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우리 고장 말 자랑대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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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우리 고장 말 자랑대회를 꿈꾸며
  • 장진희
  • 승인 2023.10.3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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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의 시와 산문

자기 고장 말을 방언 또는 사투리라고 말하지 말자. ‘우리 말’, ‘우리 동네 말’ 혹은 ‘우리 고장 말’이라 하자. 전국의 모든 사람이 서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표준말’을 정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서울 중심인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전국 각지에 살아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말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울 중심, 중앙 중심, 큰 것 중심의 사고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표준어 사용만을 권장하다 보면 모르는 새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자신의 말과 뿌리, 조상들의 말의 가치를 대접하지 않게 만든다. 심장의 역할보다 더욱 중요한 모세혈관의 역할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젊어서 서울 살 때도 점점 내가 쓰던 말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어디선가 잊었던 고향말 단어 하나라도 들으면 새록새록 반갑고 아깝고, 입에서 굴리며 어디서든 써먹고 싶었다. 누군가 기억하고 자꾸자꾸 쓰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정말 아까운 말들이 너무 많다.

나뿐 아니라 전국 각 지역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주도,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들으면 참말로 재미지고 오지고, 그쪽 사람들 생활과 문화와 심성이 드러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마디 듣기만 해도 고향에 간듯 따뜻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들 다 모태놓고 ‘전국 우리 고장 말 자랑대회’를 일년에 한번이라도 하면 좋겠다 하고 꿈꾸어본다. 또 국가예산을 어만 데다 쓰지 말고, 각 지역의 ‘지역 말 사전’-‘전라도말 사전’, ‘경상도 말 사전’, ‘제주도 말 사전’ 따위를 만들면 좋겠다 꿈꾸어본다. 비슷한 사전은 있지만 각 지역의 말을 모아놓은 사전은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같은 전라도 말이라도 동서가 다르고 또 남북이 다르니, 아주 방대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겠지만, 그 말을 쓰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계실 때 채록해서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말을 후손들이 계속 이어서 쓸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이루어놓은 물질문명 때문에 지구의 위기, 인류의 멸망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하루하루 절감하며 살고 있다. 대통령 잘못 뽑고 정치가 개판이어서 그들 몇몇 빼고는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지만, 나로서는 그보다 더 큰 범위의 위기가 이미 우리를 덮치고 있다고 느낀다. 우리가, 우리 아들딸들이 언제까지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그 모든 것을 안 할 수는 없다. 대통령 탄핵 요구도 열심히 해야 하고, 지구 한 귀퉁이 한 지역의 말을 살리는 일도 하고 싶다.

가을이 오고, 서리가 내리도록 내일 일을 계산하지 않고, 사는 데까지는 끝끝내 살아내는 풀꽃들처럼. 낼모레 서리가 내릴 텐데도 굽히지 않고 노란꽃을 피우고 탁구공만큼 잘잘한 연두색 애호박을 열심히도 달고 있는 호박 넝쿨처럼.

소위 ‘표준말’은 도시 말이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자연을 파괴하고 물질과 문명을 우선시하는 생활과 사고와 심성이 더 많이 담긴 말이다. 그에 비해 우리들 마음의 고향 말, ‘고향 말’은 이땅 최후의 원주민, 과학과 물질과 문명이 지배하기 이전에 자연과 생명을 덜 파괴하고 존중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말이다. 그 생활방식과 생각과 느낌이 말에 담겨 있다.

지금 우리가 고향 말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지구 파괴 이전의 생활방식과 사고와 심성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잊어버리거나 버렸던 우리 고향 말을 찾아 씀으로 해서 인류를 위기에서, 지구를 위기에서 구할 방도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장진희
돈 안 벌고 안 쓰고 안 움직이고
땅에서 줏어먹고 살고 싶은 사람.
세상에 떠밀려 길 위에 나섰다.
장터로 마을회관으로.
무주에서 진도, 지금은 곡성 죽곡 보성강변 마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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