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살든가, 아니면 떠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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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살든가, 아니면 떠나든가
  • 김광남
  • 승인 2024.04.2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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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남 칼럼

어느 책에서 읽었다. "서구 신학은 홀로코스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구절을 읽으며 나는 세월호를 떠올렸다. 그 전에도 불량하기는 했으나, 나의 신앙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어제 <복음과상황> 독자 모임에서 단원고 2학년 8반 박시찬의 아빠 박요섭 씨의 인터뷰 기사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대화 끝에 내가 물었다. "도대체 요섭 씨는 왜 아직도 하나님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요?" 인터뷰 중에 그가 지금 자신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예배를 안 드린다고 해서 내가 하느님을 떠난 것은 아니다.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세월호 참사 이전이나 이후에도 전혀 이상이 생긴 것이 없다. 그대로다. 하지만 한국교회와 나 사이의 관계는 180도로 변했다."

그러나 그 인터뷰 기사를 조금 더 읽어보면 그는 분명히 더는 전처럼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는 요즘 자신이 거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 아이들이 다 돌아오지 못했고, 그러면서 제가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찾으려다 보니까...아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도 하느님은 응답이 없었는데 내가 기도한다고 하느님이 과연 응답하실까, 라는 회의감이 들어서 이제는 그렇게 하느님께 매달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고백이 사실이라면, 요섭 씨와 하느님의 관계는 이미 변한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는 아직도 자신과 하느님의 관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걸까? 대놓고 말은 못했으나, 속으로 나는 '혹시 그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거나 부정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가 교회를 떠났듯이 그가 믿었던 하느님에게서도 떠나야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요섭 씨와 달리 이제 나는 더는 전통적인 하느님 개념을 믿지 않는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 나는 믿지 않는다. 솔직히, 세월호 이후에 그런 하느님을 믿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나로서는 이해할 길이 없다. 믿기지 않는 간증을 섞어 여전히 기도의 능력과 효험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지만, 몇 가지 예외적인 일을 앞세워 엄연한 현실을 호도하는 것 아닐까 싶다. 세월호 이후 나의 신앙은 변했다. 지금도 가끔 기도를 하는 것은 오랜 습관 때문일 뿐이지 기도하면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모임에서 누군가 내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왜 아직도 교회에 다니는 겁니까?" 나는 답했다. "내가 지금껏 성경을 읽으며 얻은 결론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백성 공동체를 이루고 살라'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세월호 이후 나는 '기계 장치의 신'(deux ex machina)을 믿지 않는다. 대신 좋은 삶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과 길을 제공한 하느님을 믿는다. 설령 그가 나의 작은 신음은커녕 간곡한 부르짖음에도 응답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하느님이 그렇게 생겨먹었다면,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살든가, 아니면 떠나든가.

세월호 이후 나는 이신론자,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변형된 이신론자가 되었다. 하느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 세상이 자기의 뜻에 합당한 곳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 가르침은 성경에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분은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우리가 그 명백한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세월호 같은 엄청난 비극이 발생해도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더 바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할 이유다. 그러니 요섭 씨 같은 이들을 잃어버리고도 교회입네, 하는 것은 블랙 코미디다.

 

김광남
종교서적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작가이자 번역자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교회 민주주의: 예인교회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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