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뇌세포에, 우린 등짝에 빗살무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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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뇌세포에, 우린 등짝에 빗살무늬가 있다
  • 김선주
  • 승인 2024.04.0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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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별로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바로 1만 년 전입니다, 빗살무늬토기가 만들어진 것은.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생산량이 증가했습니다. 이로 인해 잉여생산물이 생겨났고 그것을 담아 안전하게 보관할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과 함께 토기에 잉여생산물을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보관하는 사람이 부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계급이 파생됐습니다.

빗살무늬는 빗발치는 소나기의 모습이나 바람에 나부끼는 여인의 낭만적인 머릿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위계급이 하위계급의 등짝에 내려친 채찍 자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최초의 토기에 새겨진 빗살무늬는 노예의 등짝에 난 채찍의 상흔이라고 나는 상상합니다. 별로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바로 1만 년 전입니다.

빗살무늬를 보면서 토기 주인은 자기 힘에 대해 우월감과 긍지를 느꼈을 것입니다. 처자식을 위해 채찍을 맞아가며 누군가에게 먹거리를 구걸해야 하는 사람과 채찍을 휘두르며 누군가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의 위계가 빗살무늬로 상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빗살무늬는 귀족 가문의 문장(紋章)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빗살무늬토기를 소유한 집안과 그렇지 않은 집안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구분되지 않았을까요? 빗살무늬는 귀족(권력자)과 평민을 구분 짓는 계급 문장(紋章)은 아니었을까요?

권력자는 자기의 빗살무늬를 지키기 위해 견고한 집을 짓고 그 집을 지키는 노예를 징집하였을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빗살무늬가 침해당하지 않으려고 그는 타자의 접근이나 방문을 거부하고 마을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거주 영역을 신성한 곳이라고 구라를 쳤을지도 모릅니다. 빗살무늬를 가진 자들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적극적인 외부활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집의 빗살무늬토기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방어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그들은 빗살무늬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거주지가 바뀌는 것을 싫어하고 마을 터나 주민들의 주거 형태가 바뀌는 것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보수주의의 기원입니다. 최초의 노예들에게는 아마도 주인이 소유한 토기의 빗살무늬 화인(火印)이 찍혔을 지도 모릅니다. 빗살무늬는 권력자의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의 소유물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상상하면, 지금도 우리 안에 빗살무늬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선거는 늘 보수와 혁신의 구도로 치러집니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대결이 선거의 구도입니다. 이것은 빗살무늬토기인과 그들의 피지배층 간의 대립입니다. 오늘도 뇌세포에 빗살무늬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하지만 등짝에 빗살무늬가 남아있는 사람들 역시 빗살무늬토기인의 힘과 통치 아래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열렬히 숭배합니다.

우리에겐 모두 빗살무늬가 있습니다. 그것이 뇌세포에 있는지, 아님 등짝에 있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그 무늬를 벗겨주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가르칩니다. 빗살무늬의 자리에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타자를 사랑한, 예수의 십자가 무늬를 새로이 새기는 분이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빗살무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교회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의 얼굴에 화인(火印)처럼 찍힌 빗살무늬를 선거철에는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빗살무늬교인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정치적인 언어로 보수주의자라고 합니다.

보수주의자는 빗살무늬토기 안에서 평안히 눕고 잠을 잡니다. 빗살무늬는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영혼에 빗살무늬가 있습니다. 그래서 빗살무늬 화인(火印)이 찍혀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우리는 보수정당만 찍어요”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에 빗살무늬 화인(火印)이 찍힌 교회 사람들은 “예수를 팔아먹어도 나는 우리 목사님이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가끔은, 내 등짝에 빗살무늬가 없는지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서서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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