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예수는 왜 믿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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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예수는 왜 믿는 겨?
  • 김선주
  • 승인 2024.04.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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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신앙의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맞은 사춘기였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학습문답에서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구원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는 답지가 주어졌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답변에 현재의 삶이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이 오늘을 사는 이유라 생각하니 오늘의 삶이 허무하고 무의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천국이 오늘의 사건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지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춘기를 맞아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힌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교리였습니다. 그것은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니며 신앙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새벽녘, 무질서하게 어질러 있는 내 방을 정리하며 한스 큉의 책들을 따로 모아봤습니다. 내 신학과 신앙의 지평을 열어준 것은 신학교가 아니라 한스 큉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내 정신을 사로잡았던 학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두서없이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 그의 책들만 모아 눈에 띄는 곳에 두고 짬날 때마다 다시 훑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중 가장 코끝 찡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왜 그리스도인인가>입니다. <그리스도인 실존 Christ sein>이라는 8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을 대중을 위해 필요한 것만 축소시켜 펴낸 책입니다.

분명 예전에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책인데 처음 읽는 것 같은 당혹감이 훅 들어옵니다. 동시에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충격과 감동이 첫 페이지에서부터 나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나를 끌고 다니던 사춘기 시절의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왜 예수를 믿는가? 예수는 내 삶에 무엇인가?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이 가슴을 치며 육중한 철문을 엽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 말고, 예수 믿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을 천국으로 사는 법은 없을까? 등의 질문을 다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질문과 답변이 없는 교회, 그런 교회에서 만들어낸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황교안, 윤창중, 김진표 장로들입니다. 이들에게서 경험한 것은 이기심과 권력 지향적 반 그리스도 행태들이었습니다. 또 이름만으로도 그가 기독교인인 것을 알 수 있는 김은혜, 장예찬, 노엘(장용준) 같은 이들에게서 보게 되는 이미지는 상스러움, 기망 같은 것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후(死後) 천국을 위해 오늘을 경건하게 살 필요를 못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대속적 구원을 약속받았다는 확신이 오늘의 삶을 구속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축복받아 잘 사는 게 신앙의 목적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권력을 멀리했고, 권력으로부터 탄압받아 죽임 당했는데 교회는 그 맥락을 지워버렸습니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만 클로즈업시키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은 배후의 정치적 음모와 권력의 폭력성은 지워버렸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교리의 이미지만 확대시키고 한 사람의 선한 양심과 생명을 짓밟고 살해한 당대의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의 배후는 말끔하게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패한 권력과 한 패가 되면서도 아무 죄책감 없이 ‘오직 예수’를 외치며 비현실적인 영혼의 감각에 취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한스 큉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며,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라고. 이 질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던진 복음의 핵심 가치입니다. 인간 권력이 통치하는 제국의 땅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며 살 수 있는가? 예수는 힘과 권력, 돈이 지배하는 야만적인 인간사회에서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영혼 구원’을 말한 게 아닙니다. ‘생명의 회복’이라는 원초적이고 전인적인 세계의 치유를 가르친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 구원이라는 편협한 이원론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교회 사람들은 현세의 삶을 가볍게 여기고 도덕과 상식을 넘어 비합리적 폭력도 마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돈과 힘을 숭상하고 권력을 취하기 위해 예수를 수단으로 삼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보장된 사람이 현세를 가난하고 경건하게 살며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돈과 권력을 쟁취하고 누리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고통을 주어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보수정당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상스럽고 거짓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교 신자입니까? 가 아니라,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라고. 충청도 말로 옆구리 쿡 찌르듯 말하면 이렇게 됩니다. ‘도대체 예수는 왜 믿는 겨?’ 이 질문이 빠지게 되면 사특한 무리들이 예수의 이름을 들고 나오면 다 우리 편이라 착각하고 오히려 진실을 향해 침뱉고 저주하게 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선거철에 되새겨 봐야 하는 말씀입니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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