이 한마디 했다. “하우스 마더에게 허락을 받았어요?” 사과 하나 먹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나? 알고 보니 작은 도서실에 놓인 사과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특별음식. 나도 변비 때문에 아침에 사과를 꼭 먹어야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치과의사였던 폴 신부님에게 사랑니 진단

게다가 잇몸이 부어올라 아프다. 어제 밤에 먹은 콘 칩이 사랑니에 박힌 것이다. 여기 폴 신부님이 치과의사였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의 치아건강을 책임진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하우스 마더에게 폴 신부를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저녁 식사 후 폴 신부가 나를 3층 신부님 사무실로 부른다. 주은이 통역을 해주면서, 신부님이 전기 플래시로 내 입을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다행히 “Not Bad". 한국에 돌아가면 사랑니를 빼라고 한다.

외국에 오래 체류해보니, 치아건강이 참 문제다. 한국에선 문제가 있으면 금방 처치와 치료를 할 수 있는데. 캐나다는 치과치료가 무척 비싸다고 들었다. 내가 들고 온 여행자보험에 치과 부문이 포함되는지도 확인한 적이 없어 걱정된다.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도 만만치 않다.

아침에 미사가 끝나고 걸어가면서 몇몇이 ‘굿모닝’ 인사를 하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며 걸어간다. 이럴 땐 문득 쓸쓸해진다. 내 마음을 읽었나? 저녁 미사 끝나고 나오는데 나이 지긋한 여자 스탭이 걸어가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세탁실에서 일하는 버나데트도. 외로울 땐 무심한 듯 나누는 작은 대화도 힘이 된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다이닝 홀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메리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식사하고, 강의 듣고, 대화하는 메인하우스의 다이닝룸.
함께 식사하고, 강의 듣고, 대화하는 메인하우스의 다이닝룸.

“서열 없는 이곳엔 멋진 친구들이 많아요”

대략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메리. 그는 1985년에 처음 마돈나하우스에 와서 3주 동안 게스트로 있었다. 그 후 1987년에 다시 와서 2년 동안 게스트와 수련생 기간을 거쳤다. 종신서원을 한 후 워싱턴과 애리조나의 지부(field house)에서 일했다. 1999년에 다시 마돈나하우스 본부로 돌아와 3년 하우스마더, 3년 수련생 지도하는 일을 맡았다. 최근 2년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마돈나하우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서열구조가 덜한 것이 좋았어요.”

가톨릭공동체가 대부분 사제 공동체와 수녀원인데, 캐서린 도허티가 당시의 안 좋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남녀가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들었을까? 내게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메리는 이 곳의 좋은 점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꼽는다. 나도 공감한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깨달았다. 한국을 떠나 몬트리올에서 지냈던 세 달, 하루하루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캐나다에서의 돈과 시간. 다시 내게 없을 ‘화려한 휴가’를 잘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다.

메리가 덧붙인다. “만약 도시에서 결혼해 살았다면, 아이를 키우며 이 일 저 일 분주하게 살았을 거예요. 대신 나는 이곳에서 내 영혼을 누리며 살고 있어요. 이곳엔 멋진 남자 친구, 여자 친구들이 많죠.” 영혼이 통하는 친구들과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메리의 눈빛이 촉촉하다.

다음날에도 눈이 펑펑 내린다. 사무실에서 우표를 붙이는 내 자리에서 바라보는 예쁜 창문 네 개. 그 창을 통해 하염없는 눈보라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흩날리는 눈송이가 큼지막한 솜털 같다. 바람이 거세다.

그래. 뭐든 처음엔 호기심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일상이 반복되면 첫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사람이든 장소든 마찬가지. 하지만 그 단조로운 일상에서도 작은 사건, 외로움, 고마움, 위로와 만남이 있다.

한국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이 시간이 무척 그립겠지? 너무 기를 쓰며 열심히 지낼 것도 없고, 이럴까 저럴까 갈등할 것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 감사하며 머리도 마음도 단순하게 살아보자. 그 날 밤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흩날리는 눈송이
흔들리는 촛불
가로세로 부는 바람
그것을 바라보는 나.

 

 

주은경
1980년대 인천에서 노동자교육활동을 했다.
1994년부터 15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KBS <추적60분> <인물현대사> <역사스페셜> 등을 집필했다.
1999년 성공회대학교 사회교육원 기획실장으로
노동대학 첫 5년의 기반을 닦았다.
2008년부터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에서
민주주의학교, 인문학교, 시민예술학교를 기획 운영하다
2020년 말 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시민교육연구소 ‘또랑’ 소장.
지은 책으로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쓴 책으로 <독일 정치교육현장을 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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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a 2024-05-03 02:12:24
"나는 이곳에서 영혼을 누리며 살고 있어요.." 영혼을 누리며 산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요? 잠깐씩 영혼을 누리는 듯 하다가 이내 그 느낌이 사라져 버리곤 하지요.

맘이 통하는 친구들과 원하는 걸 하며 산다는 메리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네요.
그런 이들과 오래도록 함께 생활하면 맑은 행복에 물들 것 같아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