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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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포기한다
  • 김선주
  • 승인 2023.04.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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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 칼럼
사진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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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소통의 언어를 잃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소통을 위한 언어를 버리고 자기 언어만을 가지고 큰 소리로 떠들기 때문에 호소력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것이다. 교회는 교회 언어 안에 갇혀 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같은 성경의 문구나 교리적 언어를 일방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의 길이고 진리고 생명인지 보여주지 못하고, 입만 열면 자기 언어로만 말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사람들이 피곤해 하는 것이다.

60대의 자영업자 부부가 우리교회에 새로 나오게 됐다. 부인은 대형교회 집사님이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남편 분은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다. 70년대 학번인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업을 크게 했던 사람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는 회의하고 까다롭게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는 (과도한 음주나 외박 같은) 사고를 칠 때마다 부인에게 면죄부를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가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마다 헌금과 충성을 강요하는 주입식 성경공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남편이 원하는 교회를 여기저기 옮겨보았지만 가는 곳마다 남편의 공격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교회의 터부 때문에 한 교회에 3개월 이상을 있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 나와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에 성경공부를 하겠냐고 물었을 때, 그는 시큰둥했다. 가는 교회마다 성경공부를 했는데 자기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문하는 자기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제안했다. 미친 척하고 8번만 해보자고. 그래서 마음에 안 들면 교회 안 다녀도 좋고 하느님 안 믿어도 좋다고 했다. 그는 큰 용기를 내어 내 요구에 응했고 지금은 6회째 진도가 나갔다. 그는 이젠 하느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내 성경공부는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없다. 그때그때 학습자의 생각의 차원과 관심도, 이해도에 따라 바꾸어 나가기 때문이다. 특히 학습자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거나 역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달아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간다. 특히 성서의 텍스트를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성서의 맥락과 주제에 맞는 일상적인 경험과 사례들, 그의 수준에 맞는 인문학적 지식과 다양한 지적 통찰을 요구하며 귀납적인 사유로 성서에 접근하도록 한다. 이를테면 창세기 1장 1절과 빅뱅(big bang) 이론을 연결짓고 그것을 돈오(頓悟)와 존재의 각성으로서의 빅뱅으로 연결시킨다. 자연과학과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에 익숙한 그의 지적 토양에 그것이 적합한 논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

처음부터 어깨너머로 성경공부를 경청하고 있던 아내가 며칠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성서신학원 4년 다닌 것보다 어깨너머로 들은 당신의 성경공부가 훨씬 풍성하고 임팩트가 컸어요.”라고.

나는 그가 우리교회 교인이 아니어도 좋다. 누구든 우리교회에 종속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유롭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게 내 목표다. 우리교회 교인을 만드는 게 내 사명은 아니다. 교회는 강물처럼 누구든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곳이어야 한다. 교인을 소유관념으로 보지 않기 위해 우리교회는 등록을 받지 않는다. 나는 그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첫발을 건강하게 내딛도록 발판 하나 깔아주는 것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목사가 아니라 경영자가 되려는 내 안의 욕망과 싸우는 일에서 이젠 좀 자유로워졌다. 교회는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죽음을 각오하니 모든 게 편하다. 오늘도 나는 나를 포기한다.

 

김선주 목사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를 짓고,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단편소설 <코가 길어지는 여자>를 썼다. 전에 물한계곡교회에서 일하고, 지금은 대전에서 길위의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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