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수도원의 “관상가”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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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수도원의 “관상가”도 사회의 구성원이다
  • 토머스 머튼
  • 승인 2023.08.1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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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삶과 거룩함/토머스 머튼의 서문-1
사진출처=anastpaul.tumblr.com
사진출처=anastpaul.tumblr.com

나는 <삶과 거룩함>을 단순하게 쓰려고 노력했으며, 그리스도교 영성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기초적인 수준으로 기술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나, 가톨릭 교회의 내적인 생활의 어떤 원칙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관상”이나 “지적 기도”와 같은 주제들은 여기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동시에 가장 신비로운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은총, 우리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힘과 빛, 우리의 가슴을 정화시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 우리를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로 만드는 것, 인류의 선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그분의 도구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행동하는 삶에 적합한 몇 가지 근본적인 주제들에 관한 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하는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확실히 행동하는 삶은 수도자들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병자를 돌보고, 기타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다(“관상 생활”과 대치되는 개념으로서의 “행동하는 삶”이라고 할 때에는 대체로 이런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말하는 행동은 관상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애덕의 표현이자 세례를 통해 맺은 하느님과의 일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행동적인 삶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성사를 집전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자비의 행위를 펼치는 것일 수도, 사회의 영적 쇄신을 위한 전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인류의 존립 자체를 결정짓는 평화와 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봉쇄 수도원의 “관상가”라 할지라도 사회의 위기와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데 그것은 그가 여전히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그는 사회의 혜택을 분배받고 사회에 대한 의무를 공유한다). 그 또한 기도와 거룩함 외에 이해와 관심으로 교회 사업에 어느 정도 “활발하게” 참여해야만 한다.

관상 수도원의 경우에도 생산적인 일은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이며, 넓게는 사회에 대한 봉사로 볼 수 있다. 관상가들이라도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들의 역할이 갖는 성격과 의미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특히 수도원이 피정 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쉴 곳과 성찰이라는 “봉사”-매우 중요한 봉사임에 틀림없는-를 제공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미 이 책이 관상가들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다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행동하는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만 말하겠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며 가시적인 교회의 권위와 일치하면서, 인류 사회 전체의 영적이고 물질적인 발전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삶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교 활동에 적합한 특정한 기법들을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타당한 그리스도교 활동의 원천이 되는 은총의 삶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포도나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잎이나 과일이 아닌 뿌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문출처] <Life and Holiness>, 토머스 머튼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0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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