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사랑, 페이스북에 안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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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랑, 페이스북에 안부를 묻다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5.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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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갑작스레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면 페이스북을 열어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을 만날 생각은 접고 슬그머니 타인의 근황을 엿보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대면하고 직접 말을 건넨다는 것이 멋쩍고, 서로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굳이 당장에 할 말이 있으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시지, 문자로 묻고 답할 뿐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전통 가운데, 자매 형제들과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라는 조언이 있습니다. 지나친 친밀함은 자기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수도자는 만인의 구원을 위해 복무할 뿐, 구체적 개인과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은 ‘보편적 사랑’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지나친 염려’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도자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하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고, 예수님은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이를 두고 로버트 엘스버그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바오로딸, 2007)에서 “사랑하기 위하여 성인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직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만 사랑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어루만지기를, 다른 이들의 고통 받는 몸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십니다.”라고 말하며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소심한 사랑은 손가락 끝에 머물러 있습니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판 위에 멈춘 사랑을 해방시키는 방법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상상보다 기억으로

빈센트 반 고흐는 성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빈센트가 가장 존경한 예술가를 굳이 꼽으라면 렘브란트와 밀레, 들라크루아입니다. 화가로서 절망에 빠질 때마다 그분들의 그림을 모사 또는 오마주(Hommage)하면서, 그분들을 알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작품 가운데 <착한 사마리아 사람> 등 몇 점은 성화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림보다 장 프랑소아 밀레처럼 농부들을 그리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빈센트는 그리스도를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하면서도, 렘브란트처럼 그리스도의 초상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화가란 상상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해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지 않고서야 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센트는 아를에서 지낼 때, 매일 새벽 네 시경에 이젤을 짊어지고 들판에 나가서 해거름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들판에서 만난 농부들과 밀밭, 사이프러스나무와 올리브나무에서 ‘거룩한 일상’을 발견하고, 그렸습니다. 여기서 화가의 진정성이 발생하는 것이겠지요.

흐릿한 선 긋기

그래도 사람이 궁금하면 페이스북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마주친 삶이 실마리가 되어 그이를 만나게 되길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 말을 섞고 싶지만 아직 가서 닿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문지온, 리강길, 최태선, 이원영, 배종령, 조현옥, 김신윤주, 김종일... 페이스북 친구 명단을 보면 그런 이름이 끝도 없이 나오니 헤아릴 길 없습니다. 유명인사들의 멋진 발언은 참고할 뿐 만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가톨릭일꾼>을 편집하면서 경험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생생하게 튀어오르던 생활 감성이 ‘원고 청탁’이 들어가면 ‘의젓한’ 문체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양념이 배이지 않은 도라지무침 같은 느낌입니다. 감칠맛은 사라지고, 주장이나 선언이 문장을 지배합니다.

빈센트가 처음 그림을 배울 때, 그림선생이던 마우베가 빈센트에게 늘 타박하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마우베는 늘 선 긋는 것부터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인물과 배경의 경계를 나누는 연습입니다. 하지만 흐릿한 경계가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 마네, 모네, 르노와르, 피사로, 로트레크 등 인상파의 그림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문득 그림의 대상에게로 건너가 버린 사람입니다. 농부를 그리면 자신이 농부가 되었고, 밀밭을 그리면 자신이 밀밭이 되었습니다.

임의진을 만나다

얼마 전에, 정말 글을 감칠맛 나게 쓰는 임의진의 글을 읽었습니다.

“의사샘이 내게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해야 한다고 그랬다. 이런저런 얘길 캐묻더니 손이나 얼굴을 보아 몸으로 노동하는 사람인줄 알았다고... 내 얼굴이 요새 볕에 그을려서 시커먼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라. 나이가 드니 고치고 버릴 것들이 생긴다. 목숨도 버려야 인생을 졸업하게 된다.”

그 친구도 이제 나이를 수월찮게 먹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수염을 길러도 평생 동안인 담양의 못 말리는 예술가, 지구별의 순례자라고 말하는 자유인, 임의진은 프로필도 다양합니다. 인터넷이 알려주는 정보는 “시인이며 목사, 화가, 신문 칼럼니스트, 광주정신 예술공간 메이홀 관장, 월드뮤직 전문가”라고 되어 있더군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서, 기억을 떠올립니다. 벌써 30년 전입니다. 제가 서울 상계동 불암산 자락 산동네에 살 때인데, 당시 저는 노동사목 활동가로 일하고, 아내는 한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손님 중에서 격월로 찾아와 <녹색평론>을 찾던 청년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오면 아내는 알아서 <녹색평론>을 꺼내주었답니다. 당시 이 잡지를 찾는 손님은 서점에서 이 사람 한 명 뿐이었던 거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이 번이 마지막입니다. 여기 떠납니다.” 하더랍니다.

며칠 뒤에 그 친구랑 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은퇴하시고, 자신이 목회를 맡아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전라도 강진 ‘남녘교회’입니다. 이렇게 맺은 인연으로 교회주보인 <참꽃 피는 마을>에 연재를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교회에 가서 설교도 하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을 쓴 이현주 목사와 <풍경소리>라는 잡지를 펴내던 김민해 목사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낳는 모양입니다. 그 인연들의 더미 위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그 인연의 가닥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이루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나만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경우엔 오프라인에서 만나 온라인에서 소식을 듣고 있지만, 요즘은 온라인에서 만났지만 오프라인에서 익어가는 사랑을 기대합니다. 저의 소심한 사랑은 아직 멀리서 안부를 묻고 있지만, 언젠가 문득 새삼 귀에 닿을 듯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움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하느님을 낳는 법이니까요.

 

* 이 글은 <경향잡지> 2023년 5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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