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바다, 유일신은 차별과 혐오를 낳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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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바다, 유일신은 차별과 혐오를 낳지 않는다
  • 김선주
  • 승인 2023.06.0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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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그동안 근본주의 기독교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해 왔던 악행들의 가장 큰 근거는 유일신 신앙이다. 유일신 사상 때문에 이방인과 우상숭배자라는 적대적 개념이 만들어지고 그들을 향해 혐오와 증오, 학살을 자행하는 일을 하느님을 향한 충성으로 이해했다. 유일신에 대해 평면적인 이해를 하게 되면 폭력과 살인마저 정당화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하면서도 정의감에 도취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열증적인 종교의식이다.

전광훈이 바로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기독교 정신분열 현상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분열증적 종교의식에 빠져있다. 단지 그것을 내면화하여 고상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전광훈의 거칠고 상스러운 말만 빼면 전광훈의 교리적 색채를 많은 교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일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나는 이 유일하신 하느님을 21세기에 맞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 왔다. 우리 안에 가장 큰 문제를 안고 있는 대속론의 문제도 많은 고민거리다. 그것을 시대 상황에 맞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가 내가 안고 있는 신학적인 고민이다. 

유일신을 어떻게 말해야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가, 유일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인간과 사회를 건전한 시선으로 보게 할 수 있는가, 유일신을 어떻게 말해야 우리의 일상 가운데 풍성한 존재의 울림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유일신 신 관념을 비폭력적인 자기희생의 십자가에 대한 유비(類比)로 설명할 수는 있는가.

 

이 질문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람이 조너선 색스(Jonathan Sacks)다. 그는 영국 내 회당 조직인 연합히브리회의에서 오랫동안 랍비를 지낸 정통 유태인 신학자다. 가장 유태적인 사고를 할 것 같은 그의 입에서 가장 반유대적인 말들이 쏟아졌다.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유대인의 선민사상의 기저에 유일신 신앙이 있음을 생각할 때, 그의 유일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색스(J. Sacks)는 야훼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인물이 아브라함이었음을 상기하며 유일신 신앙의 의미가 배타적 선민의식이나 폭력적 우월감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일신 신앙은 다신교(多神敎)가 가지고 있는 권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으로서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계급과 신분, 부(富)의 유무와 무관하게 평등하다는 사실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유일신 하나님은 교리적 다름이나 인종, 문화, 계급 등과 같은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버리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평등을 누리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식 혁명의 한 방법이었다. 아브라함의 야훼 유일신앙은 천지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통치 아래 평등과 자유를 누리는 대동세상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이런 이상 못지않게 이후 동서양에서 평화와 평등사상이 자주 등장했다. 그 중 하나가 중국의 제자백가 중 하나인 도가(道家)다. 특히 장자(莊子)는 제물론(齊物論)을 통해 우주적인 시야로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책 <장자>(莊子)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구만 리 장천(長天)을 나는 대붕(大鵬)의 시야를 장쾌하게 열어 놓고 세상 모든 존재를 우주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크고 작음, 미(美)와 추(醜), 선과 악 같이 대립하는 세상의 이치를 단순화시켜 그 차이를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인간 사회의 대립과 갈등 요소들을 대붕(大鵬)의 우주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별 거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장자의 이런 시각이 종교를 만났는데, 그게 바로 불교의 화엄(華嚴)이다. 인도적 사유가 불교를 통해 장자를 만났을 때, <화엄경>(華嚴經)이 탄생했다. 인도인들의 사유에 내재된 무한대의 시간 개념이 장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華嚴)은 우주와 자연을 분리된 개체들의 조합이 아니라 전체이면서 하나라고 본다. 불교의 우주관인 연기설(緣起說)도 이 화엄의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에 귀속된다.

이제 나는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유일신 하느님에 대해 화엄으로 말하고 싶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 우주와 자연 가운데 호흡하시는 하느님, 차별과 혐오 없이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느님, 만물 가운데 두루 퍼져있는 하느님,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시선으로 크고 작음, 미와 추, 선과 악까지 하나로 보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주와 자연이 한 하느님의 성품을 갖는 것처럼 우리도 한 하느님의 성품 아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자유와 평등을 동일하게 나누어 갖는 것, 이것이 유일하신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는 방식이다. 그리고 내가 그 유일하신 하느님 안에 거하는 방법 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무 많이 혐오하고 너무 많이 죽여 왔다. 이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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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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