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는 작은 시험을 통과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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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작은 시험을 통과해서 기뻤다
  • 최태선
  • 승인 2023.06.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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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칼럼

송창식의 노래 가사 “어제 나는 슬펐네.”가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어제 기뻤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기쁜 순간보다 슬픈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나는 점차 슬픔보다 기쁨이 더 많은 삶을 살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자주 가게 되는 공원에서 작은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특히 아주 작은 아가들을 보면 더 그렇다. 아이들은 정말 우리 사회를 밝히는 횃불과 같은 존재들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삭막해진 것은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은 어쩌면 내가 꼰대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기 아이가 예쁘면 당연히 다른 아이들도 예쁜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내가 손자를 데리고 나갔을 때 만난 손자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 나는 반가웠고, 무엇이라도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손자를 데리고 다가가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대부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피하기까지 했다. 반가웠던 내 마음은 그래서 늘 머쓱해졌다.

그 이야기를 딸들에게 하니 그게 뭐가 이상하냐는 것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꼰대이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려야 했지만 내 마음은 영 불편했다. 그리고 그런 세태 역시 탈 인간화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다른 아이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내 아이가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정상인가?

아무리 이런 질문을 해도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인간의 존엄이 사라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슬프게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작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내 마음은 기쁘다.

3월과 4월 내내 감기를 앓았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바이러스는 약을 먹든 안 먹든 2주면 치료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감기는 아니었다. 약을 먹은 기간이 정확히 6주다.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에 약을 먹어야 했다. 나았나 싶어 약을 먹지 않으면 이삼일 후에 다시 감기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감기가 최소한 두 달이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주변 수영장의 남자들이 갈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적었다. 내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시간에 내가 갈 수 있는 수영 시간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따릉이를 타게 되었다. 좋은 세상이다. 2만 원만 내면 6개월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서울 곳곳에 있는 따릉이를 탈 수 있다. 자전거를 둘 장소도 없는 내겐 정말 좋은 일이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보라매공원을 거의 매일 누비고 있다. 어제도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큼 앞에 가던 전동휠체어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는데 모르고 그냥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을 주워 전동휠체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추격하여 전동휠체어를 따라잡았다. 전동휠체어에는 주운 폐지가 실려 있었고 한 할머니가 타고 있었다. 그분을 불러 세운 후, 떨어진 가방을 드렸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그것이 떨어진 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일부러 줍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전동휠체어에 놓여 있는 할머니의 다리 위치가 좀 이상했다. 그래서 몸이 불편하시냐고 물었더니 한쪽이 마비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것을 줍는 것이 부끄러우셨던 모양이다. 어쨌든 가방을 드리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그래서 내가 버려야 할 쓸 만한 폐지가 있는데 드려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라고 하셨다. 그래서 만 원짜리 종이를 드렸다. 노인은 돈을 보시더니 안 받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순대국이나 한 그릇 사 잡수시라는 말과 함께 돈을 드렸더니 망설이며 돈을 받으셨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제는 공원에서 작은 아이들을 보아서 기쁘기도 했지만 할머니에게 돈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내가 그 일로 얼마나 기뻤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뻤다. 오래 전 학교에서 상을 탈 때 느꼈던 그런 마음이었다.

어제 나는 시험에 성공했다. 나는 늘 그런 시험 가운데 살고 있다. 어쩌다 마주치는 노숙자 선생님들이나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돈을 드리는 것은 내게 일종의 시험이다. 물론 나는 반사적으로 돈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짧은 순간 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험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드린다. 주님의 기도에는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는 간구가 들어있다. 그러나 시험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하느님께서 나를 시험하시기도 하고, 내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시험은 무의미하지 않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그 시험은 공생애 내내 지속되는 시험이기도 했다. 광야에서의 시험은 일종의 백신을 맞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예수님은 이후에 다시 똑같은 시험에 직면하셔야 했지만 광야에서와 같이 시험에 들지 않고 시험을 통과하셨다. 하지만 그 일은 예수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일찍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시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하느님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듯이 우리도 시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시험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기도 하고 마귀인 경우도 있다. 그 두 시험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마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우리가 매일 드려야 하는 기도는 우리가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이지 시험 자체를 없애 달라는 청원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은 매 순간이 유혹의 순간이며 욕망에 이끌리는 시간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자체가 시험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겨야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존재들이다.

때론 시험에 넘어지거나 실패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제의 내 경우처럼 시험을 통과하는 경우도 있다. 공원에서의 추격전, 그리고 돈을 폐지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모두 내겐 시험이었고, 그것을 통과한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까짓 걸 가지고 흥분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맞다. 나는 그렇게 유치하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바로 이런 작은 시험들을 통과하는 것으로 성장한다. 신앙의 길에서 작은 유혹, 적은 돈, 이런 것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위대해지는 법은 없다.

그래서 시험은 우리가 시험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는 우리의 자아가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결코 위대하지 않다. 그것은 돈이 아무리 많건, 아무리 사회에서 성공을 했건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신이 작은 자임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한다. 길자현 목사님이나 소강석 목사님과 같이 자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래서 그리스도교와 상관없는 분들이시다. 그런 사람들이 이 두 분만은 아닐 것이다.

시험은 날마다 우리에게 닥친다. 먼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작은 시험들에서 성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다른 관건이다. 우리는 위대하지 않다. 우리는 날마다 시험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하거나 극복할 때마다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신앙이란 반사행동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일상이다.

나는 늘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를 소개했던 이스라엘 여종과 모세의 사환이었던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이다. 어제 나는 작은 시험을 통과해서 기뻤다.

 

최태선
하느님 나라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55년생 개신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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