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예수, 그러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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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예수, 그러면 나는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3.05.0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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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칼럼

2021년 8월 어느 여름날, 페이스북에서 비를 흥건히 맞고 있는 노숙자 예수를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후배 진용주가 서울 서소문 공원에 산보를 다녀오며 찍어 올린 동영상입니다. “첫번째 백신 주사가 너무 싱겁게 끝나서 주사 놓는 분이 주사의 달인이거나 아니면 사실은 놓는 척만 한 연기의 달인이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심심한 저녁.. 꾸르릉 꽝꽝은 아까부터더니 비가 늦게라도 오기는 왔고 그래서 산보를 다녀왔다.. 오늘은 우산 쓰고 뵈러 간 나의 예수님. 믿음 없지만 어디서고 기도는 잘한답니다. 조용한 안부 같은, 여름 저녁의 소동!”이라 적었더군요.

그 후로도 진용주는 이곳에서 노숙자 예수를 만나곤 하는 모양입니다. 어느 가을에는 저녁 퇴근길에 서소문 공원에 들러 노숙자 예수를 만나고, “공원에 앉아 맥주 한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울면서 귀가했다.”고 했습니다. 이 바람에 저도 몇 차례 서소문 공원엘 갔더랬지요. 굳이 서소문 ‘성지’라 부르지 않고, ‘공원’이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시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소문 순교성지는 지하에 있고, 노숙자 예수 조각상은 지상에 조성된 공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한상봉
사진=한상봉

티모시 쉬말츠, 노숙자 예수

진용주는 가톨릭신자가 아닙니다. 물론 개신교 신자도 아닙니다. 그이는 틈이 날 때 가톨릭 성지에도 가고 불교 사찰도 방문합니다. 어쩌면 신앙인의 딱지를 붙이지 않더라도 그이를 끌어당기는 거룩한 갈망이 그이를 이곳으로 저곳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종교의 외피를 입지 않아도 충분히 종교적인 인간이 있는 법이지요. 그이는 출장길에 들린 황새바위성지를 다녀와서 이렇게 적었더군요, “나는 신자가 아니라 그저 기도하는 사람. 바람이 우수수 불어서 기도는 다 날아갔지만, 더불어 있던 감각은 막 붙인 우표처럼 서울로 따라왔다.”

진용주는 아마도 생애의 어느 한 순간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심장처럼 누워있는 ‘노숙인 예수’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이 노숙인 예수는 캐나다 조각가 티모시 쉬말츠(Timothy P. Shmalz)가 만든 ‘Homeless Jesus’라는 청동상입니다. 벤치에 담요를 덮고 길게 누워있는 예수는 삐져나온 발등의 상흔으로 예수임을 알아보게 합니다. 이 조각상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구절에 대한 ‘시각적 번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쉬말츠는 애초에 미국 뉴욕의 성 패트릭 대성당과 캐나다의 토론토 성 미카엘 대성당에 설치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너무 도발적이라고 느꼈던 모양입니다. 스스로 독실한 신자라고 자부하는 부자들의 양심을 불편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성 패트릭 대성당 맞은편에 록펠러 재단 건물이 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2013년에 이 조각상을 처음으로 설치하기로 결정했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데이비슨에 있는 세인트 알반 성공회 성당의 데이비드 벅(David Buck) 신부는 “이 조각상은 우리 교회에 진정성을 부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통적인 종교 예술에서 예수님이 화려한 옷을 입고 왕좌에 앉은 영광의 그리스도로 묘사되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성경에 주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런 삶을 살았다고 믿습니다. 그분은 본질적으로 노숙자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조각가 취말츠는 2013년 11월에 바티칸으로 찾아가 새로 교황으로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종을 만나서 ‘노숙자 예수’의 미니어처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교종은 이 예수상의 무릎을 만지고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3월에 교황청 자선 사무소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이 청동상을 설치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가 ‘노숙인 예수’를 지극히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고 했습니다.

루카복음서는 그분이 태생부터 남달랐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객지에서 방을 얻지 못해 짐승의 거처를 빌려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으며, 그분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나락을 훑어먹다가 걸려 세간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례조차도 남의 무덤을 빌려 치러야 했지요. ‘내 것’이라 할 만한 게 없었던 예수에게서 ‘노숙자의 얼굴’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분이 내가 사는 모습을 지켜볼까봐 덜컥 불안해집니다.

 

도몬 켄, 엄마 없는 자매

진용주는 책이나 잡지를 만들며 ‘종이밥’을 먹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내가 처음 그 친구를 만났을 때도 <우리교육>이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이는 “역시 종이밥으로는 배가 불러지지 않는 것이어서, 일을 오래 하니 허기가 졌다”고 했습니다. 그이는 날마다 더 가난해졌는데, “가난은 인이 박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소식이 닿아 종로 어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그동안 백여 차례 일본을 드나들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고 지은 책이랍니다.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진용주, 단추, 2019). “기억하고, 그 기억을 이어지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떤 시시한 존재도, 어떤 작은 패배의 역사도 다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고 머리말에 적었습니다.

“서투른 고통을 기억하다”라는 장에서, 진용주는 도몬 켄(土門拳, 1909-1990)이라는 일본의 사진작가를 애정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도몬 켄은 탄광촌 아이들과 불상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 생존자들, 그리고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찍었습니다. 그중에서 폐광된 탄광촌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치쿠호의 아이들>에 실린 <엄마 없는 자매>에 주목했습니다. 주머니에 찔러놓은 손 모양이 장난스러운 일곱 살 남동생과 한 손으로 나무 기둥을 붙잡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열 살 누이의 모습입니다. 배경이라 해야 할 그 깊은 어둠 속에 작은 빛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붙인 도몬 켄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객지로 돈 벌러 간 엄마는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집을 떠난 이후, 젖먹이 아이를 거느리고 5년 동안 실업자로 지내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아버지. 그 가운데 언니는 세 살 아래 동생을 돌보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이 아이의 가장 큰 걱정은 소주를 살 돈도 벌지 못한 날, 아버지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아버지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하는 진용주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했습니다. 도몬 켄은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 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결정적 순간은 티모시 쉬말츠에게도 오고, 도몬 켄에게도 오고, 진용주에게도 오고, 얼핏 내게도 올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분을 기억합니다. 예수가 어떤 분인지 생생하게 다가올 때,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자신에게 다독이며 찬찬히 말하는 것입니다.

 

* 이 글은 <경향잡지> 2023년 3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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