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인생은 셋방살이, 조현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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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생은 셋방살이, 조현옥 선생님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11.06 00: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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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사람들은 그이가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님이 찍으면 실제보다 더 그럴듯 해 보여요.” 그이의 호흡이 담긴 짧은 단상과 사진을 보기 시작한 지 수 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조현옥 프란체스카, 그이가 카메라에 담아 놓은 풍경이 겉보기보다 아름다운 것은 그녀의 내면의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이의 남다른 심성(心性)이 카메라에 특별한 심상(心象, imagery)으로 맺히는 것일 테지요.

텍스트나 이미지로 빛나게 만났던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모험을 감행하는 일입니다. 대부분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친애하는 작가는 소설로만 만나는 게 현명합니다. 깨달음의 언어를 지어내는 신학자는 멀리서 보는 게 상책입니다. 자칫 악수하고 돌아서면서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이가 내게 전해 주었던 찬란한 영감마저 색채를 잃어버리는 까닭입니다. 그래도 그이를 만나자 했습니다. 그이가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뒤늦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녹색평론> 하시던 김종철 선생님처럼, 늘 원하면 볼 수 있으니 나중에 만나자던 사람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내면서, 마음이 움직이면 그때 곧바로 실행에 옮기자는 원칙을 세워두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조현옥
사진=조현옥

집, 주인의 숨결을 지닌

마침 기회가 닿은 것은 그이가 <현옥하는 집 賢屋>이라는 책을 냈기 때문입니다. 북토크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참에 연락을 드리고 당장 주말에 홍성에 갔습니다. 이 책은 자신을 현혹시켰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홍성 일대의 소향리, 오관리, 내법리에서 세를 얻어 살았던 세 집에 얽힌 삶을 흔적들을 더듬어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이는 먼저 ‘집이란 무엇인가’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을 하지요. 나태주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그 집에 깃들어 살았던 이들에 대해 집이 말하기 시작한다고요.

“집은 많은 것을 듣고 기다리고 목도하며 겪어간다. 아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첫걸음마를 뗀 순간 깜짝 놀란 엄마의 기쁜 웃음소리도 기억하며, 책가방을 메고 돌아온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노오란 민들레꽃, 그리고 고열로 뒤척이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 그 밤의 일도 기억한다. 소곤거림뿐만 아니라 다투며 살그머니 흘리는 눈물도 들을 줄 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나이를 먹는다.”

추도에서 태어난 조현옥 선생님은 아마 섬집에서 자란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세월을 따라가며, 집은 삶을 알려주고 삶은 집을 자기 꼴대로 만들어 가는 법입니다. 유난히 빨강 파랑 초록 양철지붕 농가주택에 현혹된다는 그이는 “빗물받이가 새고 지붕 한귀퉁이가 그렁그렁 소란하고 페인트가 벗겨지면서 햇빛에 일그러질 때 어쩌면 집은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도 늙어가면서 자주 병원을 찾고 약을 타러 가듯 집도 마찬가지로 치료가 필요한 시절이 온다고 합니다. 주인이 돌볼 시간이 없고 밖으로 돌기만 하면 여기저기 새거나 부서지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굳이 그이가 내법리 집에 살던 2021년 11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도 집도 돌보지 않으면 외롭고 부서지고 삭아내리는 게 당연하겠죠. 그래서 녹슨 지붕과 병든 몸이 문제라기보다 그 집과 몸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치유하고 집도 고치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그이는 “쓸쓸하면서도 고고한 모습”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주름살이 드러나듯 볼품없는 외양을 가졌으나 주변 환경과 아우러져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집을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주인의 숨결을 간직하며 거칠고 지독한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라도 덤덤히 그러면서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집을 만났을 때,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존경의 미소를 보내게 된다. 인생이 다 그렇듯 집고 늙고 사라진다. 잘 늙고 나이 든 집, 삶의 증인으로서의 집, 그 안에 담긴 심리적 안정까지 담뿍 담은 집이 좋은 집 아니겠는가?”

 

사랑하기 위해 남겨지다

조현옥 선생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집이 바로 당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을 얻고도 셋집을 제 집 삼아 정원을 가꾸고, 책을 읽고, 시를 읊고, 고양이를 돌보고, 사람들을 불러다 밥을 해주고... 예전과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냈던 사람입니다. 그 집에 예전처럼 수선화와 맨드라미가 노랗고 붉은 얼굴을 내밀며 제 집처럼 기꺼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공소로 향하던 걸음을 옮겨 새벽미사를 다녀오고,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지요. 항암치료 때문에 병원에 와서도 만사를 고맙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동안의 일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것, 아주 조그만 섬에서 태어나 이렇게라도 글 쓰고 공부하고 산 것에 감사하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을 낳아 잘 성장시킨 것에 감사하고, 이즈음까지 자연을 벗 삼아 꽃 키우고 콩 심고 파 심고 자연주의자로 살게 해주심에 감사하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알고 계신 하느님 덕분에 잘 먹고 잘 자고 있다고 그이는 감사했습니다. 평생 제 집 한 번 가져본 적 없지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말라는 성경말씀이 하나도 틀린 데 없다고, 매일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슴 아픈 이들의 한숨까지도 모두 들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며, 이 순간에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매일을 허락하심에 황급히, 그리고 즉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조현옥 선생님이 지금은 항암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 영혼과 육신의 집도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기 위해 남겨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셋방살이’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그이는 지금 사랑할 일만 생각합니다. 내가 오늘 만나고 있는, 아니면 내일 만나게 될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안을 생각입니다. 무화과 나뭇잎처럼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주님, 저 아무것도 없어요.” 하고 웃는 그이의 얼굴이 삼삼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네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도 너는 나를 믿니?” 하고 새삼 거듭 물어보았다는 그이의 주님께 나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경향잡지>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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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안나 2023-11-09 21:40:5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